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의 성격과 대인관계에 힌트를 주는 <심영섭의 시네마 싸이콜로지>
각각의 작품을 정성껏 검토한 영화평론도 한데 묶어놓으면 한 호흡으로 죽 읽어가기가 쉽지 않다. 개별적으로는 자기 완결성이 있지만 여러 글이 병렬로 이어지면 기승전결 같은 구조를 갖추기가 힘들어 아무래도 ‘읽는 맛’이나 집중력이 떨어진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포괄하는 심리학은 문학·영화·미술 등 현대의 문화 텍스트를 꿰뚫어보는 중요한 분석틀이 된 지 오래다. 그렇지만 정신분석학을 따로 공부하기도 난감할뿐더러 이를 자기 자신에게 써먹거나 문화적 도구로 응용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심영섭의 시네마 싸이콜로지>를 펼쳐들어 읽는 속도에 가속이 붙거나 자신의 성격이나 대인관계 등에 관한 의미심장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면(아마 그럴 거라고 추정해보지만) 이 책은 성공적이다. 영화평론이 고고한 척 튀어보이지 않고 작품의 특징을 콕 집어내고는 이를 심리학의 일용할 양식으로 써먹는다. 영화가 심리학의 ‘하녀’쯤으로 전락했다고 하면 과장된 악담일 것이고, 영화와 정신분석학 모두 득이 되는 ‘윈윈 전략’이 제대로 들어맞은 경우다.
영화 <파이란>과 현실에서 만난 환자
성격장애 가운데 ‘수동공격성’이란 게 있다. 대인관계에서 자기 분노를 ‘이상한’ 방법으로 표현해 상대방을 난처하게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지은이는 최민식의 물오른 연기를 기막히게 보여준 영화 <파이란>을 들어 설명하기 전에 자신이 직접 만난 환자 이야기로 이 의학적 용어에 현실감을 불어넣는다. 여자환자는 남들에게 사랑받지 못할까봐 또는 거절당할까봐 모든 사람과 잘 지내는 척하지만, 실은 간접적 방식으로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특히 남편처럼 그와 가까운 사람을 더욱 괴롭히는 역설적 결과를 낳는다. ‘나에게 혹시 그런 점이 있지 않을까’ 하고 은근히 의심이 들면, <파이란>에서 스스로를 ‘국가대표(급) 호구’라고 비하하는 삼류깡패 강재를 유심히 살펴볼 일이다. “강재는 수동공격형 성격이 작품 속에 잘 녹아들어간 돋보이는 캐릭터”기 때문이다. 처방도 해준다. “모든 정신병리의 근원은 현실을 투명하게 지각하기 힘들거나,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데 있다. 그 가운데도 특히 분노는 억압될수록 언젠가는 폭발하는 끓는 용암 같은 것이다.” 그러니 분노를 두려워하고 부정적으로만 볼 게 아니다. 분노가 친밀한 관계에서 가장 잘 일어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고, 분노는 표현함으로써 또는 공유함으로써 ‘자기 주장적인 의사소통’의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관계가 종결되는 것은 의사소통의 부재 때문이지 분노 때문이 아니다.” ‘인지 부조화’는 말 자체가 몹시 난해하게 다가온다. 알고 보면 간단할뿐더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사람들은 흔히 태도와 행동 사이에 일관성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많은 경우에 행동이 태도를 결정짓는데, 이런 생각의 비일관성이나 부조화는 심리적 스트레스가 되기 때문에 엉뚱하게도 기존 태도를 바꾸는 쪽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영화 <나인 먼쓰>에 개입된 인지 부조화론을 보면 이해가 좀더 빠르다. ‘아동혐오자’인 주인공이 실제로 자신의 아이가 태어나자 ‘아동애호가’로 돌변하는 경우다. 여자친구의 임신 사실을 알고는 처음에 공포에 떨었지만(심지어 여자친구가 암사마귀가 되어 자신을 잡아먹는 꿈까지 꾼다), 막상 초보아빠가 되자 태도가 180도 바뀐다. 현실로 돌아와보면, 경마장에서 돈을 건 뒤 자신의 판단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이 돈을 건 말의 가능성을 과대평가한다든가, 결혼 전 애인에 대해 탐탁지 않게 생각한 여성이 막상 결혼해서는 남편 자랑을 끝없이 늘어놓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이야기는 우울증 환자들이 ‘우울한 감정을 느껴서 우울한 행동을 하기’보다 ‘우울한 행동을 하니까 우울해진다’는 심리적 이론으로까지 확대된다.
왜 ‘토막살인’을 선택했을까
또 연쇄살인범과 달리 토막살해범이 대부분 초범이면서도 왜 ‘토막’이라는 잔혹한 방법을 택하게 되는지, 자신의 영화 속에 끊임없이 가족주의 이데올로기를 불어넣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어떤 보상심리에서 그런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인지, 유독 10대들은 ‘나는 임신하지 않는다’는 비현실적 믿음으로 ‘우발적 사고’를 양산하는지 등을 영화에 빗대 흥미롭게 ‘강의’한다.
본명이 ‘김수지’인 지은이는 ‘심리학과 영화를 두루 섭렵한 사람’을 줄인 심영섭이란 필명으로 글맛나는 영화평을 왕성하게 생산하고 있지만, 고려대 심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한양대와 백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인턴, 레지던트를 거친 임상심리학자다. 이 책은 여러 매체에 실은 글을 “크게 수정 보완해” 나왔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심영섭의 시네마 싸이콜로지> 심영섭 지음, 다른우리 펴냄, 1만2천원
성격장애 가운데 ‘수동공격성’이란 게 있다. 대인관계에서 자기 분노를 ‘이상한’ 방법으로 표현해 상대방을 난처하게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지은이는 최민식의 물오른 연기를 기막히게 보여준 영화 <파이란>을 들어 설명하기 전에 자신이 직접 만난 환자 이야기로 이 의학적 용어에 현실감을 불어넣는다. 여자환자는 남들에게 사랑받지 못할까봐 또는 거절당할까봐 모든 사람과 잘 지내는 척하지만, 실은 간접적 방식으로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특히 남편처럼 그와 가까운 사람을 더욱 괴롭히는 역설적 결과를 낳는다. ‘나에게 혹시 그런 점이 있지 않을까’ 하고 은근히 의심이 들면, <파이란>에서 스스로를 ‘국가대표(급) 호구’라고 비하하는 삼류깡패 강재를 유심히 살펴볼 일이다. “강재는 수동공격형 성격이 작품 속에 잘 녹아들어간 돋보이는 캐릭터”기 때문이다. 처방도 해준다. “모든 정신병리의 근원은 현실을 투명하게 지각하기 힘들거나,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데 있다. 그 가운데도 특히 분노는 억압될수록 언젠가는 폭발하는 끓는 용암 같은 것이다.” 그러니 분노를 두려워하고 부정적으로만 볼 게 아니다. 분노가 친밀한 관계에서 가장 잘 일어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고, 분노는 표현함으로써 또는 공유함으로써 ‘자기 주장적인 의사소통’의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관계가 종결되는 것은 의사소통의 부재 때문이지 분노 때문이 아니다.” ‘인지 부조화’는 말 자체가 몹시 난해하게 다가온다. 알고 보면 간단할뿐더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사람들은 흔히 태도와 행동 사이에 일관성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많은 경우에 행동이 태도를 결정짓는데, 이런 생각의 비일관성이나 부조화는 심리적 스트레스가 되기 때문에 엉뚱하게도 기존 태도를 바꾸는 쪽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사진/ 책 속에는 재밌는 삽화들이 툭툭 나서서 책장 넘기는 즐거움을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