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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사회적 약자 보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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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5-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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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프로그램 만들며 ‘전 국민의 천사화’ 주도하는 김영희 PD가 말하는 모두가 행복한 세상

외모로 보면 그는 영락없는 동네 ‘쌀집 아저씨’다. 문화방송 김영희 PD가 만드는 프로그램은 그의 외모처럼 수더분하고 따뜻하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이경규가 간다’ 코너부터 <칭찬합시다>를 거쳐 지금의 까지 그의 프로그램을 통해 수많은 미담이 만들어졌다. 게다가 그 프로그램들은 모두 성공적이었다. 많은 시청자들이 방송을 보며 함께 울고 웃었고, 프로그램이 전하는 메시지에 공감했다. 사람들은 야간에 도로 정지선을 잘 지키기 시작했고, 나보다 더 어려운 불우한 이웃들을 도와야 한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책도 많이 읽게 되었고, 청소년들이 처한 현실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최근에는 이질감만 가지고 있던 외국인 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에 함께 분노하기 시작했다.

사진/ 수더분한 외모의 김영희PD는 오락프로그램에 짙은 사회성을 담는 ‘공익버라이어티쇼’의 대가로 이름높다.
김영희 PD가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의 미덕은 이렇듯 조금씩 사회를 바꿔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아침밥 먹을 시간을 주기 위해 등교시간이 늦춰졌고 정말 ‘기적처럼’ 전국 곳곳에 어린이 도서관이 들어서게 되었다. 일개 오락 프로그램이 가지는 파급력치고는 어마어마하다. 아니, 어떤 사회운동도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 성과를 이뤄낸 적은 없었다. 덕분에 김영희 PD는 상도 많이 받았다. 지금까지 받은 상이 50여개에 이른다. 방송 관련 상은 거의 휩쓸었으며 대통령·국무총리 표창까지 받았다. 개그맨 진행자들의 입담으로 재미도 있고 사회적인 의미도 있는 그의 프로그램은 ‘공익 버라이어티’라는 이름으로 방송의 모범사례가 되었다.

하지만 칭찬받아 마땅한 그에게도 비판이 없는 건 아니다. 새로운 도덕윤리를 강요하는 것 같아 불편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사회적 이슈에 대해 피상적으로 접근하면서 시청자들의 감정만 자극한다고 한계를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방송권력의 과시이며 남용이라고 비판하는 의견도 있다. 그가 방송을 아주 적절하게 이용하는 영악한 사람이라고도 한다. 어쩌면 그의 성공을 만든 건 그의 프로그램에서 기꺼이 이용당해준 수많은 착한 사람들, 그가 만들어낸 감동에 울고 웃으며 지지를 보내준 시청자들일지 모른다. 다행스러운 건 그의 명민함이 세상을 좀더 살 만하게 만드는 데 쓰인다는 것 아닐까

많은 칭찬과 비판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 김영희 PD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동물적 흥행 감각·국민 정서의 만남

-만드는 프로그램마다 대성공이다. 비결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지.

=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다. 를 시작할 때도 두달간은 모든 코너를 내가 연출했다. 그 기간 동안 거의 잠을 못 잤다. 우리 프로그램에 호응해주는 우리나라 국민성도 성공비결 중 하나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감정이 풍부해 이슈를 제시하고 조금만 자극하면 잘 뭉친다. 우리 프로그램이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도 다 그 덕분이다.

-열심히 한다고 해서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니다. 흥행할 수 있는 아이템을 잡아내는 동물적인 본능이 있는 것 같다.

