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에서 색다른 취향을 즐기는 사람들의 거리… 비슷한 여건에도 거리의 색깔은 전혀 달라
“번잡함이 싫어 이곳에 온다.”
서울의 강북과 강남은 한강만큼 넓고 깊은 차이가 있다지만 삼청동과 청담동을 찾는 이들의 이유는 같다. 이들이 눈살 찌푸리는 번잡함이 모두 인근 지역으로부터 왔다는 점도 같다. 삼청동이 ‘전통문화의 거리’라고 불리는 인사동의 형제라면, 청담동은 ‘욕망의 해방구’라고 명명됐던 압구정동과 자매다. 1990년대 중반부터 삼청동길에 사람과 돈을 모으고 유행을 만든 것이 갤러리들이었던 것처럼, 청담동길에는 처음부터 화상들의 돈이 먼저 깔렸다.
인사동의 형제, 압구정동의 자매
모퉁이마다 자리잡은 화랑, 처음 가는 사람은 쉽게 찾을 수도 없을 것 같은 작은 가게, 어깨를 부딪치며 걸어가야 할 만큼 좁은 골목의 정취. ‘관광지’로 뜨면서, ‘차 없는 거리’, ‘걷고 싶은 길’ 등으로 변신을 거듭하면서 인사동에선 이런 것들이 서서히 사라져갔다. 큼지막한 고층건물들이 우뚝우뚝 들어서고, 한국에 서투른 외국인들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얄팍한 상술로 무장한 관광상품 매장들이 기지개를 켜자 인사동의 변화를 눈치챈 미술 자본은 일찌감치 북쪽으로 전진했다. 인사동의 떠들썩함에 질린 이들의 눈길도 자연스레 삼청동으로 향했다. 조건영(건축가), 최욱(건축가), 홍승혜(미술 작가), 허유(디제이·패션디자이너)씨 등 북촌을 사랑하는 문화예술인들은 아예 이사를 왔다. 이들의 입맛에 맞춰 공방·카페·식당도 속속 개업했다.
갤러리아 명품관을 기점으로 압구정동과 경계를 짓는 청담동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밟았다. 서구의 음식과 카페문화에 익숙한 해외 유학파들은 요란하고 화려한 압구정동 대신 프라이버시를 침해받지 않고 세련되게 놀 수 있는 조용한 동네 청담동을 택했다. 강남의 부유층을 주 고객으로 상대하는 화랑들이 먼저 입주해 있던 이 거리에 구찌·페라가모·루이뷔통 같은 명품 매장이 속속 진입했다. 뒷골목에는 카페와 바, 퓨전 레스토랑들이 펼쳐졌다.
삼청동과 청담동은 이처럼 비슷한 조건이지만 두 지역의 취향은 전혀 다르다. 삼청동길과 청담동 두곳 모두 샵을 낸 모자가게 ‘루이엘’ 대표 천순임씨는 “청담동 손님들은 주로 모던한 느낌에 단순한 디자인, 검은색을 좋아하는 반면, 삼청동쪽은 튀더라도 개성이 강한 디자인을 선호한다”고 말한다. 청담동에서 인기 높은 모자처럼, 청담동의 건물들 또한 장식을 배제하고 단순한 형태, 재료 고유의 느낌을 지향하는 미니멀리즘이다.
그럼, 사람들의 행동패턴도 미니멀리즘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연예인을 만나도 호들갑스럽게 떠들지 않고 자연스러운 곁눈질로 쳐다본다. 비싼 커피를 마시면서도 불평하면 촌스럽게 여길까봐 군말 없이 마신다.”(강사 홍아무개씨) 유행에 남달리 민감한 곳이기에 가게 인테리어도 휙휙 바뀐다. 일본의 절제된 정원을 떠올리게 하는 젠 스타일에서 인도·남미풍의 에스닉 스타일까지 유행에 따라 뜨고 진다.
강남 사람들이 삼청동 찾는 까닭
루이뷔통 매장을 설계한 이봉희 소장(RAC 건축)은 “외국 디자이너들이 청담동 건축에 대해 ‘브루털’(야만적)이라고 표현한다”고 말한다. “청담동에선 전체 거리와의 맥락을 고려한 디자인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개별적으로 뜯어보면 좋은 건물들이 눈에 띄지만 한개의 섬처럼 존재할 뿐 전체로 보면 이질적이다.”
밤이면 초록색·황금색 불빛들을 내뿜으며 찬란하게 빛나는 유리집들이 즐비한 청담동과 달리, 삼청동길은 짙은 어둠이 깔린다. 경복궁·청와대 등 ‘권력’과 가까워 건축행위에 많은 제한을 받으며 세월 속에 갇혀온 길의 표정은 이 밤처럼 무겁다. 사람의 어깨가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집 사이 간격이 빽빽한 삼청동의 밀도는, 느슨하도록 강제된 변화의 속도 속에서 적절한 농도의 옛것과 새것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쾌적한 아파트 생활을 누리는 강남 사람들이 삼청동에서 매력을 느낀다면, 이것은 급조된 도시 강남이 애초부터 가져온 콤플렉스의 반사작용일지 모른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모퉁이마다 자리잡은 화랑, 처음 가는 사람은 쉽게 찾을 수도 없을 것 같은 작은 가게, 어깨를 부딪치며 걸어가야 할 만큼 좁은 골목의 정취. ‘관광지’로 뜨면서, ‘차 없는 거리’, ‘걷고 싶은 길’ 등으로 변신을 거듭하면서 인사동에선 이런 것들이 서서히 사라져갔다. 큼지막한 고층건물들이 우뚝우뚝 들어서고, 한국에 서투른 외국인들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얄팍한 상술로 무장한 관광상품 매장들이 기지개를 켜자 인사동의 변화를 눈치챈 미술 자본은 일찌감치 북쪽으로 전진했다. 인사동의 떠들썩함에 질린 이들의 눈길도 자연스레 삼청동으로 향했다. 조건영(건축가), 최욱(건축가), 홍승혜(미술 작가), 허유(디제이·패션디자이너)씨 등 북촌을 사랑하는 문화예술인들은 아예 이사를 왔다. 이들의 입맛에 맞춰 공방·카페·식당도 속속 개업했다.

사진/ 귀족적이되 요란하지 않은 청담동의 명품 매장은 강남 소비문화의 전형을 보여준다(박승화 기자)

사진/ 최대한 기존 건물을 살려 지은 갤러리 빔은 삼청동 길 걷는 맛을 더해준다(박승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