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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에덴동산이 울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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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4-0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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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토화되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본산 이라크… 유서 깊은 도시에서의 전쟁은 문화파괴 범죄

사진/ 이라크전은 후세인과 부시의 개인 전쟁이 아닐까? 전쟁은 1991년 걸프전 뒤 바그다드 시내 풍경 (정문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라크 공격시계의 태엽을 계속 감고 있다. 전쟁 같지 않은 전쟁 앞에서 우리는 한갓 구경꾼으로 전락해버렸다. 전쟁은 강자의 횡포로 약자의 모든 것을 앗아간다. 건축물, 인간의 기록 등 모든 것들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바빌론 유적복구, 도루묵 되는가

인류문화사의 주된 흐름은 언제나 강자의 건축물로 표징된다. 반대쪽 약자의 건축물 운명은 ‘전쟁과 평화’ 사이에 끼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만 보아도 귀중한 유산들 대부분이 중국·일본·몽골 등 주변국의 말발굽과 불길 속에 사라져갔다. 가까운 시대인 한국전쟁 때도 마찬가지였다. 전폭기에 의한 무차별 초토화 작전이나 대량파괴로 인해 땅까지 파일 정도였다.


1991년 새해 벽두 우리는 페르시안 걸프에서 터진 전쟁소식을 들었다. 마치 전자게임과도 같은…. 미국은 그때도 나름대로 세계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한다고 했다. 그 당시 나는 ‘정의’를 외치는 그 전쟁에서 누가 이기든 지든 큰 관심이 없었다. 정작 신경이 쓰인 것은 전쟁으로 인해 파괴될지 모를 이라크 문화유산이었다. 그때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감스럽게도 유네스코나 세계 각지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사진/ 9세기에 세운 느브갓네살 궁궐 안의 지구라트(왼쪽). 사자를 안고 있는 길가메시.(자료 : 루브르 미술관)
다시 불붙은 이번 전쟁은 더욱 걱정스럽다. 바그다드를 비롯해 곳곳에서 시가전을 벌여야 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라크 내 1만곳 이상의 고대유적이 파괴 위기에 놓였다. 이라크 유적은 이라크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것이다.

전쟁 전까지만 해도 후세인은 찬란한 메소포타미아 문명 본산지인 바빌론(Babylon)의 유적 복구에 정열적으로 몰두했다. 메소포타미아는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사이’라는 뜻인데 고대 그리스인이 붙인 말이다. 그곳 ‘비옥한 초승달 지역’은 이집트 나일강 지역과 함께 세계 4대 문명권의 하나였다. 강 너비는 수십m에서 1~2km에 달한다.

우르(Ur)·우루크(Uruk)·바빌론 유적 등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핵이다. 5천년의 역사를 이어온 원주민 마단(ma’dan)의 태어난 곳이고, 아시리안(Assyrian)·수메리안(Sumerian)·바빌로니안(Babylonian) 제국의 터전이었다. 성서 속 아브라함은 고향 갈데아의 우르에서 출발해 흙탕물이 흐르는 유프라테스(성서에서는 유브라테)강을 거슬러올라가 바빌론(바벨론)에 이른다. 우루크는 4500년 전 <길가메시 서사시>(the Epic of Gilgamesh)의 탄생지다. 길가메시는 그리스의 <오디세이>에 비할 만한 서사시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도시 기록서다. 여기에는 우루크에서 일어난 홍수뿐 아니라 바빌로니아의 노아 대홍수도 묘사돼 있다.

길가메시는 우루크의 왕이었는데 뒤에 길가메시 영웅시의 주인공으로 그려지면서 반신반인(半神半人)으로 묘사됐다. 1862년 영국인 조지 스미스가 공개해 유명해진 길가메시상은 이후 프랑스가 약탈해갔다.

세계적 불가사의 ‘공중정원’을 아십니까

사진/ <공중정원 상상도>. 공중에 있는 정원이 아니라 높은 곳에 있어 붙은 이름이다.

고대도시 바빌론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한 독일 고고학자의 발굴(1899~1912)에 의해서였다. ‘바빌론’은 ‘신(神)의 문(門)’이란 뜻인데, 수도 바그다드에서 남쪽으로 90Km 정도 떨어진 유프라테스 강변의 성벽도시다. 이 도시에는 ‘고단(高壇) 개념’의 종교건축으로서 지구라트와 ‘신의 주거 개념’으로서의 신전이 만들어졌다. 구약성서에 따르면 바빌론 성벽은 이중으로 되어 있는데 외벽 두께는 21피트, 내벽 두께는 12피트, 성문 높이는 62m에 이르렀다(예레미야 51). 고대 바빌론은 8~13세기에는 사라센 제국의 수도였고, <함무라비 법전>(Code of Hammurabi)으로 유명한 함무라비(B.C.1792~1750께) 왕 때 크게 발전하였다.

당초 이라크인들은 바빌론의 유적을 내팽개친 상황이었다. 그러나 1978년부터 후세인은 복원계획을 세우고, 1986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복구사업을 시작했다. 특히 사마라시의 바빌론 왕 느브갓네살(Nebuchadnezzar)의 유적 복구에 힘썼다. 느브갓네살은 역사적으로 유대왕국을 무너뜨렸고, 시리아·요르단·쿠웨이트 지역을 손아귀에 넣은 이라크의 전설적 영웅이었다. 느브갓네살 궁궐 안에 있는 지구라트는 9세기에 만든 것으로 1200년이나 된 탑이다. 바벨탑의 원형이라고 생각되는 지구라트는 탑 신전으로 달의 신을 제사지내는 성탑(聖塔)이었다. 도시생활의 중심인 이 탑은 400단의 벽돌조로 높이는 52m나 된다. 현재는 출입이 막혀 있고 인적이 끊긴 지 오래다.

