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생식기에서 수정으로 유도하는 물질 규명… 열·냄새 추적설에 따라 새로운 불임·피임법 개발
플라톤의 <향연>에는 ‘양성신화’가 등장한다. 음주를 즐기며 사랑의 본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아리스토파네스는 남자와 여자가 하나의 존재로 살았던 원초적 시대에 대해 말한다. 당시에는 남자이자 여자인 존재와 더불어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 등 세개의 성이 존재했다. 자웅동체인 ‘안드로지니’(Androgynes)는 네개의 팔과 다리를 가지고 마치 공처럼 생긴 몸으로 달리기보다 빠르게 구를 수 있었다. 이들은 강력한 힘을 내세워 오만하게 지내다가 신들의 제왕인 제우스의 미움을 받아 둘로 갈라졌다. 그래서 인간은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 세상과 육체를 헤매는 운명을 겪게 되었다. 서로의 반쪽을 찾아 생물학적인 고난의 행진을 벌이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 셈이다.
생명체가 성을 통해 진화하는 과정은 악마와의 거래에 비유되기도 한다. 번식을 위해 본격적으로 성을 수행하면서 죽음이라는 숙명을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먼 조상인 박테리아 집단들은 다른 집단 개체와의 통정을 허락하면서 자신의 순결을 잃었다. 어쩌면 죽음의 키스를 통해 생명체는 진화를 거듭했는지 모른다. 동물 선조들은 정자가 난자를 꿰뚫는 사건이 없이는 배(empryo)를 발생시킬 수도, 성체로 성장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성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성적인 선택을 위해 정자는 숙명의 경쟁을 벌여야 한다. 정자 경쟁의 승자는 더 많은 수의 정자를 생산하거나 암컷의 질 속에 더 깊숙이 사정하는 방법으로 경쟁자를 물리친다.
안팎의 정자 경쟁자를 물리치기 위해
모든 정자들이 고난의 행진을 벌인다. 하지만 누구나 최후의 관문을 통과하는 것은 아니다. 오직 하나의 정자만 경쟁에서 살아남는다. 경쟁자는 안팎에 놓여 있다. 거미와 일부 곤충류, 포유동물들은 점도가 높은 정액을 생산해 다른 수컷 경쟁자의 정자가 암컷의 성기 속으로 침입하지 못하도록 방호벽을 친다. 어떤 설치류의 수컷은 음경을 삽입할 때 ‘질 마개’라는 물질을 합성한다. 사회성 영장류들은 몸매나 크기, 색깔 등을 따지고 섹시함을 추구하는 다양한 행동과 습관을 발전시켰다. 섹스에 이르기 위한 몸만들기의 궁극적 목표는 수정이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특별한 화학반응을 일으켜 수정에 이른 뒤 배가 형성되도록 하는 것이다. 고환에서 정자가 생산되려면 74일이나 걸린다. 고환에서 생산된 정자는 부고환과 정관을 약 20여일에 걸쳐 통과하며, 정관 말단 팽대부에 저장되었다가 사정 때 배출된다. 정자는 0.05mm 크기로 올챙이 모양이며 타원형의 머리 부분과 전체 길이의 90%를 차지하는 꼬리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정자는 1회 사정으로 2∼3cc를 방출하는데 무려 2억~3억 마리나 된다. 질 속에 사정된 정자의 75~90%는 죽고, 나머지만 자궁경관까지 간다. 전진 속도는 평균 1분당 3mm로, 사정된 정자는 자궁까지의 8cm를 27분 걸려 도달하고, 여기서 나팔관까지의 10cm를 42분 만에 도착한다. 따라서 정자가 난자와 만나는 나팔관까지 18cm를 가는 데 70분이 걸린다. 이 길이는 자기 몸 길이의 3천배나 된다. 난자와 결합하는 것은 오직 한 마리여서 난자를 향한 질주는 치열한 생존경쟁일 수밖에 없다. 정자가 난자를 만날 때는 강력한 생화학적 변화가 일어난다. 