=프로그램을 만들 때 시청자들에게 인기가 있을지 가늠해보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게 잘 맞아떨어진 것뿐이다. 나는 운이 정말 좋은 사람이다. 내 성공이 나도 신기하다. 처음 ‘이경규가 간다’에서 정지선 지키기를 제안했을 때 스태프들이 모두 반대했다. 연예인도 안 나오고 나오는 거라곤 신호등과 자동차뿐인데 누가 그걸 보겠느냐고 했다. 그런 프로그램의 전례가 없으니까 구성도 막막했다. 내가 우겨서 막상 촬영을 나갔는데 새벽 3시까지 정지선을 지키는 차가 안 나타나니까 불만이 터져나왔다. 촬영을 접자는 얘기도 있었다. 그런데 4시 넘어 주인공이 등장했다. 반가운 마음에 차를 막고 섰는데 처음에 얼굴이 일그러진 걸 보고 음주운전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장애인이었고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었다. 결과는 모두 아는 대로 대박이었다. 이경규는 지금도 나를 만나면 몰래 섭외해둔 거 아니었느냐고 묻는다. ‘아시아! 아시아!’에서 라나씨 경우도 마찬가지다.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3, 4회 정도 다루니까 지루하고 식상한 감이 있었다. 그런데 가슴 아픈 일이긴 하지만, 라나씨가 죽으면서 프로그램의 극적 효과는 높아졌다.

사진/ 〈!느낌표〉의 방송장면.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는 전국에 도서관을 짓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왼쪽) ‘아시아! 아시아!’코너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가족 상봉을 주선한다.

-다루는 소재들이 대부분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것들이다. 아이템을 어떻게 기획하나

=나는 정이 많고 감성이 풍부하다. 그래서인지 내 프로그램에서는 인간미가 느껴진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좀더 좋은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지만 거창하게 생각하고 시작한 건 아니다. ‘하자! 하자!’도 아이들이 아침밥 먹고 학교 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소박하게 시작했는데 파장이 컸다. ‘기적의 도서관 짓기’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를 진행하면서 80억원 이상의 수익이 생겼는데 불우어린이 돕기 성금으로 썼다. 그 정도 목돈이면 더 큰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도서관 짓기를 기획했다. 처음엔 1, 2개만 지어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업체나 지자체 등에서 지원이 많아지면서 규모가 커졌다. 현재 11곳에 도서관을 짓기로 확정됐다.

-오락 프로그램에서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대단한 것 같다. 하지만 ‘아시아! 아시아!’는 ‘가족 상봉’이라는 최루성 코드만 있는 것 같다. 어떤 실천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아시아! 아시아!’는 지난해 월드컵 때 나타난 국민적 역량을 보고 세계 속의 대한민국이 되려면 먼저 아시아에서 힘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기획했다. 그러려면 먼저 우리 사회에서 소외받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프로그램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리진 않지만 사람들의 인식은 이미 바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볼 때 어떤 문제를 제시하면 제도적 변화들이 따라왔다. 올해 안에 외국인 노동자들의 지위를 보장하고 인권을 보호하는 법률이 제정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여성·노인 문제 등 사회적 약자들의 문제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

문화 권력화 지양… 딴따라 PD이고 싶다

-김영희 PD에 대한 비판도 많다. 바른생활을 강요하는 것 같아 기분 나쁘다는 사람도 있고 방송권력의 오만함이 보인다는 의견도 있다.

=전달하는 메시지가 구체화되다 보니까 사회적 주장의 강도가 높아졌다. 오락 프로그램에서 가르치는 기분이 들면 끝이라고 생각한다. 웃고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좋겠다. 나는 오락 PD인데 요즘은 시민단체, 변호사, 정부관리들을 많이 만난다. 내 프로그램이 사회적 반향이 크다 보니까 다른 사회문제를 다뤄달라는 요구도 많다. 스스로 권력화되지 않도록 겸손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출판계를 좌지우지한다는 얘기도 있는데 실제로 책 선정할 때 나는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

-일부에서는 ‘김영희표 공익 버라이어티’만이 좋은 오락 프로그램으로 인식되면서 다른 순수오락 프로그램의 다양성을 해친다는 의견이 있다.

=개인적으로 <개그콘서트>나 <강호동의 천생연분> 같은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사람들을 웃기는 게 오락 프로그램의 순수한 공익적인 기능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딴따라 PD다. 나도 순수오락 프로그램을 하고 싶은데 방송사에서는 제2의 <칭찬합시다>를 만들어주길 기대했다. 모두 나에게 그런 걸 바라기 때문에 부담이 많이 된다. 앞으로는 웃고 노는 프로그램이지만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이지 않은 좋은 오락 프로그램도 만들고 싶다.

피소현 기자/ <한겨레> 스카이라이프부 plav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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