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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그저 걸으며 새벽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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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5-0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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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 위주의 전통 식단이 입맛 당겨…소중한 것들 생각하며 일상의 염려 떨쳐

사진/ 박승화 기자
나는 별로 건강에 대해 걱정해본 적이 없다. 성인병도 없고, 비만증도 없고, 특별하게 탈이 난 데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씩씩하고 우람하냐 하면 그렇지도 못하다. 그저 살아가는 것뿐인데, 의도적으로 “내 건강?” 하고 스스로 자문하거나 염려한 적이 거의 없으니 ‘건강한가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다.

건강에 대해 ‘무심’하면서도 별 탈 없이 살아온 것은 아마도 무엇이나 잘 먹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고기와 채소가 있으면 채소에 먼저 손이 간다. 건강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채소가 더 좋기 때문이다. 봄에는 씀바귀 나물이 좋고, 여름에는 미역 냉국과 열무김치에 고추장에 참기름에 콩자반을 넣어 썩썩 비벼먹는 것을 좋아한다. 된장국은 어느 계절이나 좋지만 늦가을부터 이른 봄까지는 특별히 청국장을 즐긴다. 그렇다고 그런 것을 애써 찾아먹지는 않는다. 단, 김치를 먹지 않으면 아무리 진수성찬을 물리고도 나는 아무 음식도 먹지 않았다고 단언한다. 김치 없으면 참 슬프다.

술과는 본래 친하지 않았고 담배와는 이제 싫어하는 사이가 됐다. 술은 맥주 두컵이면 절대량인데, 그것을 넘으면 머리가 아프다. 그래서 아직 한번도 술에 취해본 적이 없다. 친구들이 인생의 낙을 모르니 안됐다고들 하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다. 먹으면 괴로운데 먹을 이유가 없다. 담배는 한동안 무척 많이 피웠다. 하루에 두갑이 모자랐다. 그러나 한 10년 피웠는데 싹둑 끊은 지 7년쯤 된다. 지금은 담배 피는 사람이 싫다.

담배를 끊었다고 해서 몸을 돌보는 데 퍽 신경쓰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특별히 운동도 하지 않는다. 집에서 가까운 한강 둔치를 걷거나 뛰거나 자전거로 달리기를 좋아하고, 가끔 산에도 오른다. 그러나 매인 듯 기계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지하철에서는 에스컬레이터를 타지 않고 층계를 두 계단씩 성큼성큼 걸어 오르내리기를 즐긴다. 건강을 위해서? 아니다. 그저 그렇게 걷는 것이 좋다.

걷기처럼 그렇게 좋아서 하는 것이 있다면 일찍 일어나기다. ‘아침에’라기보다 ‘새벽에’ 일어난다. 대체로 4시에서 5시 사이다. 물론 일찍 자는 편인데, 일이 있으면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그러나 한 시간을 자도 일어나는 시간은 같다. 거의 일생 동안 그렇다. 새벽이면 기분이 늘 좋다. 새날을 맞는 감격이 있다. 문자 그대로 이 날을 ‘보람으로 채우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건강을 위해 사는지, 삶을 위해 건강을 염려하는지 구분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친구들이 있다. 하지만 크게 병들거나 골골거리며 아프지 않아 그런지 몰라도 나는 아직 의도적으로 건강을 염려해본 적이 없다.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다.

나는 그저 사는 것이 고맙다. 먹을 수 있다는 것,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 비바람을 막을 수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고마운 마음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가득하고, 나를 아껴주는 사람 또한 그렇다고 하는 사실을 생각하면 깜짝 놀랄 만큼 감격스럽다.

미움도, 괴로움도,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도 없지 않다. 행복할 수 있는 조건보다 불행할 수 있는 조건을 골고루 차려놓고 사는 것이 삶이다. 하지만 세상은 보기 마련이다. 서서히 몸이 쇠하고 병들면, 어차피 이 나이에 곧 닥칠 일인데, 그 아픔과 질병을 사랑해야 할 거라고 생각한다.

정진홍/ 종교학자·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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