사진/ 하트라 왕궁의 유구. 지금 위협받고 있다(왼쪽). 에덴동산으로 알려진 곳(오른쪽).
또 바빌론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인 ‘공중정원’(Hanging Garden) 유적이 있다. 공중정원은 공중에 있는 정원이 아니라 높은 곳에 있어 붙은 이름이다. 이 정원은 기원전 500년께 느브갓네살 2세가 사랑하는 왕비 아미티스를 위해 지은 것으로 왕비는 메디아 왕국의 키약사레스 왕의 딸이었다. 아미티스는 산이 많고 과일과 꽃이 풍성한 땅에서 자랐기 때문에 시집온 바빌론 땅을 좋아하지 않았다. 바빌론은 비도 잘 오지 않고 모래바람이 이는 삭막한 평탄지였기 때문이다. 왕은 사랑하는 왕비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고향 같은 환경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명령을 받은 건축가는 왕궁 광장 중앙 지구라트에 이어 피라미드식 건물을 세웠다. 재료는 햇빛으로 말린 벽돌과 가마에서 구운 암갈색 벽돌을 사용했다. 높이 105m로 30층 정도 되었는데 층마다 정원을 만들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삼림으로 뒤덮인 작은 산과 같았다. 정원은 유프라테스 강물을 펌프로 끌어올려 댔다. 정원의 아랫부분 중정을 중심으로 방을 배치해 늘 서늘하도록 했다. 그 방에서 창 너머로 바라보는 꽃과 나무의 모습은 매우 아름다웠다.

‘선악과’ 사이에 두고 치열한 공방전

사진/ 1991년 걸프전으로 일부 파괴된 알카지마인 사원. 전쟁으로 파괴된 사원을 전후 복구하고 있다. 이 사원도 다시 위기에 놓여 있다.

하트라(Hatra)는 이라크 북부 모슬주에 있는 역사도시로 2천년 전 고대 하트라 왕국이 있던 곳이다. 도시는 아랍인이 B.C. 1세기에 만들었는데 이슬람 건축의 원류를 볼 수 있는 원형도시다. 종교도시로 시작해 뒷날 군사기지와 대상(隊商)들의 휴식지 역할을 하였다. 그 뒤 세번에 걸친 로마군의 포위에도 견뎌냈으나 3세기 중엽 붕괴되었다. 성벽 주변에는 1951년 이래 이라크 고고국(考古局)에 의해 발굴된 9개의 신전·묘지·거주구(居住區) 등이 있다. 성벽은 이중으로 되어 있고 지름 약 2km의 원형이다. 하트라는 도시 전체가 1985년 세계유산 목록에 등록되었는데 그 유구가 지금 위기에 놓여 있다.

바그다드 남쪽 100km에 있는 키시 유적은 현재 이른바 ‘비행금지구역’ 안에 들어 있다. 전쟁의 중심이란 뜻이다. 키시 유적은 기원전 2700년 전 수메르인들이 만든 것이다. 여기에는 당시 궁전의 것으로 보이는 두께 3m의 담 등 유적이 남아 있다. 지금은 발굴조사조차 중단된 상태다.

이라크 남쪽 삼각 델타지역 알쿠르나(Al-Qurnah)에는 ‘에덴동산’(the Garden of Eden)이라고 추정되는 곳이 있다. 에덴동산은 옛 바빌로니아 평원 일부인 딜문섬으로 추정된다. 아담과 이브(하와)가 살던 낙원 같은 동산을 흐르던 에덴에서 4개의 지류(비손·기혼·힛데겔·유브라데)를 이뤘다고 전하는데, 이것이 오늘의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으로 여겨진다. 알쿠르나에는 선악과(善惡果)라는 사목(死木)도 남아 있다. 이라크에게 이곳은 평화를 상징하는 파라다이스다. 그러나 지금 그 강가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치러지고 있다.

나는 무엇보다 이번 전쟁으로 건축물과 유물 파괴의 문제를 우려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이 안타깝다. 걸프전 때도 언론보도는 스커드 미사일의 성능과 전황에 대한 보도만 했지 유산들이 어떻게 파괴되거나 또는 지켜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하지 않았다.

인구 500만의 도시 바그다드는 밤마다 미·영군에 의해 융단폭격을 당하고 있다. 바그다드는 750년부터 죽 수도로서의 자리를 지켜왔다. 걸프전 때도 건축사적으로 가치 있는 이라크 ‘국방부 건물’은 피격되어 주저앉았다. 또한 이라크 국립박물관은 전쟁 때 주요 유물들을 지하로 옮겼는데 장식품·철기류 등이 습기에 썩고 있다. 그 박물관이 이번 공격 초에 또 폭격을 당했다.

1954년 5월14일 국가 간에 ‘무력충돌시 문화유산 보호에 관한 협약’(헤이그 협정)을 만들었다. 이는 인류의 문화유산인 각국의 문화재를 무력충돌시 파괴행위로부터 보존하기 위해 평상시 이에 대한 국가적·국제적 홍보 예방체제를 확립하고자 만든 것이다. 중국·프랑스·이탈리아·독일 등 103개국이 가입했지만, 미국·영국을 비롯해 우리나라와 북한·일본 등은 빠졌다. 미국은 왜 가입하지 않았는가 사실 미국 20년의 근·현대건축사는 이라크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전쟁은 집권자의 게임의 법칙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유서 깊은 도시에서의 전쟁은 문화파괴 범죄에 해당된다.

김정동/ 목원대 건축학과 교수·문화재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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