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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외자유치 1호는 만두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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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4-3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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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가요에 등장하는 ‘엉큼한’ 몽골인… 꿩만두의 담백한 맛을 아시는가

지금은 외국자본이 국내에 들어와 증권에 투자하거나, 한국 기업과 합작을 하거나, 방위산업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기업을 직접 경영하거나 하는 것이 당연한 현상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1970년대 중반 이전까지만 해도 외국자본의 직접투자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또한 자본형성이 안 되어 외국자본을 도입하려는 국내의 재벌기업들도 매판자본이라 하여 규탄 대상이 되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제금융자본의 유치는 물론 외국자본의 직접투자를 적극 환영하고 있는 작금의 우리 경제상황에서 보면 쉽게 이해되지 않겠지만, 당시 산업기반이 극도로 취약한 상태에서 무방비적으로 외자가 도입되었을 때 우리 경제의 대외종속 문제, 그리고 국제금리와 국내금리 차가 10% 이상 되어 외자도입 자체가 특혜와 부패의 온상이 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외국자본과 그 도입이 경계 대상이 되었다.

사진/ 간장 종지만한 ‘천정꿩만두’의 꿩만두는 아주 담백하고 부드러운데, 식은 뒤에 먹어도 전혀 그 맛이 변하지 않는다.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외국인 직접투자는 1279년 고려 충렬왕 때 개성에서 만두가게를 열었던 몽골 사람인 것 같다. 고려·조선시대의 속요를 정리해 편찬한 <악장가사>에 실려 있는 충렬왕 때 고려가요 <쌍화점>의 첫 장은 다음과 같다.

샹화점(雙花店)에 샹화 사라 가고신댄

회회(回回)아비 내 손모글 주여이다


이 말싸미 이 점(店)밧긔 나명들명

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감 삿기광대 네마리라 호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더러 다리러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자리에 나도 자라 가리라

워워(偉偉)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잔데가티 더마거초니 업다

여기에서 샹화(雙花)는 만두고, 회회아비는 몽골인을 뜻한다. 조선시대까지 만두를 상화(霜花, 床花)라고 불렀는데, 완성된 만두 모양이 한 송이 꽃과 비슷하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여진 것 같다. 이 가사를 풀이하자면, “어떤 여인이 만두가게에 만두를 사러 갔는데, 만두가게 주인인 몽골인이 자기 손목을 잡더라. 이 소문이 밖에 나돌면 가게의 꼬마 심부름꾼 네가 퍼뜨린 것으로 알겠다. 소문이 나면 다른 여인들도 자러 그 자리에 가겠다 할 게 아니냐. 거기 잔 곳은 참으로 아늑하고 무성한 곳이다”라는 뜻이다.

만두는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중국 또는 몽골에서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 충혜왕조에 왕궁의 주방에 들어가서 만두를 훔쳐먹는 자를 처벌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위 <쌍화점>의 가사처럼 개경에 만두가게가 존재하였던 사실로 보아 고려시대에는 이미 만두가 전래되어 왕이나 서민 모두 즐겨 먹은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에서는 밀가루 반죽을 발효시켜 고기나 채소로 만든 소를 넣고 찐 것을 만두라 하고, 밀가루로 만든 얇은 껍질에 소를 싸서 끓이거나 기름에 튀기거나 찐 것은 교자라 부른다. 우리나라의 만두는 터키·몽골의 만두와 함께 교자에 가깝다. 우리 민족의 이동경로에 있는 우랄알타이계의 터키·몽골·한국의 만두가 모두 비슷하고 중국만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은 만두의 한반도 전래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상상력의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경기도 김포시 통진면에 가면 만두 전문점 ‘천정꿩만두’(031-989-9999)가 있다. 이 집의 주인 이승훈(36)씨의 어머니 김치희씨가 15년 전에 꿩탕·오리탕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을 열었는데, 어느 날 꿩만두를 빚어 주위 분들께 드렸더니 반응이 너무 좋아 이제는 소문이 자자한 꿩만두집으로 바뀌어버렸다. 꿩의 살코기는 다져 두부·양파·숙주나물 등과 함께 소를 만들고, 뼈는 가마솥에 고아 만두전골·꿩탕의 육수로 쓴다. 간장 종지만한 이 집의 꿩만두는 아주 담백하고 부드러운데, 식은 뒤에 먹어도 전혀 그 맛이 변하지 않는다.

김학민 ㅣ 학민사 대표·음식칼럼니스트 hakmin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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