처음에 육체적 유혹을 향해 돌진할 때는 ‘암페타민’(amphetamine)과 유사한 천연 화학물질인 ‘페닐에틸아민’(phenylethylamine)이 생성된다. 오르가슴을 느끼는 시기에는 ‘옥시토신’(oxytocine)이라는 호르몬의 수치가 높아진다. 호르몬이 배우자를 구해 자손을 생산하도록 하는 생식의 병기인 셈이다. 이렇듯 생화학적 병기를 이용해 질을 점령한 정자들. 이들은 다시 난자를 만나기 위한 다양한 분자적 결합을 시도한다. 미국 뉴욕주립대 세포생물학자 니콜 샘슨 박사는 정자의 단백질 조각 ‘퍼틸린’(fertilin)이 난자의 표면에 있는 ‘인테그린’(integrin)이라는 수용체를 만나 수정에 이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아직까지 포유류의 수정을 둘러싼 의문은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정자세포가 난자를 향해 여성 생식기 내부를 항해하는 데 무엇이 영향을 끼치는지도 의문으로 남아 있다. 정자가 자궁에서 올라와 나팔관을 거쳐 난자에 이르는 경로를 찾는 방법이 베일에 싸여 있었던 것이다. 최근 이에 대한 두 가지 가설이 나왔다. 하나는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 미가엘 아이젠바흐 박사팀이 제시한 ‘열 추적설’이다. 정자가 열을 찾아 표적을 추적하는 미사일처럼 온도 감지기를 이용해 난자를 찾아간다는 것이다. 이들은 배란 직후 토끼의 생식기 곳곳의 온도를 측정해 정자가 따뜻한 부위를 향해 꿈틀대며 나아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난자가 정상적으로 수정되는 곳의 온도가 다른 부위보다 섭씨 2도가량 높았던 것이다. 만일 이러한 작용이 인간에게 일어난다면 인간 정자의 이동을 조절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난자를 속여 수정을 방해할 수도
또 하나는 독일 보훔대학 마르크 스페르 박사팀이 제시한 ‘냄새 추적설’이다. 이들은 정자 세포의 표면에서 발견된 새로운 냄새 수용체(hOR17-4)에 특정 물질이 붙으면 정자가 일정한 방향으로 운동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정자가 화학감지센서의 반응을 통해 정자 유인물질의 농도가 높은 곳으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사람의 정소 조직에서 냄새 수용체 유전물질을 찾아내 복제한 뒤 사람의 배아 신장세포에서 발현시켜 칼슘 이온 농도에 따른 변화를 살폈다. 실험에서 정자세포가 고농도의 정자 유인물질로 다가가면 냄새 수용체와 정자 유인물질과의 결합이 증가했다. 이 결합으로 인해 정자세포 밖에 있는 칼슘이 세포 내로 들어가기도 했다. 이런 칼슘 농도의 변화에 따라 편모의 운동변화가 시작되어 정자세포가 일정한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정자들의 고난의 행진에 관련된 비밀이 차츰 풀리면서 임신을 둘러싼 새로운 가능성이 싹트고 있다. 피임과 불임을 인위적으로 조절할 돌파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자와 결합하는 난자 수용체를 차단하는 방법으로 피임약을 개발할 수도 있다. 난자 수용체를 목표로 삼아 난자가 자신이 수정됐다고 믿도록 조작해 난자가 외막을 뚫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테그린 수용체를 차단할 경우 다른 세포의 상호작용을 파괴할 수 있어 아직은 빠른 성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정자세포가 냄새 맡는 능력을 이용해 수정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정자 유인물질을 조작해 수정과 무관한 곳으로 정자를 유도한다면 원치 않는 임신을 막는 것도 가능하다. 섹스에 관한 분자 수준의 이해는 아직 획기적 진전을 이루지는 못했다. 정자는 수정과 피임, 불임에 이르기 위해 고난의 행진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사진/ 사람의 정자가 난자를 뚫고 들어가는 모습을 담은 전자 현미경 사진.(「섹스란 무엇인가」)
