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 불균형 바로잡는 보충제 부작용 많아… 과대광고 판치며 품질 관리도 허술
뱀파이어의 전설은 ‘포피리아’라는 유전병에서 비롯되었다. 적혈구 등에서 산소를 나르는 햄(Heam)이라는 색소를 합성하는 생합성 경로에 유전적 결함이 있으면 포피리아에 걸린다. 이 병에 관련된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게 마늘이다. 마늘을 가까이하고 햇빛에 노출되면 볼품사나운 물집들이 생겨나고, 눈곱이 덩어리가 되며 손의 털들이 길게 자라면서 신경장애를 겪게 된다. 아무리 과학적으로 항암 효과가 입증된 마늘일지라도 상황에 따라선 독약으로 돌변하는 셈이다. 뱀파이어나 늑대인간 같은 전설은 마늘 성분에 시달려야 하는 포피리아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식품의 기능은 단지 인체에 필요한 에너지·영양성분을 공급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맛과 기호에 관한 욕구를 충족하는 동시에 인체의 대사 생리활성과 면역체계에 영향을 주는 생체조절 기능도 가지고 있다. 현재 건강보조제로 유통되는 식품들은 생체조절 기능이 강조된 것이다. 대개 식품과 약품의 경계에 있는 건강보조식품은 ‘잘 먹으면 약이 되고 잘못 먹으면 독’이 되기 십상이다. 만일 임신부가 막힌 호흡기를 뚫고 박하향을 즐기기 위해 페니로열차를 마셨다면 유산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실제로 허브 페니로열은 고대에 낙태를 위해 널리 쓰였던 식물이다.
‘청춘의 묘약’으로 노화를 막고 기억력을 좋게 하며, 신장을 맑게 하고 심장을 보호해 준다는 문구로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각종 건강보조식품. 심지어 다시마 성분의 청량음료로 암을 잡는다거나 눈 마사지용품을 ‘하루 10분만 사용해도 시력을 회복한다’는 식으로 소비자를 현혹하는 제품도 있다. 이런 건강보조식품의 허위 또는 과장 광고는 단속의 손길이 미치기 힘든 인터넷 쇼핑몰에서 극성을 부린다. 한결같이 체력증진, 면역증강, 혈액개선 등 모호하고 일반적인 효능만 나열한 제품들이다. 식품공전에 규정된 제품별 지표·유효성분 등에 따른 기준도 없이 천차만별의 함량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제약업체들 신제품 양산… 바로 알고 먹어야
최근 제약업계는 의약분업 시행으로 의약품 판매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자 건강보조식품 시장에 너나없이 뛰어들고 있다. 건강보조식품 시장은 제약업체의 구미를 당기는 황금시장이다.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시장에 다가설 수 있는 탓이다. 일반 약품을 개발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의 10분의 1 정도만 투자해도 경쟁력 있는 건강보조제를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 예컨대 콜레스테롤 저하 약품을 생산하려면 300억원 이상의 예산을 들여야 한다. 개발에 성공해도 시장 진입을 위해 수많은 관문을 거쳐야 한다. 미 식품의약국(FDA) 등의 승인까지는 적어도 10여년이 걸린다. 하지만 콜레스테롤 저하 건강보조식품이라면 불과 1, 2년 내에 20억원만 들여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
현재 국내 건강보조식품 가운데 판매 수위를 차지하는 품목은 키토산 제품. 전체 건강보조식품 시장점유율 20%에 이르는 1200억원대 이상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19세기 초 프랑스의 자연사학자 브라코노가 버섯에서 처음으로 발견한 키토산은 게, 가재, 새우 등 갑각류 껍데기에 많이 함유된 천연다당류이다. 키토산은 1980년대 중반 일본에서 캡슐 형태로 개발되어 ‘신비의 물질’로까지 불리는 차세대 기능성 식품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입증된 키토산의 효능은 외상이나 화상으로 인한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고 지혈작용이 있다는 것뿐이다. 혈압과 콜레스트롤을 떨어뜨린다거나 간장질환이나 변비 예방 등의 효과는 아직까지 임상실험을 통해 입증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건강보조식품은 의학적으로 효용성이 없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일부의 허브나 비타민, 무기질이 유용하다는 과학적 연구결과도 있는 게 사실이다. 예를 들어 엽산은 기형아를 예방하고, 칼슘은 골다공증을 막아주며, 마늘이 콜레스테롤을 낮춰주고, 생강은 메스꺼움을 진정시켜준다. 마늘의 경우 위암과 결장·직장암을 예방한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임상 영양학 미국 저널> 10월호에 실리기도 했다. 미국 채플릴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연구진이 구운 마늘이나 생마늘을 먹은 사람은 위암에 걸릴 확률이 절반 정도 낮아지고 결장·직장암 위험이 3분의 2나 줄어든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하지만 마늘의 활성성분을 모아 만든 마늘보충제는 제조 혹은 보관과정에서 활성성분이 파괴되어 효능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개의 건강식품은 불포화지방산 함량이 높거나 단백질, 비타민, 미네랄 등 일반 영양성분 함량이 일반 식품보다 다소 높은 정도. 특정성분의 대사가 불량하고 요구량이 일반인과 다른 사람이라면 필요한 성분을 건강보조식품으로 보충하는 건 이롭다. 하지만 아무리 유용한 특정성분을 농축한 제품이라 해도 지나치게 섭취하면 대부분 부작용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특수한 약리작용을 하는 유효성분이 분명하게 알려지지 않은 알약, 강장제 차들은 건강보조식품군에 올라 잠재적인 부작용들에 대한 안내없이 소비자에게 팔리고 있다. 국내에서는 1989년에 식품법에 ‘건강보조식품군’을 마련해 기능성 식품을 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효능이나 품질을 인정하기 위한 절차도 없고 분류마저 업체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여 제멋대로이다.
