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키 마틴 내한공연 진행미숙에 관객 집단적 반발… 허약한 한국 공연문화의 현주소
지난 10월7일 저녁 서울 올림픽주경기장은 “리키”를 외치는 함성으로 가득 찼다. 5시부터 속속 공연장으로 들어서기 시작한 관객 2만명이 공연 예정시간인 7시부터 “리키”를 외치기 시작한 지 40분이 지나자 무대에 불이 꺼지며 가수 리키 마틴이 등장했다. 그의 최고 히트곡인 <리빙 다 비데 로카>가 나오기 시작하자 뒤쪽에 앉아 있던 관객이 무대 앞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무대 앞과 통로는 아수라장이 됐고 장내의 안전요원들은 속수무책으로 군중 속에 휩쓸렸다.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관객은 몰려나온 관객에 가려 무대를 볼 수 없어 항의했지만 음악소리와 비명소리에 파묻혔다. 앞자리 사람들이 의자 위로 올라가자 뒤에 남아 있던 관객까지 도미노로 일어나 의자와 의자 팔걸이에까지 올라가기 시작했다. 많은 관객이 불편하고 위험천만한 자세로 1시간40분 동안 공연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들을 위해 시민단체가 나서다
“큰 맘먹고 거금 15만원을 들여서 맨 앞자리인 프리미엄석을 샀는데 무대를 볼 수 있었던 건 5분도 안 됩니다. 한 시간 반 동안 앞사람의 흔들리는 엉덩이만 지켜보다가 공연장을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이게 말이 됩니까?”
직장인 김현주(29)씨는 공연만 생각하면 아직도 분이 가시지 않는다고 한다. 김씨보다 더 황당한 경우를 당한 관객도 있다. “예매 시작 3일 뒤에 인터넷사이트에서 자리를 고르고 골라 중앙쪽 좌석을 15만원에 예매했습니다. 들뜬 기분으로 공연장을 찾았는데, 좌석번호를 바꿔놨더군요. 중앙이었던 좌석이 바깥쪽으로 밀려났던 겁니다. … 공연시작 1시간 전부터 공연 기획사에 항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더욱 화가 난 것은 시간이 지나면 제풀에 꺾이겠지 하는 기획사의 태도였습니다. 그러다가 안 되니까 매직을 주면서 직접 번호를 바꾸라는 거였습니다.”(참여연대 게시판 ‘열받은 소비자’) 삼등분으로 배치된 객석에서 오른쪽 좌석의 번호가 기획사의 실수로 예매 때와 반대방향으로 적혀져 중앙쪽 자리가 바깥쪽으로 밀려난 것이다. 진행요원들은 뒷짐을 지고 관객은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공연이 시작됐고 뒤쪽에서 사람들이 몰려오면서 오른쪽 자리의 관객은 이중의 피해를 봤다. 공연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관객은 공연이 끝난 뒤 환불을 요구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기획사인 (주)엑세스 인터내셔널의 인터넷사이트에는 다음날부터 격렬한 항의메일이 게시판에 올라왔고 참여연대 인터넷 게시판에도 기획사를 비난하는 메일이 쏟아졌다. 참여연대는 10월10일 공연파행에 대해 “법적 피해보상요구도 불사하겠다”는 성명을 내고 공연피해사례접수 및 피해자 공동대응준비에 나섰다. 제도나 정책이 아닌 공연에 대한 불만에 시민단체가 들고일어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10월11일 피해자 대표단이 구성돼 조직적인 움직임이 예상되자 기획사쪽도 적극적으로 달래기 작업에 나섰다. 12일 참여연대의 중재로 피해자들과 만난 기획사쪽은 협상을 통해 피해접수를 한 83명의 관객에게 사과의 표시로 이날 공연의 실황녹화 테이프와 리키 마틴의 음반을 한장씩 보내주기로 했고,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다음 대형공연이 잡히는 대로 최고가의 프리미엄 티켓을 나눠준다는 약속을 했다. 의외로 문제는 쉽게 일단락됐지만 이번 공연의 파장은 대형공연문화의 현실과 문제점들이 고스란히 드러났고 이에 대한 전면적인 문제제기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진행미숙으로 관객에게 경제적, 정신적 피해를 준 기획사의 역량부족을 꼽을 수 있다. 엑세스는 98년부터 메탈리카, 메가데스, 드림시어터 등 해외 유명 뮤지션들의 공연을 기획, 성공시킨 대형공연 전문기획사다. 그러나 이들 공연에서 쌓은 노하우도 올림픽 주경기장이라는 초대형 규모공연에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관객 정리에 실패한 진행과정의 미숙은 차치하고라도 일단 좌석배치에서 이미 온전한 관람이 불가능하도록 만들어 관객의 분노를 샀다. 낮은 무대 높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깔아놓은 의자 가운데는 앞쪽에 사람들이 몰려들지 않아도 무대가 제대로 보이지 않은 자리가 훨씬 많았다. 기획력 부족한 기획사
참여연대 문화사업국의 탁현민 감사는 이와 함께 스탠딩 공연문화의 부재를 지적한다. “리키 마틴 공연은 파바로티 공연처럼 앉아서 감상하는 게 아니라 함께 흥겹게 노는 일종의 파티인데 불편한 좌석을 배치했다는 것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처럼 만약 좌석없이 모두 서서 보는 스탠딩 공연이었다면 그날과 같은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겠지요.”
