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위적 북촌길 조성은 득보다 실 많아… 삶을 간직한 길은 디자인의 대상이 아니다
사람과 건축의 밀도가 높은 도시에선 사람과 사람, 길과 길, 길과 건축과 사람 등의 관계가 중요하다. 오랜 시간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일수록 길은 삶의 문화로 이어진다. 시간의 흔적은 역사와 문화 그 자체다. 외국의 도시를 걸으며 길과 건축의 풍경에서 배우는 것은 단순히 조형적으로 예술적인 장면이 아니다.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는 문화다. 길에서 만나는 풍경을 통해 괴테를 읽고 베토벤을 들으며 고흐를 감상하는 일이 박물관이 아니라 그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현장에서 이뤄질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역사체험이다. 우리는 어떤가. 이를 지워버리고 훼손하고 없애면서 역사와 문화를 운운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오래된 시간이나 가까운 과거나 모두 우리에게는 소중한 역사의 흔적이다.
과도한 장식으로 옛 맛을 잃은 길들
이처럼 삶의 흔적이 담긴 길을 하나 조성하는 일은 그리 단순하고 수월한 게 아니다. 서울 시청만 해도 길과 관련된 행정기관의 관련 부서가 스무 군데가 넘는다고 한다. 이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의 환경이기 때문에 길이 매우 중요한 것임을 방증하는 셈이다. 따라서 길은 함부로 만지고 조정하고 인위적 장치로 디자인할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네 도시 안에서 만나는 길은 이런 성격들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특히 서울 도심의 역사적 장소를 끼고 조성된 길들은 더욱 그렇다. 최근 몇년 사이 정비된 이른바 역사문화탐방로들은 문화와 전통이라는 시간의 흔적이 왜곡된 채 과도한 디자인으로 장식되고 시민들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유지해온 덕수궁 돌담이 지닌 성격을 오히려 퇴색시키고 인위적이며 과도한 장식으로 길을 치장해놓은 정동길이 그렇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길을 조성하겠다면서 차도를 좁히고 인도를 넓히기만 했지 교통환경을 전혀 고려치 않았을뿐더러 길에 갖가지 장치들을 해놓아 오히려 걷기 불편한 길로 바뀌어버린 돈화문 역사탐방로도 마찬가지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조성한 길이 오히려 주민들을 하나둘 다른 곳으로 떠나게 만든다는 평가를 받는 인사동길은 특히 문제가 심각하다. 인사동길은 길 자체뿐 아니라 길에 면한 갖가지 점포들이 문화와 전통을 상품화하여 길과 더불어 공동체를 형성해온 곳이었다. 그런데 전통을 배경으로 한 동네의 문화적 성격을, 길을 새로 조성하면서 디자인으로 이를 과도하게 적용시켜 우리네 전통마을 길도 아니고, 서구의 옛 골목길도 아닌 이른바 국적불명의 가로 디자인을 만들고야 말았다. 인사동길은 이와 비슷하게 변화하려는 시점에 있는 인근의 북촌지역에도 매우 주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곳이다. 서울의 북촌 안에 난 넓고 좁은 여러 길들의 주변에는 미술관이며 사적, 공공 커뮤니티 공간 등 주목할 만한 시설들이 점점이 박혀 있고, 곳곳에서 한옥을 개·보수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인사동길의 실패를 다시 반복할 건가 이런 사정을 반영하듯 서울시도 북촌을 행정적으로 개입해서 몇년째 조절과 규제와 지원을 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북촌을 동서로 가로지르며 창덕궁과 경복궁을 이어주는 북촌길을 역사와 문화가 살아 있는 길로 조성하기 위해 전문가들을 상대로 설계공모를 실시하고 있다. 공모 지침을 보면 장소에 걸맞지 않게 전통성·상징성을 강조하고 있어, 이를 그대로 따를 경우 또 다른 인사동길이며 돈화문 앞길처럼 무모한 디자인으로 과도한 장식물들이 들어설 경우 이전에 간직하고 있던 길의 정서를 해칠 가능성이 크다. 