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자리잡은 PPP, 젊은 관객들의 싱싱한 에너지… 아시아 최고 영화제의 자존심!
지난 10월6∼14일 5번째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는 자칭타칭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떠올랐음을 재확인했다. 20만명에 이르는 총관람객수, 빔 벤더스, 크지쉬토프 자누시, 왕자웨이, 장만옥 등 세계적인 감독과 배우들의 잇따른 방문…. 도쿄영화제쪽에서 “부산이 어찌 그리 세계 유수 언론에 자주 기사가 실리느냐, 도대체 보도자료를 어디로 어떻게 보내느냐”고 물어올 정도였다는 영화제 프로그래머의 말까지.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영화제 집행위원장인 사이몬 필드는 마치 부산국제영화제의 ‘홍보위원’이나 되는 것처럼 칭찬을 늘어놓았다. “도쿄영화제는 그렇게 강한 영화제가 아니고, 싱가포르영화제는 국제적으로 문제가 좀 많으며, 상하이영화제는 별로 국제적이지 못하다. 홍콩영화제 정도가 괜찮다. 부산? 아주 훌륭하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어찌 그리 빨리 성공했을까? 사이몬 필드가 이유를 제대로 짚어줬다. “실무자들이 영화제를 시작하기 전에 치밀하게 제대로 된 전략을 짰다. 아시아영화를 발굴하고 조명한다는 핵심 전략이나 영화제가 국제마켓에 어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걸 알고 시작했다. 사람들이 재밌고 질 높은 아시아영화제를 찾고 있었고, 아시아영화가 뚜렷이 강세를 띠고 있을 때와 맞아떨어졌다. 또 올해 3회를 맞은 부산프로모션플랜(PPP)이 수많은 해외 제작자와 배급자를 끌어오고 있지 않은가? 한국영화가 강해지는 것과 우연히 일치하기도 했고.”
좋은 감독 찾아내면 성공해서 돌아온다
그의 말처럼 이제 부산국제영화제를 언급할 때, PPP를 빼놓을 수 없게 됐다. 개막식날 김대중 대통령은 영상메시지를 통해 PPP의 성공을 추어올렸고, 아시아영화를 담당하는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PPP가 성공하면서 아시아의 쟁쟁한 감독들과 작품을 섭외하는 데 아주 수월해졌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다녔다. 일반에게는 낯선 PPP는 좋은 작품기획안을 갖고온 감독을 공식프로젝트로 뽑아 전세계의 제작자와 투자자와 맺어주는 프리마켓이다. <메이드 인 홍콩> <그해 불꽃놀이는 유난히 화려했다> 등으로 홍콩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떠오른 프루트 챈 감독을 보자. 그는 PPP의 도움을 받아 만든 <리틀 청>으로 올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은표범상을 수상한 뒤 부산을 찾았다. “<리틀 청>의 제작비 마련에 고심하던 중 PPP에서 만나 협상을 이룬 NHK로부터 투자를 받아냈고, 후반작업비는 PPP의 상금으로 충당했다. 또 PPP 수상결과가 알려지면서 프랑스 카날 플뤼와 합작하는 계기도 생겼다. 올해에는 다른 감독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PPP에 신청을 하지 않았다.”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이란 자파르 파나히의 <순환>이나 넷펙상을 수상한 중국 지아장케의 <플랫폼> 등도 PPP 출신이다. 자파르 파나히는 1회 때 <하얀 풍선>을 들고 부산을 찾았지만 같은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위세’에 눌려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올해 세 번째로 부산을 찾는 사이 세계적인 감독으로 커버렸다. “개인적으로 부산영화제를 무척 아끼고 사랑한다. 이란의 심각한 여성문제를 다룬 <순환>에 대해 정부가 상영을 금지시켰을 때 세계 유수의 국제영화제 관계자 6명에게 이 작품을 미리 보여주고 의견을 들었다. 그 중 1명이 부산의 김지석 프로그래머였다.” 김 프로그래머는 당시 도쿄영화제 관계자가 함께 있었지만 약간 술에 취한 자파르 파나히가 “나는 무조건 부산영화제가 최고야”라고 외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러니까 아시아 구석구석의 쓸 만한 작품을 시작단계에서 미리 발굴해 제작을 도와주고, 그 영화는 각종 국제영화제를 누비며 처음 인연을 맺은 부산으로 다시 찾아오는 순환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영화제가 애초 가장 중요한 전략으로 세웠던 ‘아시아영화의 창’이 비로소 완성됐다고나 할까. 올해 5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올라온 12개국 22편의 공식프로젝트에는 일본 이와이 순지, 대만 차이밍량, 중국 장위엔, 오스트레일리아의 클라라 로 등 세계적인 지명도를 가진 아시아 감독들이 대거 참여했고, 이들을 만나러 온 제작·배급 관계자가 북새통을 이뤄 프로젝트별로 적게는 10여건 많게는 30여건의 공식미팅을 이뤘다. 다 관객이 더 재미있다?
