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영화 <어댑테이션>… 쌍둥이 형제의 열정 뒤에 숨겨진 진실 찾기
기자가 좋은 것은 사람들을 만나 세상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자라는 직업이 힘겨운 이유 역시 사람들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며 남들의 일상에 개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뉴요커>의 여기자 수잔 올리언(메릴 스트립)도 남의 이야기 속에 파묻혀 살아간다. 그가 취재하는 인물은 진귀한 난초를 불법 채취하다 법정에 서게 된 난초 밀렵꾼 존 라로쉬(크리스 쿠퍼).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고 아내에게 이혼당하고 전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종묘원까지 태풍에 날아가는 불운을 겪으면서도 난초를 찾아 헤매는 라로쉬를 지켜보며 수잔은 이렇게 말한다. “그는 세상에서 없을지도 모르는 난초를 찾아다니는 열정으로 살아간다. 나도 난초 같은 열정의 대상을 갖고 싶다. 내게는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다는 열정뿐이다.” 수잔은 라로쉬의 정열적인 인생역정을 담아 <난초 도둑>이라는 책을 펴낸다.
실제와 허구 사이의 다리가 되어
그러나 난초 도둑은 책으로만 끝날 운명이 아니었다. 감독 스파이크 존즈는 <존 말코비치 되기>로 함께 명성을 얻은 시나리오 작가 찰리 카우프만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논픽션 <난초 도둑>을 허구의 세계로 이끈다.
영화의 시작은 <존 말코비치 되기> 촬영현장에서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서 있던 찰리로부터 시작된다. 찰리는 어느 날 <난초 도둑>을 각색(어댑테이션)해달라는 제의를 받는다. 그는 할리우드식 드라마를 거부하고, 작가주의 영화를 지향하겠다고 큰소리치지만 정작 실마리를 잡지 못해 쩔쩔맨다. 난초에 관한 책을 무더기로 읽어대고, 난초 박람회도 찾아다니지만 성과가 없다. 뚱뚱하고 못생긴데다 여자들 앞이라면 땀만 흘리는 ‘소심남’인데 일까지 과중하니 연애가 잘될 리 없다. 여자친구 아멜리아가 딴 남자를 찾아 훨훨 날아가도 속수무책이다. 외로움과 불안에 가위눌린 찰리는 책 날개에 인쇄된 수잔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린다. “수잔, 당신 실망시킬까봐, 당신의 아름다운 책을 망칠까봐 잠도 오지 않아.” 찰리의 쌍둥이 동생 도날드는 형과 마찬가지로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지만 성격이 딴판이다. 천하태평에다 외모(니컬러스 케이지가 1인2역을 맡았으니 당연히 찰리와 얼굴이 같다)가 전혀 안 받쳐주는데도 여자들에게 꿀리는 법이 없다. 게다가 할리우드식 극작법을 가르치는 맥키의 강의를 꼬박꼬박 챙겨들으며 다중인격자가 연쇄살인을 벌이는 전형적 스릴러물을 써내려간다. 찰리는 맥키의 십계명을 인쇄해주는 동생의 호의를 철저히 무시하며 시나리오에 골몰하지만, 별다른 극적 드라마가 없는 <난초 도둑> 앞에선 두손 두발 다 든다. 형편없다고 생각했던 도널드의가 눈부신 성공을 거두자 비참함은 커져만 간다.
찰리가 자존심을 꺾고 맥키의 극작법을 수강하면서부터, 영화도 함께 할리우드식 긴박감을 얻는다. 멍청하게만 여겼던 동생이 <난초 도둑>의 지은이 수잔 올리언을 직접 만나 의심스런 점을 눈치채게 되면서 사건은 스릴러물로 급변한다. 책의 행간에 아주 흐릿하게 암시된 라로쉬와 수잔의 관계를 알아내는 것이다. 라로쉬의 난초에 대한 열정은 마약 재료를 얻기 위한 집착이었으며, 냉철한 이성으로 취재원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듯 보였던 수잔은 마약과 욕정에 빠져 있었다. 라로쉬와 수잔의 비밀을 밝히는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의 어이없는 죽음도 이어진다.
순수함과 천박함이 뒤섞인 종자들
결국 찰리가 밝혀낸 것은 아름답게 타오르는 듯 보였던 열정 뒤에 숨겨진 검은 진실들이었다. 하지만 감독은 환함과 어두움, 정결함과 혼탁함, 고급함과 천박함, 이 모든 것이 생명을 진화시키고 세상에 적응(어댑테이션)시켜온 힘임을 강조한다. 도날드가 좋아했던 노래, 프랭크 자파의 <해피 투게더>에 맞추어 꽃들이 쉼 없이 피고 지는 마지막 장면의 은유처럼. 어댑테이션(각색)의 과정이 줄거리 그 자체인 이 영화는 존재의 어댑테이션(적응)을 그렇게 정의내린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사진/ 영화 〈어댑테이션〉.
영화의 시작은 <존 말코비치 되기> 촬영현장에서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서 있던 찰리로부터 시작된다. 찰리는 어느 날 <난초 도둑>을 각색(어댑테이션)해달라는 제의를 받는다. 그는 할리우드식 드라마를 거부하고, 작가주의 영화를 지향하겠다고 큰소리치지만 정작 실마리를 잡지 못해 쩔쩔맨다. 난초에 관한 책을 무더기로 읽어대고, 난초 박람회도 찾아다니지만 성과가 없다. 뚱뚱하고 못생긴데다 여자들 앞이라면 땀만 흘리는 ‘소심남’인데 일까지 과중하니 연애가 잘될 리 없다. 여자친구 아멜리아가 딴 남자를 찾아 훨훨 날아가도 속수무책이다. 외로움과 불안에 가위눌린 찰리는 책 날개에 인쇄된 수잔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린다. “수잔, 당신 실망시킬까봐, 당신의 아름다운 책을 망칠까봐 잠도 오지 않아.” 찰리의 쌍둥이 동생 도날드는 형과 마찬가지로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지만 성격이 딴판이다. 천하태평에다 외모(니컬러스 케이지가 1인2역을 맡았으니 당연히 찰리와 얼굴이 같다)가 전혀 안 받쳐주는데도 여자들에게 꿀리는 법이 없다. 게다가 할리우드식 극작법을 가르치는 맥키의 강의를 꼬박꼬박 챙겨들으며 다중인격자가 연쇄살인을 벌이는 전형적 스릴러물을 써내려간다. 찰리는 맥키의 십계명을 인쇄해주는 동생의 호의를 철저히 무시하며 시나리오에 골몰하지만, 별다른 극적 드라마가 없는 <난초 도둑> 앞에선 두손 두발 다 든다. 형편없다고 생각했던 도널드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