이 길 역시 인사동길이 그런 것처럼 아직까지 비교적 시간의 흐름을 그런 대로 잘 간직하고 있는 길들이다. 북촌길의 정비는 삼청동길 같은 인접한 가로의 변화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 길들이 기존에 간직하고 있는 시간의 질서를 유지하며 새로운 풍경을 담을 수 있는 포용력을 갖추어 길도 좋고 집도 좋은, 그래서 살기 좋은 마을 공동체가 될 수 있어야 함은 그래서 당연한 바람이다. 북촌을 ‘디자인’하지 마라. 이제는 더 이상 나쁜 사례가 반복되어 도시를 피폐하게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주연/ <공간> 주간·건축비평가

사진/ 새로 정비한 인사동 길은 막대한 예산을 들이고도 옛 정취를 해쳤다는 평가를 받는다.(박승화 기자)
그러나 우리네 도시 안에서 만나는 길은 이런 성격들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특히 서울 도심의 역사적 장소를 끼고 조성된 길들은 더욱 그렇다. 최근 몇년 사이 정비된 이른바 역사문화탐방로들은 문화와 전통이라는 시간의 흔적이 왜곡된 채 과도한 디자인으로 장식되고 시민들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유지해온 덕수궁 돌담이 지닌 성격을 오히려 퇴색시키고 인위적이며 과도한 장식으로 길을 치장해놓은 정동길이 그렇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길을 조성하겠다면서 차도를 좁히고 인도를 넓히기만 했지 교통환경을 전혀 고려치 않았을뿐더러 길에 갖가지 장치들을 해놓아 오히려 걷기 불편한 길로 바뀌어버린 돈화문 역사탐방로도 마찬가지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조성한 길이 오히려 주민들을 하나둘 다른 곳으로 떠나게 만든다는 평가를 받는 인사동길은 특히 문제가 심각하다. 인사동길은 길 자체뿐 아니라 길에 면한 갖가지 점포들이 문화와 전통을 상품화하여 길과 더불어 공동체를 형성해온 곳이었다. 그런데 전통을 배경으로 한 동네의 문화적 성격을, 길을 새로 조성하면서 디자인으로 이를 과도하게 적용시켜 우리네 전통마을 길도 아니고, 서구의 옛 골목길도 아닌 이른바 국적불명의 가로 디자인을 만들고야 말았다. 인사동길은 이와 비슷하게 변화하려는 시점에 있는 인근의 북촌지역에도 매우 주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곳이다. 서울의 북촌 안에 난 넓고 좁은 여러 길들의 주변에는 미술관이며 사적, 공공 커뮤니티 공간 등 주목할 만한 시설들이 점점이 박혀 있고, 곳곳에서 한옥을 개·보수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인사동길의 실패를 다시 반복할 건가 이런 사정을 반영하듯 서울시도 북촌을 행정적으로 개입해서 몇년째 조절과 규제와 지원을 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북촌을 동서로 가로지르며 창덕궁과 경복궁을 이어주는 북촌길을 역사와 문화가 살아 있는 길로 조성하기 위해 전문가들을 상대로 설계공모를 실시하고 있다. 공모 지침을 보면 장소에 걸맞지 않게 전통성·상징성을 강조하고 있어, 이를 그대로 따를 경우 또 다른 인사동길이며 돈화문 앞길처럼 무모한 디자인으로 과도한 장식물들이 들어설 경우 이전에 간직하고 있던 길의 정서를 해칠 가능성이 크다. 이 길 역시 인사동길이 그런 것처럼 아직까지 비교적 시간의 흐름을 그런 대로 잘 간직하고 있는 길들이다. 북촌길의 정비는 삼청동길 같은 인접한 가로의 변화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 길들이 기존에 간직하고 있는 시간의 질서를 유지하며 새로운 풍경을 담을 수 있는 포용력을 갖추어 길도 좋고 집도 좋은, 그래서 살기 좋은 마을 공동체가 될 수 있어야 함은 그래서 당연한 바람이다. 북촌을 ‘디자인’하지 마라. 이제는 더 이상 나쁜 사례가 반복되어 도시를 피폐하게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자료/ 북촌 가꾸기의 도로 계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