리키 마틴은 무대에서 “춤출 준비가 됐나요?”하고 소리 질렀지만 마음껏 춤출 수 있기는 애초 그른 판이었다. 이에 대해 엑세스의 연용희 실장은 “1만명 이상이 섞여 있는 관객석에서 사고라도 난다면 회사가 망하는데 누가 그런 위험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정색을 한다. 외국 같으면 만약의 불상사에 기획사와 경호회사, 보험사, 그리고 경찰이 나눠 책임을 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대형사고 한번 터지면 기획사가 모든 책임을 지기 때문에 대형 스탠딩 공연이 불가능하다는 게 엑세스쪽 입장이다.
체계적인 공연기획력이 부족하다는 것도 국내 기획사의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4만5천석의 좌석을 만든 이번 공연에서 자리를 채운 좌석은 2만2천여석. 그나마 유료관객은 1만명 정도였다. 86만달러라는 개런티를 지불한 기획사쪽도 8억여원의 손해를 입게 됐다. 대중음악평론가 성기완씨는 “대중음악공연을 기획할 경우 타깃 관객층과 공연규모, 효과적인 공연방식에 대한 체계적인 예측을 해야 하는데 국내 기획사는 누가 올 것인지와 개런티만 중요시하고 타산이 맞지 않을 경우 공연 불과 며칠 전에 취소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며 “주먹구구식 기획이 티켓값을 올리게 되고 그 부담은 관객이 떠맡게 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한 공연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원래 공연이 기획됐던 지난 4월, 40만달러 선으로 정해졌던 개런티가 타사와의 경쟁으로 두배가 됐고 이에 따라 티켓값도 덩달아 올랐다고 한다. 서울에 오기 직전 일본공연에서 일등석이 9천엔(9만원 정도)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우리나라 일등석의 가격은 지나치게 비싸다.
그러나 티켓 가격의 문제는 좀더 제도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공연에서 기획사가 지불한 세금명목의 비용은 전체 비용의 30% 정도. 여기에는 부가세 10%와 문예진흥기금 6%를 포함한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세금으로 떼는 돈은 5% 정도에 불과하다. 외국에서 각종 세제혜택으로 대중음악공연을 지원하는 데 비해 “대중음악은 예술이 아니라 돈벌이”라는 정부의 인식이 공연문화의 활성을 막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공연문화 활성화를 가로막는 제도
국내가수 공연을 가장 활발하게 기획하고 있는 라이브 엔터테인먼트의 하명남 이사는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세금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공연문화 활성화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업계에서는 공연장 부족 문제도 다시 한번 지적한다. 국내에서 대규모 공연을 할 수 있는 곳은 올림픽경기장뿐이다. 그나마 체조경기장과 펜싱경기장이 8천석 규모, 주경기장이 8만석 규모이며 중간 규모로 활용할 수 있는 경기장은 없다. 결국 리키 마틴 같은 대형스타가 올 경우 기획사는 ‘도 아니면 모’가 되는 도박을 해야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도쿄돔처럼 이벤트를 위해 다목적으로 지은 외국 경기장과 달리 순수한 경기장에 시설 설치를 하기 위해 드는 막대한 비용도 고스란히 티켓값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관객이 공연을 즐길 권리에 대해 정당하게 요구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지난해 인천에서 폭우로 무산된 트라이포트록 페스티벌의 경우 9만원이나 되는 티켓값 반환요구가 기획사의 책임회피로 올해까지 일년을 끌어오다 유야무야된 것에 비하면 이번 공연에 대한 관객의 집단적 대응은 앞으로 대형공연의 질적성숙을 이끌어낼 첫 단추를 끼운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김은형 기자dmsgud@hani.co.kr