모든 정자들이 고난의 행진을 벌인다. 하지만 누구나 최후의 관문을 통과하는 것은 아니다. 오직 하나의 정자만 경쟁에서 살아남는다. 경쟁자는 안팎에 놓여 있다. 거미와 일부 곤충류, 포유동물들은 점도가 높은 정액을 생산해 다른 수컷 경쟁자의 정자가 암컷의 성기 속으로 침입하지 못하도록 방호벽을 친다. 어떤 설치류의 수컷은 음경을 삽입할 때 ‘질 마개’라는 물질을 합성한다. 사회성 영장류들은 몸매나 크기, 색깔 등을 따지고 섹시함을 추구하는 다양한 행동과 습관을 발전시켰다. 섹스에 이르기 위한 몸만들기의 궁극적 목표는 수정이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특별한 화학반응을 일으켜 수정에 이른 뒤 배가 형성되도록 하는 것이다. 고환에서 정자가 생산되려면 74일이나 걸린다. 고환에서 생산된 정자는 부고환과 정관을 약 20여일에 걸쳐 통과하며, 정관 말단 팽대부에 저장되었다가 사정 때 배출된다. 정자는 0.05mm 크기로 올챙이 모양이며 타원형의 머리 부분과 전체 길이의 90%를 차지하는 꼬리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정자는 1회 사정으로 2∼3cc를 방출하는데 무려 2억~3억 마리나 된다. 질 속에 사정된 정자의 75~90%는 죽고, 나머지만 자궁경관까지 간다. 전진 속도는 평균 1분당 3mm로, 사정된 정자는 자궁까지의 8cm를 27분 걸려 도달하고, 여기서 나팔관까지의 10cm를 42분 만에 도착한다. 따라서 정자가 난자와 만나는 나팔관까지 18cm를 가는 데 70분이 걸린다. 이 길이는 자기 몸 길이의 3천배나 된다. 난자와 결합하는 것은 오직 한 마리여서 난자를 향한 질주는 치열한 생존경쟁일 수밖에 없다. 정자가 난자를 만날 때는 강력한 생화학적 변화가 일어난다. 처음에 육체적 유혹을 향해 돌진할 때는 ‘암페타민’(amphetamine)과 유사한 천연 화학물질인 ‘페닐에틸아민’(phenylethylamine)이 생성된다. 오르가슴을 느끼는 시기에는 ‘옥시토신’(oxytocine)이라는 호르몬의 수치가 높아진다. 호르몬이 배우자를 구해 자손을 생산하도록 하는 생식의 병기인 셈이다. 이렇듯 생화학적 병기를 이용해 질을 점령한 정자들. 이들은 다시 난자를 만나기 위한 다양한 분자적 결합을 시도한다. 미국 뉴욕주립대 세포생물학자 니콜 샘슨 박사는 정자의 단백질 조각 ‘퍼틸린’(fertilin)이 난자의 표면에 있는 ‘인테그린’(integrin)이라는 수용체를 만나 수정에 이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아직까지 포유류의 수정을 둘러싼 의문은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정자세포가 난자를 향해 여성 생식기 내부를 항해하는 데 무엇이 영향을 끼치는지도 의문으로 남아 있다. 정자가 자궁에서 올라와 나팔관을 거쳐 난자에 이르는 경로를 찾는 방법이 베일에 싸여 있었던 것이다. 최근 이에 대한 두 가지 가설이 나왔다. 하나는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 미가엘 아이젠바흐 박사팀이 제시한 ‘열 추적설’이다. 정자가 열을 찾아 표적을 추적하는 미사일처럼 온도 감지기를 이용해 난자를 찾아간다는 것이다. 이들은 배란 직후 토끼의 생식기 곳곳의 온도를 측정해 정자가 따뜻한 부위를 향해 꿈틀대며 나아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난자가 정상적으로 수정되는 곳의 온도가 다른 부위보다 섭씨 2도가량 높았던 것이다. 만일 이러한 작용이 인간에게 일어난다면 인간 정자의 이동을 조절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난자를 속여 수정을 방해할 수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