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리기
40, 50대의 폐경기 여성이 흔히 경험하는 이른바 ‘빈 둥우리 증후군’은 다분히 심리적인 문제다. 새끼들이 어릴 때는 벌레를 물어다 먹이느라고 바쁘던 어미 새를, 어느덧 크게 자라버린 새끼들이 훨훨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빈 둥우리에 홀로 앉아 있는 모습에 비유한 익살스러운 용어다. 어린 자식들을 키울 때는 정신없이 나날을 보내다가 문득 자식들이 다 성장해 뿔뿔이 헤어지면 혼자서 빈집에 조용히 있게 되는 가정주부들. 이들의 허전하고 우울한 심리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다 갑자기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겨 지금까지 달려온 길을 되돌아보는 것과 흡사한 경우다. 한 20년 동안 거울 들여다볼 시간이 없던 사람이 오랜만에 문득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면서 너무나 많이 변한 자신에게 놀라는 것과 비슷하다 하겠다.
50살을 전후한 여자는 몇 가지 중요한 변화와 직면하게 된다. 먼저 ‘아름다움과 매력을 풍기는 여성성’이 나에게서 영원히 떠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다. 아직도 나에게 여성으로서의 매력이 그대로 남아 있을까 하는 회의가 느껴진다. 싱싱한 젊음이 나를 버리고 어디론가 떠나가는 듯한 허전함도 있다. 희끗희끗한 머리는 염색으로 임시변통한다 하더라도 시큰거리는 무릎과 뻣뻣한 허리가 마음에 걸리기 시작한다. 때론 갑자기 쓸모없어진 것 같은 섭섭함도 느껴진다. 여태까지 나에게만 매달리던 아이들이 다 컸다고, 혹은 먼 데서 공부한다고, 또는 독립한다고 내 곁을 떠난다. 역시 중년이 된 남편이 여느 때보다 바깥일에 더 빠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제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별로 없네 하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그럼 이제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하는 회의도 찾아온다. 나는 무엇 때문에 지금까지 이 고생을 했나, 앞으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우울한 느낌이 스스로를 감싸온다.
물론 일부 여성들은 모든 일에 너무 바쁘고 만족하고 행복하기 때문에 나이를 어떻게 먹었는지, 세월이 어떻게 지나는지 의식하지 못한 채 지나고 있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여성들이 경험하는 증상은 있게 마련이다. ‘빈 둥우리 증후군’을 미리 예방하거나 쉽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알맞은 마음의 준비, 생활태도의 변화, 생활환경의 재조정, 새로운 할 일의 발굴 등으로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갱년기는 여성의 가을이다. 봄은 꽃이 있어 아름답고, 가을은 단풍이 있어 아름답다. 꽃은 희망을 안고 있고, 단풍은 결실을 품고 있다. 가을은 가을대로 아름답다.
전세일/ 포천중문의대 대체의학원 원장

일러스트레이션/ 방기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