이런 사정은 미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에서 건강보조제 시장이 급격히 증가한 것은 1994년에 식사보조제건강교육법(DSHEA)이 제정되면서부터이다. 이 법에 따라 정보의 보호에서 벗어나 의회의 관할로 넘어간 건강보조식품들은 FDA의 승인없이 손쉽게 시장에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이 법은 건강보조제의 광고를 금지하면서도 질병에 대한 직접적인 치료나 예방에 관한 것이 아닌 ‘체기능 보충’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광고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비타민과 미네랄 등 각종 건강보조제를 구입하는 미국인이 약 6천만명에 이르며 그 비용이 한 해에 130억달러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프로스포츠 선수는 거의 모두 건강보조제를 상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강보조식품의 효능은 대개 수년 동안 먹은 뒤에 나타난다. 이와 함께 부작용도 차츰 드러나고 있다. 메이저리그의 홈런왕 마크 맥과이어가 근육을 키우기 위해 복용한 것으로 알려져 대중적인 관심을 모았던 안드로스테디온(Androstedione)도 위해성이 드러났다. 매사추세츠종합병원 연구진은 안드로스테디온이 혈중 호르몬 농도를 증가시켜 인체의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비타민A는 건강한 시력에 필수적인 것처럼 알려졌지만, 눈의 질병을 치료하지 못하며 모든 복용자가 시력을 회복하는 것도 아니다. 근육강화제로 시판되는 윌로 바크(willow bark)에는 아스피린 성분의 화학물질이 포함되지만 아스피린에 대한 경고- 치명적인 레이 증후군(Reye’s syndrome·어린이 뇌장애)으로 발전될 수 있으므로, 감기나 수두가 있는 어린이나 십대에게는 주지 마시오- 는 표기하지 않아도 된다.
구체적인 부작용 사례가 드러난 건강보조제도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이다. 땅콩 등에 많은 황산화 물질 비타민E는 심장병과 당뇨병, 노화 등을 예방하는 것으로 광고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질병예방에 거의 효과가 없고 오히려 지나치게 섭취하면 뇌졸중의 위험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체중감소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트리악스도 심장병이나 뇌졸중을 일으킬 정도의 갑상선호르몬을 함유하고 있다. 다이어트 효과가 있다는 차를 마시고 설사나 복통에 시달리기도 하고,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화분가루를 먹은 뒤 천식발작을 일으키는 경우도 흔하다.
비타민E도 과다복용하면 뇌졸중 위험
사정이 이럼에도 건강보조식품은 유용성과 부작용에 대한 증명없이 마치 ‘의사의 처방이 필요없는 약’처럼 판매되는 실정이다. 식단의 서구화에 따라 영양의 불균형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건강보조식품에 의지하는 것은 심하게 말해 독약을 마시며 불치병의 퇴치를 기대하는 격이다. 최근에는 제대로 임상실험을 거치지 않은 채 미국시장에서 퇴출된 제품이 인터넷을 통해 버젓이 국내시장에 들어오기도 한다. 의심이 가는 부작용 사례가 학계에 보고돼도 일반인들이 확인할 방법도 없다. 다만 미국에서 유통되는 영양보충물에 대한 정보라면 미국 보건원와 농무성이 제공하는 웹사이트(www.nal.usda.gov/fnic/IBIDS)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건강보조식품에 대한 정보를 챙기는 수고도 없이 건강보조제를 가까이하는 것은 신체의 예고된 재앙을 준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도움말 주신 분
허갑범 연세대의대 내분비내과 교수, 이철호 고려대학교 생명공학과 교수
김수병 기자soob@hani.co.kr

(사진/건강보조식품은 가정의 식단에서 부족한 영양성분을 보충하는 정도로 복용해야 한다)

(사진/마늘은 암을 예방하는데 효과가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구운 마늘이나 생마늘의 활성성분에 특효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