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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부시를 조롱하는 싸움꾼 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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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4-1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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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부시, 창피한 줄 아시오.”

지난 3월23일 아카데미 다큐멘터리상을 받기 위해 무대로 올라온 마이클 무어의 한마디는 이라크 사람들의 머리 위로 폭탄이 쏟아지는 가운데 진행된 이 시상식의 묘한 긴장을 뒤흔들었다. 그는 “우리는 가짜 대통령을 선출한 조작된 선거 결과, 엉터리 이유로 우리를 전쟁에 보내는 대통령의 시대에 살게 됐다”고 열변을 토했다.

찰톤 헤스톤과 마찬가지로 총의 천국 미시건주 플린트에서 태어난 무어는 어렸을 때부터 총에 미쳤고 10대 때 사격 명수상을 받았으며, 전국총기협회 평생회원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만든 학교 신문을 압수당해 ‘문제아’의 면모를 드날렸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아예 학교교육위원에 출마해 당선돼 교장·교감을 경악시키기도 했다. 대학 자퇴 뒤 10년 동안 스스로 만든 주간지인 를 편집하다 집을 팔아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첫 영화는 노동자들을 대량해고한 자동차업계의 거물을 다룬 <로저와 나>다. 심각한 주제를 유쾌하고 리듬감 있게, 그러나 섬뜩할 정도로 날카롭게 해부하고 조롱하는 그의 작품을 보노라면 웃다가 울다가 정신이 없어진다.

무어는 영화, 저서와 웹사이트(michaelmoore.com)를 통해 줄기차게 부시 행정부를 비판해왔다. 미국·영국·오스트레일리아·독일 등에서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멍청한 백인들>에서 그는 부시의 집권을 ‘순 미국식 쿠데타’로 규정한다. 플로리다 주지사 젭 부시(조지 부시의 둘째동생)와 선거책임자 캐서린 해리스가 선거 전부터 흑인들의 투표 참여를 막기 위해 경범죄 등을 이유로 선거인 명단에서 흑인 10만여명을 빼버리고, 고어를 찍으려다 엉뚱한 후보를 찍게 만든 투표용지를 고안했으며, 구멍이 덜 뚫린 투표용지도 부시쪽이면 유효, 고어쪽이면 무효로 처리하고, 대법원을 통해 재검표를 막는 등 온갖 부정선거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우리가 선출하지도 않았는데 지금 백악관에 떡 버티고 앉아 있는 왕도둑 부시”는 미국 500대 기업의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부자 백인들이 미국 시민들을 착취하도록 돕고 있다고 비난한다.

무어는 또한 이라크 침공 직전인 3월17일 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미국민의 일상을 위협하는 것은 이라크가 아니라 부시 집권 뒤 늘어난 실업률, 주식하락, 불안해진 연금, 기름값 인상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경제문제이며, 미국 어린이 6명 가운데 1명이 빈곤에 시달리는 것이야말로 진짜 폭력”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다음 작품 <화씨 911>에서 부시 전 대통령과 오사마 빈 라덴 일족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추적하고, 부시 현 대통령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 비극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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