PPP는 영화제가 성공적으로 닻을 올린 뒤 시작했다. 영화제가 처음 열렸을 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성공을 거둔 이유는, 5년 사이 금세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자부하게 된 동력은, 영화제가 열릴 때면 늘 부산을 떠도는 이상한 ‘기운’에 있다고들 한다. 그 기운은 젊은 관객이 뿜어내는 ‘이상열기’다. 지난 10월8일 밤 수영만의 야외상영장에서 만난 한 관객은 “영화보다 영화를 보는 주변 관객이 더 놀랍고 재밌다”고 말했다. 과장이 아니었다. 하루종일 내리던 비가 계속 이어지는 바람에 야외에 마련된 객석은 ‘처참한’ 환경이었고, 자칫 취소되지는 않을까 우려할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3500여명의 관객이 찾아와 대부분 끝까지 자리를 지킨 채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어둠 속의 댄서>를 감상했다.
평론가이건, 감독이건, 제작 관계자이건 외국에서 온 손님들도 영화제가 어떠냐고 물으면 정말 100%에 가까울 정도로 똑같은 이야기로 말문을 연다. “이렇게 관객이 젊고, 굉장한 에너지를 내뿜는 영화제는 처음이다. 많은 영화와 접하고 싶어하는 열망과, 영화인들에 대한 넘치는 궁금증이 인상적이다. 하긴 이런 적극적인 의욕이, 호기심이 우리를 발전시킨다.”
오스트레일리아에 사는 여성감독 클라라 로가 이번에 처음 부산을 방문해 받은 감탄사는 1회 영화제 때 숱하게 들은 말 그대로다. 7일 밤 10시께 <밀리언 달러 호텔> 상영이 끝난 뒤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세계적인 거장 독일 빔 벤더스 감독은 쏟아지는 질문에 정성어린 답변을 하느라 12시가 다 되어서야 숙소로 향할 수 있었다.
해마다 반복되는 ‘이상열기’는 쌓이고 쌓인 어떤 갈증을 영화제가 해소해주기 때문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특히 영화제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세계와의 만남이 있다. 폴커 쉴뢴도르프(독일)의 <내 이름은 리타>, 켄 로치(영국)의 <빵과 장미>, 빈코 브레잔(크로아티아)의 <티토의 정신>, 아미르 카라쿨로프(카자흐스탄)의 <마지막 휴일> 등은 사회주의 혹은 자본주의가 지닌 체제의 명암을 다양한 장르에서 조명한 수작들이다. 하지만 국내 개봉은 이런저런 이유로 쉽지 않은 작품들이다. 또 미국역사 속에서 마리화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권력의 이유없는 폭력을 신랄하게 그린 론 맨(캐나다)의 다큐멘터리 <대마초>는 걸작이지만, 국내에서 만들어졌다면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나 <거짓말>처럼 날벼락 맞기 딱 좋은 작품이다.
정부 ‘짠 지원’이 성장 막을라
부산국제영화제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귀중품’으로 성장했다는 분명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에서 기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 의외다. 영화제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재원이 전혀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30억원에 이르는 예산의 절반이 정부와 부산시의 지원으로 채워지고 나머지는 입장료 수입이다. 정부가 손을 놓아버리면 맥 못추고 가라앉을 수밖에 없는 형국인데, 기획예산처는 내년부터 국고지원을 중단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국내의 다른 영화제들과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는 이유였다. 동분서주한 영화제쪽이 일단 내년까지 지원을 보장받았지만 내후년부터는 막막하다. 그래서 정부가 큰힘이 돼 200억원 정도의 기금을 마련한 광주비엔날레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김동호 집행위원장의 ‘투정’은 귀기울일 만하다.
