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선재센터가 밀고 당기고…
등록 : 2003-04-30 00:00 수정 :
1998년 아트선재센터가 문을 열 때까지만 해도 어깨를 마주한 이웃은 국군기무사령부와 복수탕(목욕탕), 분식집이 전부였다. 큰길로 나가면 현대화랑·금호미술관·학고재·국제화랑 등 쟁쟁한 미술동네가 펼쳐지지만, 아트선재센터 주변은 낡은 한옥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조용한 동네였다.
그리고 5년 뒤. 상황이 변했다. 개성 있는 인테리어 소품으로 치장한 예쁜 카페, 만든 이의 손길이 느껴지는 공방, 아트숍, 골동품 매장이 생겨났다. 골목 한겹 더 안쪽으론 PKM갤러리, 티베트 박물관 같은 전시장도 들어섰다. 아트선재센터 식구들이 자주 뒤풀이를 했던 음식점 ‘큰기와집’은 아트선재센터가 기획한 2000년 광주비엔날레 소쇄원 파티에 음식을 내놓아 ‘국제 무대’에 데뷔하기도 했다.
숨을 멈춘 듯 조용하기만 했던 동네가 이처럼 활기를 얻은 것은 아트선재센터의 공을 뺄 수 없다. 아트선재센터는 그동안 경복궁 맞은편 사간동·소격동쪽에 몰려 있는 화랑들과 차별성 있는 기획들을 선보여왔다. 개인 화랑이 전시장 일부를 허물고 고급 레스토랑으로 개조해 수익성을 높이는 동안, 아트선재센터는 이불, 정서영, 서도호, 야요이 쿠사마 등 역량 있는 국내외 작가들을 초청했다. 갤러리들이 문턱을 높이며 ‘품위’ 지키기에 골몰하는 사이, 아트선재는 주차장·카페·한옥 등으로 뛰쳐나갔다. 만화로 뒤덮인 주차장에서 밤늦게까지 테크노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레이브 파티를 여는가 하면(주차장 프로젝트), 1층 카페 벽면을 드로잉으로 채우기도 하고(성낙희 까페 프로젝트), 삼청동 한옥에선 그 공간에 담겨 있는 의미를 탐구했다(우순옥 한옥 프로젝트).
특히 지하극장 서울아트시네마는 지난해 5월부터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기획한 특별전이 이어져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들였다. 피에르 파졸리니 특별전, 오시마 나기사 회고전, 스페인영화 페스티벌, 일본영화 회고전, 히치콕 특별전, 허우샤오시엔 특별전 등 예술영화의 요람으로 자리잡았다. 김은정 한국시네마테크 협의회 사무차장은 “올해엔 지난해보다 관객이 20~30% 불어나 3·4월 두달 동안 전체 관람객이 1만명을 넘겼다. 명동·신문로 등 다른 곳에서도 행사를 열었지만 아트선재센터만큼 꾸준한 인기를 모으지는 못한다. 이제는 아트선재라는 장소가 지닌 실험성과 예술성을 젊은이들이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부관장은 “재정적으로 어렵지만 동시대 문화예술을 이끈다는 자부심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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