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볼링 포 콜럼바인>에 드러난 미국의 야만성… 일상적 폭력의 본질을 유쾌하게 풀어내
‘미국’이 떴다.
미국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높아져 간다. 미국은 민주주의와 자유의 상징이며 착한 나라라는 ‘고정관념’이 더 이상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지난 4월11일 오후 드디어 대한민국의 ‘국회’도 미국의 본모습을 찾아나섰다. 국회 바른정치실천연구회(대표 신기남 민주당 의원) 주최로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볼링 포 콜럼바인> 시사회가 열렸다. 대학생들의 교내 시사회가 아니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미국 비판 영화가 상영된 것이다.
전쟁의 본질인 폭력에 대한 성찰
영화가 시작되기 전 신기남 의원은 “자유의 상징인 미국에 폭력성이 잠재해 있음을 보여주는 이 영화가 전쟁의 본질인 폭력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침공 직전 이라크에 직접 다녀온 송영길 의원도 “남의 나라를 침략한 침략군이 그 나라 관리들을 전범으로 체포하겠다는 이율배반의 시대”라고 지적했다. 송 의원은 또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만든 전술 핵무기, 집속탄 등 가장 끔찍한 대량살상무기들은 깨끗한 외과수술 무기로 포장되고, 가난한 나라들의 무기는 더럽고 위험한 것으로 묘사하는 인식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가 이런 전쟁을 용인하고 세뇌하면 계속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므로 깨어 있기 위해 이 영화를 본다”고 말했다.
그럼 <볼링 포 콜럼바인>은 도대체 어떤 영화일까
1999년 4월20일 농부는 농장 일하고, 교사는 공부를 가르치고, 대통령은 전쟁놀이에 열중하던 미국의 평범한 아침, 콜로라도주 리틀턴의 콜럼바인고등학교 학생 에릭과 딜런은 볼링을 한 뒤 학교로 갔다. 그들은 900여발의 총알을 난사해 학생 12명과 교사 한명을 죽이고 자살했다. 그날은 클린턴 대통령이 코소보 전역에 걸쳐 미군 대공습을 명령한 날이었다. 이 사건 직후 미시간주 플린트에서는 6살배기 사내아이가 동갑 여자아이를 총으로 쏴 죽이는 끔찍한 일이 또 벌어졌다. 마이클 무어 감독은 미국에서 왜 이런 끔찍한 폭력이 계속되는지 알기 위해 사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역사를 들여다본다. 그 기록이 <…콜럼바인>이다.
미국에서는 연평균 1만1127명이 총에 맞아 죽는다. 일본은 39명, 오스트레일리아 65명, 영국 68명, 캐나다 165명, 프랑스 255명, 독일 381명이다. 은행 계좌를 개설하면 선물로 총을 받고, 사설 사격연습장에는 “내 가족은 내 힘으로 지키겠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미국은 총의 천국이다. 슈퍼마켓에서 총과 총알을 마음대로 살 수 있다. 콜럼바인 사건의 범인들도 슈퍼마켓에서 총알을 샀다. 그러나 총기 소유가 자유로운 캐나다 사람들은 아무에게나 총질을 하지 않는다. 그럼 우익들의 주장처럼 폭력적인 영화와 텔레비전, 록음악 등이 원인일까 똑같이 폭력영화를 즐기는 캐나다나 일본 청소년은 그렇지 않다.
해마다 1만여명이 총에 맞아 죽는 나라
문제는 허구가 아니라 실제다. 5분 동안 휘리릭 미국 역사를 되돌아보는 ‘귀여운’ 애니메이션은 압권이다. 미국 정부와 군수업체들이 원주민, 마녀사냥의 희생자, 영국군, 노예로 부려먹던 흑인, 테러집단으로 대상을 바꿔가며 끊임없이 두려움의 표적을 찾아왔으며, ‘공포’가 미국의 총기 소유자들을 공격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악의 축’이나 ‘테러국가’가 미국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대통령의 경고야말로 사람들을 공포와 불안에 몰아넣는 주범이다. 국민이 공포에 사로잡힐수록 지배층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어는 더 나아가 백악관이 이러한 대중조작을 통해 제3세계에 대한 폭력적인 개입을 정당화하려 한다고 꼬집는다.
공포를 먹잇감 삼아 미국의 군수업체들은 엄청난 부를 챙겼다. 콜럼바인고등학교가 있는 리틀턴에는 세계 최대의 무기공장 록히드 마틴사가 있다. 록히드 직원 5천여명의 아이들 대부분이 콜럼바인고교에 다닌다. 한달에 한번 록히드는 한밤중에 콜럼바인고교 앞길로 탄두가 장착된 로켓을 공군 기지로 운반한다. 이 무기로 지난 50년 동안 미국은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민간인 수천만명을 죽였다.
전미총기협회(NRA) 등으로 대표되는 백인 군중들은 또 다른 가해자다. 총기협회는 아이들의 총기 사망사건이 난 곳마다 찾아다니며 집회를 열었다. 회장인 찰톤 헤스턴은 “죽어도 총은 포기 못해. 난 다만 이 나라를 건설한 현명한 백인 조상들이 물려준 권리를 즐기는 거야. 헌법에 보장된 총기소지 권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뭉쳐야 한다”고 외친다. 헤스턴이 사태의 원인인지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아이들의 죽음 앞에서 총기 수호를 외치는 그의 모습은 섬뜩하다.
폭력과 공포를 먹고사는 사람들
여자아이를 쏴 죽인 6살 소년의 사연은 또 무엇인가 세계최대기업 제너럴모터스(GM)의 본거지인 플린트시의 외곽에는 미국이라고 믿기 어려운 처참한 빈민가가 늘어서 있다. 그 소년의 엄마인 어린 이혼녀 타말라 오웬스는 정부 보조금을 갚기 위해 왕복 3시간이나 걸리는 부촌으로 출근해 부자들을 위해 사탕과 음식을 팔았다. 그는 아이들의 얼굴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고 일주일에 70시간을 일했지만 집값을 내지 못해 쫓겨났다. 아이는 얹혀살게 된 삼촌 집에서 총을 꺼내 사건을 저질렀다. 경찰서에서 아이가 그린 것은 작은 집과 자신이었다.
거대한 군산복합체 사회, 흑인 등 약자에 대한 철저한 차별과 범죄자라는 낙인, 빈민들에게 빌려준 돈을 갚으라는 가혹한 사회보장제도, 공포와 폭력만을 강조하는 언론과 정부가 미국인들이 서로에게 총질하는 폭력적 사회로 만들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 묵직한 이야기들이 전혀 심각하거나 부담스럽지 않고 정말 유쾌하면서 날카롭다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사상 최고 흥행기록을 세웠고, 아카데미·칸 영화제 등의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4월24일 서울 코아아트홀과 메가박스에서 한정개봉한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사진/ 미국의 이율배반을 영상으로 확인하라! 지난 4월11일 국회 바른정치실천연구회가 마련한 〈볼링 포 콜럼바인〉시사회.(이용호 기자)

사진/ 마이클 무어 감독은 미국에서 끔찍한 폭력이 계속되는 이유를 날카롭게 파헤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