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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운전대만 잡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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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4-2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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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중숙의 사이언스 크로키

“옷이 날개”라는 속담이 있다. 사람 자체는 어느 옷을 걸치든 변함이 없지만 겉보기로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가리킨다. 알고 보면 그 영향이 겉모습에만 머물지는 않을 것이란 점도 분명하다. 실제로 사람의 마음도 겉모습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는다. “제복을 입으면 사람이 변한다”는 말은 이 점을 더욱 뚜렷이 나타낸다. 평소에는 부드러운 사람이 특수한 신분에 따르는 제복을 입으면 거기에 맞춰 어딘지 딱딱하게 변한다. 이런 점에서 사람은 거울과 비슷하다. 외부적 요소 또는 외부환경의 변화에 따라 내면적으로 그에 대응하는 영상을 만들어낸다.

일러스트레이션/ 유은주
“운전대만 잡으면 사람이 변한다”는 말을 흔히 쓴다. 예외는 있지만 온순한 성격의 사람도 운전대만 잡으면 옆사람이 놀랄 정도로 난폭해진다. 급가속과 급정거를 일삼고, 과속방지턱도 거칠게 넘는다. 그런데 이 현상은 상당히 일반적인 듯하다. 영어에도 ‘behind the wheel’이란 표현이 있고, ‘운전대 뒤에만 앉으면’이란 뜻으로 같은 현상을 가리킨다. 흥미로운 것은 차에서 내리면 이 사실을 금세 잊는다는 점이다. 난폭 운전자와 마주치면 오히려 눈살을 찌푸리며 비난한다. 예전에 이 광경을 직접 묘사한 공익광고가 있었다. 차의 앞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운전자와 보행자가 서로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점차 클로즈업되면서 드러나는 얼굴을 보니 두 사람은 본래 같은 사람이었다. 운전자는 보행자로서의 자신, 보행자는 운전자로서의 자신을 잊고 서로 자신에게 화를 낸 것이었다. 이때는 차의 앞 유리창이 거울 역할을 한다. 그리하여 운전자와 보행자라는 두 사람의 대응관계를 재미있게 보여준다.

이런 현상을 자연과학적으로 풀이하자면 ‘대칭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거울을 사이에 두고 양쪽 모습이 ‘면대칭 관계’에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이와 같은 대칭성이 폭넓게 자리잡고 있다. 사람의 모습은 좌우가 대칭을 이룬다. 사람뿐 아니라 대부분의 동물도 그렇다. 대칭성은 미학적으로 아주 중요하다.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요소는 많지만 대칭성도 빠질 수 없는 요소란 뜻이다. 대칭성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는 예로는 흔히 눈의 결정을 현미경으로 확대한 사진을 든다. 겨울이 되면 눈이 많이 내리는데, 그 안에 담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눈 결정들의 구체적 모습은 모두 다르다. 하지만 모두 육각형을 이루며 대칭성을 가진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은 공통이다.

대칭성은 이와 같은 겉모습이 아니라 좀더 미묘한 형태로 드러나기도 한다. 우리가 잘 아는 에너지보존법칙과 운동량보존법칙도 그 예에 속한다. ‘보존법칙’이라 함은 어떤 물리량이 현상의 전후에서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휘발유에 담긴 에너지는 엔진에서의 연소라는 현상을 통해 차의 운동에너지와 엔진에서 발생하는 열로 바뀐다. 이처럼 에너지 모습은 바뀌더라도 연소 전후 총량에는 변화가 없다. 즉, 연소를 사이에 두고 대칭관계에 있다는 뜻이다. 이 밖에 더 미묘한 대칭성이 많으며, 사실 현대 과학의 최대 쟁점 가운데 하나가 더 깊은 대칭성을 찾는 데 있다. 이와 같은 자연의 모습을 배우면서 운전대 사이의 대칭성도 좀더 아름다운 관계가 되기를 바란다.


고중숙ㅣ 순천대학교 교수·이론화학 jsg@sunchon.sunch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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