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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백마 탄 왕자님이 오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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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4-2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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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TV의 <백만장자와 결혼하기> 곧 한국상륙… ‘모독적인 신데렐라 판타지’논란 일 듯

현대판 신데렐라의 대표적 방송 버전인 <백만장자와 결혼하기>(Joe Milliomaire·<폭스TV> 방영)의 국내 방영이 다가오면서 이 프로그램이 다시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젊은 여성 20명이 미남 백만장자의 아내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실제상황’을 담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방영 당시 미국 전역에서 3500만여 가구가 시청했다. 18∼24살 여성 시청률은 한때 50%에 이르렀다. 이 프로그램이 오는 5월12일부터 9차례에 걸쳐 케이블 위성방송인 OCN을 통해 국내에도 방영된다.

상업적인 성공과는 별개로 미국 안에서조차 ‘시청률 지상주의의 극치’라거나 ‘여성에 대한 악의적 왜곡’이라는 비난을 받은 이 프로그램이 국내에 상륙하면 비슷한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이 커보인다.

‘후궁 간택’하듯 벌이는 게임


사진/ 그의 아내가 되려는 젊은 여성 20명이 극중의 ‘실제상황’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백만장자와 결혼하기>에 등장하는 ‘백마 탄 왕자’는 5천만달러를 상속받을 예정인 조(29). 훤칠한 키의 미남인 그는 신붓감을 고르기 위해 프랑스에 있는 자신의 성에 20명의 여성을 초대한다. 비서·교사·의사 등 여러 직종의 여성들이 그를 만나기 위해 몰려든다. 게임은 조의 선택을 받지 못한 여성들이 차례로 성을 떠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첫 번째 탈락자가 나오는 시각. 조의 집사는 마치 전제군주가 후궁을 ‘간택’하듯 여성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른다. 조는 은접시에 놓인 12개의 진주 목걸이를 자신이 선택한 여성들의 목에 걸어준다. 단아하고 우아한 걸음으로 백만장자 앞에 선 여성들은 저마다 작지만 다소곳한 목소리로 “생큐”라고 답한다. 이름이 불리지 않은 여성들은 울면서 짐을 싼다. 회를 거듭하면서 목걸이는 사파이어, 에메랄드, 루비로 등급이 높아지고 ‘살아남은’ 여성들 수는 줄어든다. 백만장자 조는 결국 ‘조라’라는 교사를 선택한다.

그러나 승자의 기쁨도 잠시. 조라는 자신에게 끼워줄 다이아몬드 반지를 든 남자로부터 “나는 무일푼인 건설 노동자”라는 말을 듣는다. 그 순간 조라는 당황하지만, 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거짓말이 마음에 걸리지만 앞으로 계속 만나고 싶다”고 말한다. 이때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집사가 100만달러(약 12억원)짜리 수표를 은쟁반 위에 얹고 나타난다. 그는 “동화 같은 얘기 속에 어찌 기적이 없겠는가. 진정한 사랑이야말로 가장 큰 보물”이라는 그럴싸한 ‘위로’와 함께 수표를 커플에게 건네준다. 조라는 100만달러를 공유할 남자를 얻었고, 적어도 사랑에 대한 그럴듯한 판타지를 완성한 셈이 된다.

이 프로그램을 제작해 외국으로 판매하는 <폭스TV>는 한 손에는 극우보수주의를, 다른 한 손에는 선정주의라는 무기를 들고, 이나 등 주류 채널과 경쟁하는 방송사다. <폭스TV>는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의 뉴스코퍼레이션의 계열사다.

<폭스TV>는 어떤 방송인가

사진/ ‘백만장자’로 등장하는 조
<폭스TV>의 극우보수주의는 이번 미-이라크 전쟁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성조기를 아이콘으로 쓰는가 하면, 앵커들은 스스럼없이 미·영 합동군을 해방군이라고 했다. 덕분에 이 채널은 미국 정부로부터 을 능가하는 특종거리를 ‘사랑의 증표’로 받았다.

이 채널의 또 다른 주 특기는 상업주의를 극대화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한 시청률 높이기다. 2001년에는 <템테이션 아일랜드>에서 미혼의 남녀 커플 여러 쌍을 외딴 섬으로 초대해 서로 다른 커플의 이성을 유혹하는 상황을 만들어 이를 중계했다.

과연 ‘잘생기고 돈 많은 남자’를 동경하는 여성들의 심리를 이용한 <폭스TV>의 장삿속이 국내에도 먹힐지, 그 해답은 5월에 공개된다.

이유진 기자/ 한겨레 스카이라이프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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