(사진/리키 마틴이 “춤출 준비가 됐나요”라고 물었지만 애초에 어려운 일이었다. 공연장은 온통 불편한 좌석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직장인 김현주(29)씨는 공연만 생각하면 아직도 분이 가시지 않는다고 한다. 김씨보다 더 황당한 경우를 당한 관객도 있다. “예매 시작 3일 뒤에 인터넷사이트에서 자리를 고르고 골라 중앙쪽 좌석을 15만원에 예매했습니다. 들뜬 기분으로 공연장을 찾았는데, 좌석번호를 바꿔놨더군요. 중앙이었던 좌석이 바깥쪽으로 밀려났던 겁니다. … 공연시작 1시간 전부터 공연 기획사에 항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더욱 화가 난 것은 시간이 지나면 제풀에 꺾이겠지 하는 기획사의 태도였습니다. 그러다가 안 되니까 매직을 주면서 직접 번호를 바꾸라는 거였습니다.”(참여연대 게시판 ‘열받은 소비자’) 삼등분으로 배치된 객석에서 오른쪽 좌석의 번호가 기획사의 실수로 예매 때와 반대방향으로 적혀져 중앙쪽 자리가 바깥쪽으로 밀려난 것이다. 진행요원들은 뒷짐을 지고 관객은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공연이 시작됐고 뒤쪽에서 사람들이 몰려오면서 오른쪽 자리의 관객은 이중의 피해를 봤다. 공연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관객은 공연이 끝난 뒤 환불을 요구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기획사인 (주)엑세스 인터내셔널의 인터넷사이트에는 다음날부터 격렬한 항의메일이 게시판에 올라왔고 참여연대 인터넷 게시판에도 기획사를 비난하는 메일이 쏟아졌다. 참여연대는 10월10일 공연파행에 대해 “법적 피해보상요구도 불사하겠다”는 성명을 내고 공연피해사례접수 및 피해자 공동대응준비에 나섰다. 제도나 정책이 아닌 공연에 대한 불만에 시민단체가 들고일어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10월11일 피해자 대표단이 구성돼 조직적인 움직임이 예상되자 기획사쪽도 적극적으로 달래기 작업에 나섰다. 12일 참여연대의 중재로 피해자들과 만난 기획사쪽은 협상을 통해 피해접수를 한 83명의 관객에게 사과의 표시로 이날 공연의 실황녹화 테이프와 리키 마틴의 음반을 한장씩 보내주기로 했고,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다음 대형공연이 잡히는 대로 최고가의 프리미엄 티켓을 나눠준다는 약속을 했다. 의외로 문제는 쉽게 일단락됐지만 이번 공연의 파장은 대형공연문화의 현실과 문제점들이 고스란히 드러났고 이에 대한 전면적인 문제제기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진행미숙으로 관객에게 경제적, 정신적 피해를 준 기획사의 역량부족을 꼽을 수 있다. 엑세스는 98년부터 메탈리카, 메가데스, 드림시어터 등 해외 유명 뮤지션들의 공연을 기획, 성공시킨 대형공연 전문기획사다. 그러나 이들 공연에서 쌓은 노하우도 올림픽 주경기장이라는 초대형 규모공연에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관객 정리에 실패한 진행과정의 미숙은 차치하고라도 일단 좌석배치에서 이미 온전한 관람이 불가능하도록 만들어 관객의 분노를 샀다. 낮은 무대 높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깔아놓은 의자 가운데는 앞쪽에 사람들이 몰려들지 않아도 무대가 제대로 보이지 않은 자리가 훨씬 많았다. 기획력 부족한 기획사

(사진/공연이 시작되자 뒷좌석에 있던 관객들이 무대 앞으로 뛰어갔고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관객들의 항의는 음악소리와 비명소리에 파묻혔다)

(사진/지난해 인천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폭우로 무산된 트라이포트록 페스티벌. 9만원이나 되는 티켓값 반환요구가 기획사의 책임회피로 유야무야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