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로들 데모 가다
등록 : 2003-04-02 00:00 수정 :
새벽 5시부터 산골마을 돌아 나온 관광버스는 7시 반이 되자 영광읍 시내 곳곳에 무리지어 행렬을 이룬다. 새벽밥 지어먹고 힘든 길 나선 허리 굽은 할머니 할아버지들 한마을 사람 챙기느라 남천로며 체육관 앞 도로가 더욱 분주해진다.
함평, 장성을 넘어 광주 차량까지 수소문한 관광차는 군서3호, 백수10호, 사회단체, 불갑사, 원불교, 여성단체 등 각각의 명패를 붙이고 떠날 신호만 기다린다. 관광버스 50대에 2천여명의 군민들 모아내려니 쉽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마을 이장님들 지휘에 따라 차분한 움직임이다.
한창 논갈고 밭갈아 담배 부치기(담배 심기)에 분주한 봄 들녘을 뒤로 남기고 마을 마을에서 나온 할머니 할아버지들 엊저녁 훌쩍거리듯 내린 봄비로 부쩍 추워진 날씨에 아랑곳없이 서울 핵폐기장 반대 데모길에 나선다.
“나가 살믄 월매나 살겄어 그려도 핵폐기장은 안 되제. 시방도 전국에서 2등난 백수쌀에다가 영광 꼬리표 못 붙이고 팔아먹는디 워찌 농사 지어먹고 살겄어 그렇게 좋으믄이사 왜 전체 국민이 싹 반대허겄냐고. 20년이나 안면도니 굴업도니 찔러보다 안 된께 핵발전소 있다는 죄로 영광다 퍼붓겠다는 심뽀 아니여 지그덜이 영광은 적지가 아니라고 혀놓고 말이여. 지금 6개나 있는 핵발전소나 뚜머(떼어)가라고혀, 징헌 놈덜.” 백수 지산양반의 노기어린 외침이 먹장구름 잔뜩 내려앉은 아침 하늘을 가른다.
핵폐기장 후보부지 발표 이틀 뒤인 2월6일부터 군청 앞에서 천막 치고 농성 중인 영광은 7천명의 군민이 참여하는 대규모 집회도 열고 원불교 교무님들의 100일 단식농성, 수녀님들의 기도회 등 핵폐기장 반대 행렬이 숨가쁘게 이어진다. 정부가 절대 핵시설을 더 이상 들이지 않겠다며 울진반핵단체에 보낸 산자부 공문마저 휴짓조각 만들어버린 울진군이나 고창, 영덕도 대규모 집회와 천막농성으로 4개군이 모두 비상스럽게() 술렁거린다.
천막농성 50여일을 넘기며 울진·영덕·고창·영광 4개지역과 서울의 시민사회단체들이 힘을 모아 ‘핵정책 전환과 핵폐기장 백지화를 위한 국민대회’에 몸을 싣는다.
7천~8천명 정도 모였을까 시골 노인들로 가득 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청정 영덕’의 상여틀이 나오고 영광굴비, 고창수박, 영덕게, 울진 송이버섯이 내던져지고 서울 도심 하늘엔 민심을 저버린 상여틀이 불태워진다. 집회장 어디를 돌아봐도 머리 희고 검게 그을은 손마디 굵은 늙디늙은 농투산이들 뿐이다. 몇겹으로 에워싼 젊은 청춘의 경찰병력이 오히려 민망해진다.
종로4가에서 행진이 막혀버린 촌로들 도로가에 앉아 소주 한잔으로 서울 꽃샘추위 달래며 끝없이 외쳐댄다. “핵정책 바꾸고 핵폐기장 제발 짓지 말라고…. 우리도 세금 내고 사는 대한국민 국민이라고 말이다.”
노무현 참여정부가 거세게 일고 있는 반전반핵의 국민적 저항에 어떤 대답을 할지 궁금해진다.
*이 글 끝에 산자부와 한수원 그리고 핵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토를 달 것이다. 그러나 지면관계상 더 이상의 글을 싣지 못함을 탓하며 각 지역 비상대책위 홈페이지를 살펴보길 권한다(영광 비대위 http://www.antinukeyg.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