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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이상은] 진실로 ‘아티스트’를 아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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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4-1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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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오르면 여사제가 된다”는 가수 이상은, 그와 대화하며 정신적 오르가슴을 느끼다

10여년 전 양희은씨가 암수술을 하고 병원에 입원했을 때다. 가까운 지인이라 병 문안을 갔다. 많이 힘들 텐데도 일어나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들어가자마자 TV를 가리키며 하는 말이 “나 쟤 좋아”였다. 황당해서 TV를 봤다. 화면에선 남잔지 여잔지 알 수 없는 꺽다리 선머슴애가 겅중거리며 <담다디>를 부르고 있었다. 내가 그를 처음 ‘접수’한 장면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듯 그는 대중의 사랑을 지나칠 정도로 받던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다가 도인이 돼서 갑자기 우리 앞에 나타났다. 혹자는 그를 음유시인이 돼서 나타났다지만 그 때 이미 그의 노래는 ‘시’를 넘어 동양철학의 화두나 불교의 선문답에 가까이 가 있었다. 매스컴마다 그의 변신을 떠들어댔지만 어느 곳도 변신의 동기를 제대로 알려준 곳이 없었다. 난 그 동기가 궁금했다.

한국 팬과 일본 팬은 어떻게 다른가


사진/ 이상은이 자주 찾는다는 서울 홍대앞 레코드점에서 필자와 함께.(박승화 기자)
봄 햇살이 유난히 따사로운 어느 날 신촌에서 그를 만났다. 변화의 동기부터 물어봤다. 그는 자신의 그러한 변화의 동기를 사람과의 만남에서 찾았다. 대중가요를 통해 세상을 보는 글을 쓰던 어떤 언니가 그의 미국 유학 이후의 노래들을 듣고 일본활동을 권했다. 리체(그의 영어이름이다)도 얘기했지만 일본은 문화적으로 우리보다 앞선 나라다(옛날엔 우리에게서 모든 걸 배워갔다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지금은 그네들이 훨씬 어른스럽다).

리체의 표현에 따르면 꼭 일본이라서가 아니라 선진국으로서의 성숙함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대중은 아티스트(아니 그냥 대중가수라고 해두자) 한명이 인간적으로 성숙해져 가는 과정을 바라봐주지도 않고 기다려주지도 않는다. 그냥 소비하려고만 든다. 나이든 가수들이 피를 토하듯 신곡을 내도 팬들은 그저 자기가 소싯적 좋아한 옛날 노래들만 들으려 하지 신곡은 거들떠도 안 본다. 그냥 그 시절 유행한 노래를 좋아하는 것일 뿐 가수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진정한 팬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거다.

한데 일본은 이미 그런 문화가 정착이 되어 있었다. 그의 노래를 통해 그의 성장을 지켜보는, 함께 커가는 팬들이 있는 거다. 거기다 이미 일본에선 대안이 주류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문화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그의 음악세계를 윤택하게 살찌울 수 있었다. 특히 <공무도하가> 이후 팬층이 좁고 깊어지면서 각계의 많은 전문가들을 만나게 됐고 그의 상상력은 물 만난 고기처럼 일본의 아티스트를 갈망하는 팬들 사이를 빠르게 헤엄쳐나간 거다.

‘좁고 깊은’ 팬을 가진 그의 음반이 한국에서 ‘먹힐지’ 걱정됐지만 일본으로 ‘가고’, 한국으로 ‘오고’ 따위의 개념에서 이미 벗어난 그의 음악을 생각한다면 기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도 분명 ‘깊은’ 팬들이 있다. ‘장’이 활발히 마련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예전에 어느 인터뷰 기사에서 이제 <담다디>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걸 읽은 적이 있었다. 한동안 그는 자기 자신은 이미 <담다디>로부터 훨씬 멀리 그리고 높이 올라와 있는데, 만들어진 이미지 소비에만 열을 올리는 우리네 매스컴에선 그가 어떤 깨달음을 얻었건 주구장창 <담다디> 얘기만 해서 인터뷰하기를 꺼리기까지 했다. 나도 고백하건대 유명한 배우부모를 둔 덕에 기를 쓰고 연기해도 징그럽게 따라붙던 ‘누구누구 딸’이란 꼬리표가 참 싫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턴가 나를 ‘누구의 딸’이 아닌 ‘배우 오지혜’로 찾아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난 깨달았다. 내가 도망간다고 떨궈지는 게 아니었구나. 그저 세월이 나를 성숙하게 하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그에게 <담다디>는 내가 그토록 뛰어넘고 싶어한 부모 같은 존재였을지 모른다. 30대 중반이 된 그는 이젠 그런 성장의 터널에 오히려 감사한단다. 내가 지금 그렇듯….

털털한 성격, 그리고 신앙심

사진/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노력이야말로 ‘팬사랑’이라고 그는 믿는다. 그것이 이상은의 ‘길’이다.(박승화 기자)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것과 팬들과의 소통 가운데 어느 쪽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이런 질문은 어린아이한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하고 묻는 것과 같은 수준이지만 말이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아티스트의 자의식과 팬과의 소통은 조금 다른 얘기다. 팬서비스만이 팬을 향한 사랑이라고 할 순 없다(그는 요즘도 콘서트에서 앙코르를 받으면 가벼운 마음으로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며 <담다디>를 불러준다. 유쾌한 팬서비스가 아닐 수 없다).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노력도 팬사랑이다. 문화예술의 마당엔 그냥 단순히 놀자판만이 아니라 ‘얘들아, 저 달을 보자!’ 하는 태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신의 리더로서 말이다.” 죽이는 ‘현답’이다.

노래든 연기든 무대에 서는 사람들 사이엔 비밀리에 내통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는 내가 쓴 김윤아에 대한 글에서 샤먼(shaman)에 대한 얘기가 인상적이었다면서 자신도 무대에 서면 ‘여사제’가 됐다고 생각한단다. 일단 무대에 오르면 객석에 아무리 똑똑하고 지위가 높은 사람이 앉아 있더라도 자신은 ‘달’을 가리키는 여사제가 된다는 거다. 그의 콘서트나 내 공연을 보고 간 많은 관객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대 위에 서 있는 제사장들에 의해 자신의 영혼이 제의를 지내고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까 콘서트건 연극이건 사제의 손 끝이 ‘달’을 가리킨다면 그건 곧 한판의 굿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알았을까 그와 대화를 하면서 난 정신적 오르가슴을 느꼈다.

그러나 여사제는 무대에서 내려와서도 계속 ‘달’ 얘길 했고 그러다 보니 ‘돈’이 도망을 갔다. 돈 없이 지낸 시절이 있었지만 한번도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건 털털한 성격과 검소한 생활 덕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의 신앙심 때문이었다. 이제 겨우 30대 중반인 그가 10여년은 내공을 쌓아야 가능한 ‘힘 뺀’ 소리로 노래하는 저력이 그의 신앙일지 모른다고 생각해본다. 그게 아니라면 그는 너무 빨리 늙어버린 걸지 모른다. 힘 빼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건데….

며칠 전 그는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가수들의 모임에 얼굴을 내밀고 성명서도 읽었다. 성명서를 읽은 게 일본이었다면 더 선전효과가 컸을 거라면서 한국에서 무력감을 느끼는 게 억울하다고 한다. 대중적 인기에 대해선 허허롭던 그가 프로파간다의 효과에 대해선 예민해진다. 이런 그를 두고 ‘진짜 딴따라’라고 하는 거다. 샤먼의 후신 말이다.

영화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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