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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원작 뒤집어 재미 두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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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3-2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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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배신, 선과 악, 신비와 마술, 삶과 죽음. 인류의 고전으로 자리잡은 동화의 세계는 단순하고 강력한 메시지로 우리를 끌어당긴다. 하지만 반복은 재미없다. 악인과 선인의 처지를 뒤바꿔보고, 주인공에게 늘 웃음을 안겨주는 해피엔딩에 딴죽을 걸어보려는 짓궂은 시도는 계속돼왔다. 때로는 동화 속에 어물쩍 넘어간 대목을 파헤치면 독자 연령과 수준을 감안해 감춰둔 일말의 진실을 발견하기도 한다.

우선 백설공주만 봐도 그렇다. 동화에선 백설공주가 왕자를 만나 방긋 웃으면서 난쟁이를 떠나는 것이 당연한 설정이다. 그러나 이건 왕자와 공주 편에서 일방적으로 쓰여진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일곱 난쟁이들과 백설공주와의 관계는 과연 어땠을까

헝가리에서 제작한 포르노그래피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The White and 7 dwarfs)에선 일곱명의 난쟁이들이 막 성에 눈뜬 백설공주를 강렬한 감각의 세계로 이끄는 ‘섹스 교사’로 등장한다. 계모 왕비는 백설공주를 내쫓은 뒤 왕궁에서 남녀 시종에게 둘러싸여 각종 성적 기교를 체험하지만 백설공주만큼 행복한 표정은 아니다. 난쟁이들과 함께 오르가슴에 이르는 길을 성실히 공부한 백설공주는 왕자를 만나서도 마음껏 실력을 발휘한다.

사진/ 연극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6월30일까지 유시어터(02-3444-0651)에서 공연되는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는 공주를 사랑한 막내 난쟁이 반달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반달이는 새엄마의 계략에 번번이 넘어가는 공주를 매번 살려내고, ‘연적’인 왕자를 직접 데려오기까지 한다. 그런데도 벙어리기 때문에 공주한테 좋아한다는 말 한번 못하고 죽어간다. 본래 어린이 연극으로 기획됐지만 그림책처럼 예쁜 무대와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로 어른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고 있다.

그림 형제의 동화는 흥미로운 줄거리 곳곳에 중세적인 암울함과 잔인함이 녹아 있기로 유명하다. <헨젤과 그레텔> 역시 아무리 상대가 마녀이고 정당방위라고 하지만 화덕에 빠뜨려 태워 죽였다는 결말이 어린이의 행동으로 보기엔 미심쩍은 구석이 많다. 최근 우리말로 옮겨진 <황홀한 사기극-헨젤과 그레텔의 또다른 이야기>(한스 트랙슬러 지음, 정창호 옮김, 이룸 펴냄)는 이 동화가 실제로 벌어졌던 살인사건을 미화한 추악한 이야기라고 주장한다. 지은이는 ‘사실’을 추적하는 한 사학자를 등장시켜 마녀의 집터, 빵굽는 화덕 등을 ‘발굴’하고, 헨젤과 그레텔이 집에 돌아오기 위해 길에다 던졌던 조약돌 실험을 통해 실제로는 이 남매가 37살, 34살의 아줌마, 아저씨임을 ‘밝혀낸다’. 뛰어난 기술을 지닌 미모의 여성 과자제조업자가 이를 시기하는 남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코가 길어지는 벌을 받은 피노키오 이야기도 뒤집어 생각해보자. <새로운 피노키오>(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지음, 김경연 옮김, 풀빛 펴냄)는 어린이 편에서 피노키오를 바라본다. 피노키오가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그동안 누굴 믿다가 당한 속임들 때문에 쉽게 남을 믿기가 어려워서였다. 기다란 코를 부여잡고 흐느끼던 피노키오는 “재미삼아 코를 늘렸다는” 요정에게 이렇게 항변한다. “이걸 재미라고 하는 거예요 내가 잘못되는 것이 요정님에게 재미라면 난 요정님을 좋아할 수 없어요!” 게으름뱅이요 거짓말쟁이인 피노키오는 때로 실수를 저지르긴 하지만, 제 생각대로 행동하고 제 뜻을 정확히 표현할 줄 아는 솔직한 어린이였던 것이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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