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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눈길 잡는 ‘인형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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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4-2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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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건 스노보드, 도무스(건축 잡지), 쿨 담배, 플레이스테이션2, 토와 테이(일본의 DJ 뮤지션), 애시드 재즈, 롤렉스 시계… 그리고 하늘.”

캐주얼 브랜드 엔진(N’gene)의 멋쟁이 모델 조스에게 좋아하는 게 뭐냐고 물어보면 단숨에 수십 가지가 줄줄 나온다. 사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많은 청년이지만 꿈은 오로지 하나, 비행사다. 그러나 조스는 그 꿈을 이룰 수 없다는 걸 안다. 다만 커다란 모니터 앞에 앉아 게임기 단추를 누르며 창공을 자유자재로 노니는 비행기를 조종할 뿐이다. 왜 비행사가 될 수 없냐고 인형이니까.

사진/ 엔진의 홍보대사들.
조스가 친구들인 종·주·자와 함께 모델로 나선 건 지난 2월부터. 엔진은 ‘나이와 콘셉트가 따로 없이 취향만 맞으면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옷’이란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고정된 이미지를 갖지 않은 모델을 물색하다 아예 인형 모델을 만들었다. 4개의 인형들은 실제 사람 모델처럼 포스터와 카탈로그, 동영상 광고, 홈페이지 등 엔진이 선전하는 각종 매체에 빠짐없이 등장한다. 매장에선 마네킹으로 만들어진 조스 일행이 고객을 맞는다. 마케팅팀 이종훈씨는 “개성이 강한 인물 모델 대신 변하지 않는 무색무취한 인형 모델을 고안함으로써 브랜드 자체를 홍보하는 효과를 노렸다”고 설명한다. 엔진은 앞으로 이 모델들을 12인치 크기 인형으로 만들어 판매할 계획이다.

사진/ 쌤과 싸만타.
역시 캐주얼 의류를 제작하는 쌤도 인형 마케팅을 기획했다. 쌤은 사람 모델에게 쌤과 싸만타라는 이름을 붙여 이들이 만나 사랑하는 과정을 연작 광고로 선보여왔다. 이번엔 그 쌤과 싸만타를 인형으로 만들었다. 쌤 디자이너가 모양을 디자인하고 재료를 구입해 손수 깎아 만든 인형 쌤과 싸만타는 사이즈만 작을 뿐 발 토시, 재킷, 바지, 목도리 모두 쌤의 사람 옷과 똑같은 디자인이다. 인형들은 이 앙증맞은 옷을 입고 동영상 CF에 출연해 사랑에 빠진다. 쌤과 싸만타가 각자 자신의 이상형을 생각하며 인형을 만들었는데, 신기하게도 현실 세계에서 그와 똑같이 생긴 파트너를 만난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다. 이 애니메이션 광고는 곧 서울·경기 지역의 영화관에서 상영될 계획이며, 쌤·싸만타 인형 역시 매장에서 판매된다. 마케팅팀 남윤선씨는 “쌤은 본래 감성 캐주얼을 내세우며 평범하지 않은 옷들을 만들어왔는데, 트렌드를 주도하는 브랜드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피규어 인형을 광고에 끌어왔다”고 말한다. 또 “자기가 입은 옷을 인형에게도 똑같이 입히고 싶은 소비자의 마음을 겨냥해 강력한 브랜드 이미지를 심어주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사람옷 같은 인형옷, 인형옷 같은 사람옷. 무엇이 더 소비자의 마음을 끌어당길까 답이 무엇이든 인형과 사람이 같은 브랜드로 치장하고 거리를 활보할 날이 멀지 않았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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