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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북촌의 문화가 영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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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4-3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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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홍보라 삼청동 갤러리 ‘팩토리’ 대표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렌지색·파란색 빛이 뿜어나오는 커다란 거미·나비·딱정벌레가 벽·기둥·바닥에 얌전히 붙어 있다. 조명디자인 그룹인 C.L.P의 ‘곤충조명전’(5월11일까지)이다. 전시장 한켠에선 김정주(건축가)·손정은(조소작가)·현명아(판화가)·박훈규(그래픽 디자이너)씨 등이 만든 독특한 액세서리·문구류가 놓여 있다. 새로운 시각문화가 꽃피는 즐거운 공장 ‘팩토리’(www.factory483.org). 갤러리 팩토리는 이처럼 아트숍과 전시장을 한데 합쳤다. 전시회도 순수미술에 머물지 않고 디자인·건축·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경계를 넘나드는 전시가 펼쳐진다.

지난해 말 삼청동길 한켠에 문을 연 팩토리의 젊은 주인 홍보라(31)씨는 “전통적이면서도 펑키한 문화가 가능한 삼청동이야말로 완성도 높은 실험예술이 가능한 곳”이라고 말했다. “수익성만 따졌다면 이곳을 고르지 않았을 거예요. 사람과 돈이 많이 모이는 점에선 강남이나 홍익대 앞을 따라갈 수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홍씨가 삼청동에 둥지를 튼 이유는 “호흡이 느리기 때문”이다. 이웃들은 웬만해선 이곳에서 20년 이상 살아온 터줏대감들이다. 사람들도 좁은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다닌다. 느긋한 맘으로 길을 걷다 전시장을 둘러볼 여유가 절로 생긴다.

홍씨는 본래 강북 출신이 아니다. 강남에서 자라 그곳에서 어른이 됐다. 미국에서 예술행정을 공부하고 귀국한 뒤론 국제 타이포 전시회 같은 굵직한 행사에서 일하며 홍대 주변의 작가들과 자주 어울렸다. 홍대 앞의 팔팔 뛰는 창작 에너지를 경험하며 이를 좀더 세련된 방식으로 표현할 방법을 고심한 끝에 떠올린 것이 팩토리였다. “생계가 어려운 젊은 작가들이 끼도 살리고 돈도 버는 길을 만들고 싶었어요.” 홍대 앞보다는 덜 부산스럽고 편안한 곳을 찾던 홍씨의 눈에 삼청동이 들어왔다. 그는 원룸으로 쓰이던 적산가옥 1층을 임대해 미니멀하면서도 차갑지 않은 느낌의 전시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홍씨는 요즘 북촌을 주제로 한 프로젝트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즐거워하고 있다. “그래픽 디자이너와 함께 ‘북촌체’와 같은 서체도 개발하고, 이곳의 가게·갤러리들을 자세히 그린 지도도 만들고 싶습니다. 북촌의 문화를 함께 가꿔나가길 원하는 가게끼리 깃발을 꽂아 이곳이 자생적인 문화벨트임을 알리는 작업도 할 수 있죠. 이곳은 제게 일터이자, 상상력의 보고입니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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