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장마같은 비가 봄들녘의 못자리를 재촉한다.
못자리만 해놓으면 얼추 큰일은 끝낸다며 며칠 전부터 아버님은 휴일 못자리를 당부하셨다.
아버님은 비가 오거나 말거나 아침 일찍부터 논에 나가셨나 보다. 어제 어머니, 아버님 두 양반이 10여 마지기 못자리하느라 죽을 똥을 쌌다며 어머니는 아버님의 야단스러운 부지런함이 못마땅한 눈치다.
늦은 아침 먹고 나니 먹구름이 저만치 몰려간다. ‘못자리가 반(半)농사’라는 어머니 말씀에 못 이겨 아예 점심거리 광주리에 담고 부직포까지 실어 논으로 향한다.
2월 어느 오후 겨울 햇살에 의지하며 곱게 흙 쳐서 모판에 담아 덮어놓았던 비닐 걷고 아버님 혼자 열심히 모판을 나른다. 비 개면 오후에 일하자는 말에 품앗이 높(일꾼) 생계댁네 부부가 교회에 가버려 힘이 팔려도 빨리 끝낼 욕심에 오히려 내가 분주함을 떤다.
3겹으로 모판을 쭉 늘어놓고 싹 틔어놓은 볍씨를 가볍게 뿌린다. 볍씨는 대중없이 뿌려지는 것 같아도 빈틈없이, 겹침없이, 그러나 빼곡히 뿌려야 한다. “논바닥에서 한 걸음은 길바닥 100걸음 같다”는 어머님의 중얼거림이 아니어도 모낸 뒤 뜬모의 수고로움을 덜려면 볍씨 뿌리기에 정성을 쏟아야 한다.
볍씨가 들어찬 모판 위에 흙을 덮고 물을 주면 일단 모짓기는 끝난다. 못자리할 논둑에 알맞게 모판 숫자 맞춰 나르는 일엔 근력이 필요하다. 근력 젊은 내가 한 발이라도 더 떼어놓아야 한다. 아침까지 내린 비로 논둑도, 허벅지까지 끌어올린 노란 물장화도 미끈덕거린다. 논가의 물둠벙을 지날 때는 가벼운 현기증도 인다.
모판이 논둑을 거의 메우자 생계댁네 부부가 헐레벌떡 뛰어오며 무색한 나무람을 외친다. “오후에 한다 항께 예배만 드리고 왔는디 벌써 많이 해부렸네. 암튼 군산양반 급한 성미 땜시 군산댁이 똑 죽겄소.” 며칠 전 고추 심어준 품 값는다고 벼르고 있는 생계댁은 성미 급한 아버님 탓하며 얼른 일손을 넣는다. 높 5명이 되자 일의 속도는 붙고 드디어 논에 모판을 넣는 본격적인 못자리만 남았다. 못자리 줄 따라 맨 끝에 생계양반이 아버님과 맞잡이로 자리잡고 여자 셋이서 모판 나르기 릴레이를 한다.
며칠 전 고추밭 두렁 치다가 관리기에 맞아 입원한 변산양산 문병 이야기며, 경운기 하나 다룰 줄 모르는 아버님과 막상막하인 지산양반 이야기, 일례엄마 손주 키우는 이야기가 매듭지어질 무렵 어느새 끝줄까지 모판이 놓아지고 하얀 부직포를 진흙으로 덮어 못자리를 마무리한다.
몇년 전만 해도 대나무 활죽 꽂고 비닐을 씌웠는데 부직포 하나만 위에 덮으니 일손이 훨씬 줄었다.
생계댁네 부부가 밥 먹었다며 뒤도 안 보고 가버려 다시 주섬주섬 밥 담은 광주리 싣고 동네 어귀에 들어서니 복동댁네 논엔 예닐곱명의 자식, 손자 일꾼들이 모판 나르기에 분주하다.
뱃속의 허기와는 달리 쌀농사 반(半)농사의 뿌듯함이 밀려온다.
이태옥 ㅣ 영광 여성의 전화 사무국장

모판이 논둑을 거의 메우자 생계댁네 부부가 헐레벌떡 뛰어오며 무색한 나무람을 외친다. “오후에 한다 항께 예배만 드리고 왔는디 벌써 많이 해부렸네. 암튼 군산양반 급한 성미 땜시 군산댁이 똑 죽겄소.” 며칠 전 고추 심어준 품 값는다고 벼르고 있는 생계댁은 성미 급한 아버님 탓하며 얼른 일손을 넣는다. 높 5명이 되자 일의 속도는 붙고 드디어 논에 모판을 넣는 본격적인 못자리만 남았다. 못자리 줄 따라 맨 끝에 생계양반이 아버님과 맞잡이로 자리잡고 여자 셋이서 모판 나르기 릴레이를 한다.

일러스트레이션/ 경연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