“칸이나 베를린영화제 등 각 나라를 대표하는 영화제는 정부가 50회를 넘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한다. 400∼500개에 이르는 전세계 영화제 가운데 나름의 차별화 전략으로 이만큼 성장했는데, 아예 지원을 중단하겠다니 참 힘든 노릇이다.”
부산=이성욱 기자/ 한겨레 문화부

(사진/영화제의 거리가 된 부산남포동 극장가)
그의 말처럼 이제 부산국제영화제를 언급할 때, PPP를 빼놓을 수 없게 됐다. 개막식날 김대중 대통령은 영상메시지를 통해 PPP의 성공을 추어올렸고, 아시아영화를 담당하는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PPP가 성공하면서 아시아의 쟁쟁한 감독들과 작품을 섭외하는 데 아주 수월해졌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다녔다. 일반에게는 낯선 PPP는 좋은 작품기획안을 갖고온 감독을 공식프로젝트로 뽑아 전세계의 제작자와 투자자와 맺어주는 프리마켓이다. <메이드 인 홍콩> <그해 불꽃놀이는 유난히 화려했다> 등으로 홍콩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떠오른 프루트 챈 감독을 보자. 그는 PPP의 도움을 받아 만든 <리틀 청>으로 올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은표범상을 수상한 뒤 부산을 찾았다. “<리틀 청>의 제작비 마련에 고심하던 중 PPP에서 만나 협상을 이룬 NHK로부터 투자를 받아냈고, 후반작업비는 PPP의 상금으로 충당했다. 또 PPP 수상결과가 알려지면서 프랑스 카날 플뤼와 합작하는 계기도 생겼다. 올해에는 다른 감독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PPP에 신청을 하지 않았다.”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이란 자파르 파나히의 <순환>이나 넷펙상을 수상한 중국 지아장케의 <플랫폼> 등도 PPP 출신이다. 자파르 파나히는 1회 때 <하얀 풍선>을 들고 부산을 찾았지만 같은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위세’에 눌려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올해 세 번째로 부산을 찾는 사이 세계적인 감독으로 커버렸다. “개인적으로 부산영화제를 무척 아끼고 사랑한다. 이란의 심각한 여성문제를 다룬 <순환>에 대해 정부가 상영을 금지시켰을 때 세계 유수의 국제영화제 관계자 6명에게 이 작품을 미리 보여주고 의견을 들었다. 그 중 1명이 부산의 김지석 프로그래머였다.” 김 프로그래머는 당시 도쿄영화제 관계자가 함께 있었지만 약간 술에 취한 자파르 파나히가 “나는 무조건 부산영화제가 최고야”라고 외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러니까 아시아 구석구석의 쓸 만한 작품을 시작단계에서 미리 발굴해 제작을 도와주고, 그 영화는 각종 국제영화제를 누비며 처음 인연을 맺은 부산으로 다시 찾아오는 순환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영화제가 애초 가장 중요한 전략으로 세웠던 ‘아시아영화의 창’이 비로소 완성됐다고나 할까. 올해 5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올라온 12개국 22편의 공식프로젝트에는 일본 이와이 순지, 대만 차이밍량, 중국 장위엔, 오스트레일리아의 클라라 로 등 세계적인 지명도를 가진 아시아 감독들이 대거 참여했고, 이들을 만나러 온 제작·배급 관계자가 북새통을 이뤄 프로젝트별로 적게는 10여건 많게는 30여건의 공식미팅을 이뤘다. 다 관객이 더 재미있다?

(사진/신작<밀리언 달러 호텔>을 들고 온 빔 벤더스 감독은 남포동 거리에 핸드프린팅을 남기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사진/올 영화제의 폐막작으로 상영된 <화양연화>의 주인공 양조위와 장만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