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회’
등록 : 2003-04-09 00:00 수정 :
장애인 복지관을 무시로 드나들면서도 여성 장애인들을 마주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지역문제에 열심이신 회장님 덕에 각종 행사나 ‘핵폐기장 반대’ 집회 때마다 장애인협회 회원들의 애쓰는 모습이 이제 눈에 익다.
상담을 통해 간간이 여성 장애인들을 만나보면서 사회적 지원 시스템이나 스스로의 모임이 부족함에 안타까움만 가졌던 터에, 영광여성장애인교육에 와달라는 제의에 거절도 못하고 잔뜩 부담만 갖고 있었다.
내가 비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편견이 있는 건 아닌지, 혹은 오버된 배려를 하는 건 아닌지 가늠이 가지 않는 맘으로 여성 장애인 운동을 하는 전문가를 추천하며 넌지시 뒷걸음치자, 회장님의 일성이 내 맘을 곧추세우게 한다.
“그냥 이들도 여성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지나치게 여성 장애인이라는 것을 의식하기보다 똑같은 여성의 관점에서 여성 인권문제를 이야기하면 됩니다.” 단호한 말에 더 이상 다른 토를 달 수 없었다.
‘여성 장애인과 인권’이라는 다소 거창한 주제를 앞세운 채 교육장에 들어서자 낯익은 휠체어에 의지한 석진이 엄마와 아빠가 눈에 띈다. 다가가 인사하자 “오메 우리 선상님 오셨네”라며 펄쩍 뛸 듯 반가워하신다. 법성마을 한글교실에 나오는 부부이시다. 몸이 불편한 부인 때문에 항상 함께 다니신다.
교육장을 꽉 채운 100여명의 영광지역 장애 여성들이 한자리에 모이니 인사말하는 회장님도 감격스러운가 보다. 12년 영광장애인협회 역사 이래 여성 장애인만 모인 것이 처음이란다. 하긴 여성 장애인 운동이 깃발 든 지 98년이라고 하니 그도 그럴 법하다.
드문드문 아저씨들도 보였지만, 대부분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머니 연배의 여성들이었다.
한 시간으로 약속한 시간이 10여분을 넘어서자 졸음에 겨운 사람이 드문드문 보이지만 진지한 눈빛들에 자극을 받는다.
강의를 마치고 서둘러 빠져나온 교육장에서는 여성 장애인 모임인 ‘소나무회’가 결성됐고 회장, 부회장을 뽑아 여성 장애인 스스로의 모임을 꾸렸다고 한다. 반가운 소식이다.
여성으로, 장애인으로, 농촌 여성으로 짊어져야 했던 이중삼중의 어려움을 스스로의 힘으로 거둬내려는 영광 여성 장애인들의 발걸음이 힘차게 돋음질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새살 돋아내는 소나무의 튼실한 봄 기둥을 안아보고픈 마음이다.
이태옥/ 영광 여성의전화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