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스트들의 ‘재밌는 반전’
등록 : 2003-03-26 00:00 수정 :
“얘들아! 전쟁하지 말고 놀자.”
반전집회 때마다 집중적으로 플래시를 받는 이들은 젊은 아나키스트 모임인 아나클랜(
www.anarclan.net) 친구들이다. 검은 깃발을 들고 나오는 이들은 제각각인 머리모양과 옷차림, 제멋대로인 구호와 동작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붙잡는다. 주로 온라인상에서 함께 놀지만 지난 겨울 촛불시위 현장에 나오더니 이번 이라크 침공 전후로는 미국의 횡포에 분연히 떨쳐 일어났다. 물론 미 대사관을 부수거나 성조기를 불태우는 건 아니다. 집회대오의 꽁무니나 길거리에서 노래 부르고 춤추고 기타 치고 하모니카 부는 것이다.
3월22일 오후 종묘집회 현장에서는 “우리는 전쟁을 반대한다. 빌어먹을 전쟁을 반대한다”는 가사의 직접 만든 노래들을 목청 돋워 불러댔다. 아나클랜의 소식지 <아날레>와 일본 아나키스트 무카이 코오의 <폭력론 노트-비폭력 직접행동이란 무엇인가> 번역본을 판매하기도 했다. 이들 옆에서는 티셔츠 행동당 멤버들이 전쟁 없는 세상을 디자인해 새긴 티셔츠를 팔고, 일부 네티즌들이 저마다 만든 배지를 팔거나 나눠줬다. 아나클랜 친구들의 전쟁반대·군대반대 활동은 온라인에서 두드러진다. 한달 전부터 ‘미국의 이라크 침공 50문 50답’이라는 영어 자료를 한글로 번역해 인터넷에 뿌리고, 평화비용과 무기비용을 대비시킨 ‘진정으로 평화를 위한 길은’ 자료도 마구 유포시킨다.
‘50문 50답’은 질문에 대답하는 식으로 짜여 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세계 군사예산은 9조달러 이상이다. 그 가운데 미국이 쓰는 군사예산은 50%이다. 이라크는 1980년대 초반부터 화학무기와 생물학무기를 보유했지만, 독자적으로 개발한 게 아니다. 원료와 기술 모두 미국과 영국, 몇몇 기업들이 제공해준 것이다. 이라크와 9·11 테러 사이에 어떤 관계도 증명된 것은 없다. 걸프전에서 사망한 민간인 수는 3만5천명. 이라크 군대에 의해 사망한 서양 연합군은 한명도 없다. 퇴각하던 이라크 군인 가운데 미군 탱크에 의해 생매장당한 수는 6천명. 걸프전이 끝난 뒤 이라크와 쿠웨이트에 남겨진 열화우라늄탄은 40톤. 91년부터 3년 동안 이라크에서의 암 발생률은 700%나 증가했다. 이라크 공격으로 목숨을 잃을 민간인 수는 펜타곤에서 예측한 바로는 1만명. 이 가운데 어린이가 차지하는 비율은 50%가 넘는다. 89년 이라크에서 1천명의 아이가 태어난다면 그 가운데 38명이 죽었으나 99년에는 1천명당 131명이 죽었다. 97년 이래 경제제재 조치로 죽은 이라크 어린이는 75만명. 98년 11월과 12월 이라크에서 무기사찰이 이뤄진 적은 300번. 이 가운데 문제가 된 무기사찰은 5번. 이라크가 갖고 있는 핵탄두는 하나도 없다. 이스라엘이 보유한 핵탄두는 400개. 미국이 보유한 핵탄두는 1만개 이상. 핵무기를 사용하는 유일한 나라는 미국.
‘진정으로 평화를 위한 길은’은 미국의 한 반전단체가 만들어 인터넷에 올린 것이다.
100달러=피난민을 위한 담요 11개=수류탄 11개. 4천달러=160명의 젊은이가 3일 동안 받는 평화교육=로켓포 발사기 1문. 4만달러=장애노인을 위한 가정보건사 2명=헬파이어 미사일 1기. 58만6천달러=1천 가구에게 줄 수 있는 집세 보조금=M-16 소총 1천정. 76만3천달러=공인간호사 15명의 1년 연봉 총액=이라크 전쟁 1분. 1억3천만달러=20만 가정의 여성·신생아·아동을 위한 영양공급 프로그램=무인정찰비행기 프레데터 7대. 2억7500만달러=전 세계적으로 소아마비 퇴치하기=미사일 방어체제 3분간 테스트. 3억5천만달러=전 세계 1천만명 아동에게 가장 효과가 뛰어난 예방백신 접종=트라이덴트 투 미사일 6기. 4억1300만달러=6만8천명의 궁핍아동에 대한 육아시설=수륙양용 상륙전함 프로그램. 160억달러=700만 아동에 대한 의료보험 전액 지원=1년간의 핵무기 프로그램. 380억달러=각종 전염병에 시달리는 전 세계 1100만명의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는 금액=현 미군 한달 예산….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