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신현준 “반전의 메아리가 들리는가”

452
등록 : 2003-03-26 00:00 수정 :

크게 작게

정치적 구호 없이 반전을 말하는 일상적 울림들… 청년문화 기수들의 ‘다른’ 외침이 반갑다

사진/ 베트남전 반대 목소리가 울려퍼졌던 우드스톡 페스티벌은 점차 대형 록콘서트로 변했다. 1999년 열린 우드스톡 페스티벌. (AP연합)
“1969년 미국 뉴욕의 한 농장에 ‘사랑과 평화’를 외친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다”라는 말은 이제는 신화가 되었다. 이른바 ‘우드스톡 페스티벌’이라는 신화다. ‘반전구호도 외치고, 음반도 많이 팔고 공연도 잘되던 시대’였다. 30년 이상이 지난 지금 이 신화는 유지되고 있을까. 25년이 지난 1994년에 ‘우드스톡 ’94’가, 30년이 지난 1999년에 ‘우드스톡 ’99’가 각각 개최되었지만 이 행사들은 단지 대형 록콘서트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전운이 감도는 지금은 어떤 움직임이 있을까.

지난 연말께 ‘전쟁 없는 승리를 위한 아티스트들 연합’(Artists United to Win Without War)이라는 단체에서 백악관에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는 문서를 보낸 일이 있다. 위 단체는 ‘예술가’가 아니라 ‘연예인’ 단체다. 에단 호크, 킴 베신저, 맷 데이먼, 마틴 쉰 등 내로라 하는 스타들이 서명을 했다. 그런데 ‘뮤지션’은 6명에 지나지 않았고, 그나마 3명은 R.E.M.의 멤버들이었고, 나머지 셋은 데이브 매튜스, 보니 레이트, 잭슨 브라운이었다.

반전의 목소리가 잦아들고 있지만…


이후 시간이 흘렀으니 사태가 변했을지 모른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몇몇 명사들이 반전과 관련한 언급도 했다. ‘전쟁 없는 승리를 위한 뮤지션들 연합’(Musicians United to Win Without War)이라는 단체가 생겼고(http://www.moveon.org/musiciansunited/ 참고), 66명의 음악인이 여기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하지만 이들의 면면을 훑어보아도 대략 30줄 이상에 접어든 사람들이다. 이른바 ‘얼터너티브 세대’ 이상의 세대들이다. 젊은 음악인일수록 대중을 움직이는 데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쉬운 일이다.

그 점에서 2월 말 그래미 시상식은 이를 평가하기에 좋은 시금석이 된다. 여기서 영국출신의 신예 밴드 콜드플레이의 음반 가 ‘2002년의 최고 얼터너티브 음반’으로 지명된 사실이 여론의 관심을 끌었다. 수상이 유력시되던 이들은 며칠 전 영국의 브릿 어워드 시상식에서 ‘최고 영국 그룹’상을 받으면서 “조지 부시가 자기의 길을 가면 우리 모두 죽을 것이다”라고 발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미 시상식에서 콜드플레이의 리더 크리스 마틴은 전쟁에 대해 끝내 침묵했다. 뒷소문에 의하면 쪽에서 전쟁에 대한 발언을 자제해달라고 압력을 가했기 때문이다. 미국시장에서의 성공을 눈앞에 두고 고춧가루를 뿌리기는 싫었던 것일까. 대답은 신만이 알 것이다. 밴드의 드러머 윌 챔피언이 시상식이 끝난 뒤 “진짜로 메스껍고 더럽고 완전히 파시스트적이었다”는 소감을 밝혔다지만 사태는 끝난 다음이었다.

그래미 시상식에서 반전 메시지를 전달한 유일한 인물은 베테랑 여성 로커 셰릴 크로였다. 그는 기타 멜빵에 ‘NO WAR’라는 문구를 새기고 등장했다. 하지만 효과는 매우 작았다. 게다가 시상식 공연에서 그와 듀엣으로 노래를 부른 키드 록은 <뉴욕 데일리뉴스>와의 회견에서 “왜 모든 사람들이 전쟁을 중단하라고 하느냐 조지 부시가 ‘니네들은 후진 음반을 만들고 있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음악하는 사람들은 그런 일 밖에 머물러야 한다”라고 말해 찬물을 끼얹었다. 림프 비즈킷의 프레드 더스트는 “이번 전쟁이 가능한 한 빨리 끝나기를 바란다는 점을 우리 모두 동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모호한 발언을 남겼을 뿐이다. 화끈한 그의 음악과는 영 딴판인 신중한 발언이다. ‘반전구호도 외치고, 음반도 많이 팔던 시대’는 지나가버린 것이 분명하다.

이런 상황을 소개하면서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무엇을 원한 것이었을까. 아마 ‘1960년대처럼’ 제국의 심장부에 사는 청년들로부터 거대한 반전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바란 것 같다. 그렇지만 ‘남의 나라’에서 ‘과거’와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기를 바라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있을까. 그러니 ‘왜 이렇게 되었을까’를 따지는 일은 불필요할 것이다. 눈을 돌려 한국땅에서 벌어지는 일을 바라볼 필요가 있을 뿐.

개인과 작음으로 반향을 일으키는 사람들

며칠 전 가수 신해철이 ‘이라크전 파병반대 청와대 앞 1인 시위’를 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와 더불어 대중문화계 다른 분야 사람도 시위에 동참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건 정말 훌륭한 일이고 그의 결단을 지지한다. 아직도 대중문화인을 ‘딴따라’라고 업신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자기가 ‘딴따라’보다 나은 게 뭐가 있는지 반성할 일이다. 게다가 대중문화인이 연예계 외부의 일에 대해 발언하는 것을 금기시해오던 사회에서는 주목할 만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은 그래미 시상식에서의 해프닝 같은 사건조차 일어나기 힘든 나라니까.

하지만 이런 움직임의 의미는 크다고 해도 개인적 수준의 운동에 머물 수밖에 없다. 각개약진을 넘어서는 집단적 움직임은 없을까. 눈에 띄는 움직임이 있다. ‘맘맘 바이러스’라는 단체다. 이들은 3월15일부터 매주 토요일 저녁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내가 전쟁을 반대하는 이유’라는 주제로 공연을 개최하고 있다. 강산에, 이상은, 어어부 밴드, 모조 소년 같은 음악인이 콘서트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몇명은 이미 콘서트를 했다.

이 모임이 특별한 것은 ‘개인’과 ‘작음’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모임을 ‘개개인의 이야기와 사연이 존중받는 모임’이라고 소개하고 콘서트가 ‘작아야만 하는 이유’를 “큰 공연과 거대 담론에서는 개인과 개인의 역사가 묻혀버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우리’를 말하면서 ‘나’를 잊어버리고 ‘대형’을 추구하다 ‘작은 것’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 첫 콘서트 주인으로 강산에를 초빙한 것도 그가 ‘전쟁과 분단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온 아티스트’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들의 시도가 얼마나 성공할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적어도 반전이라는 것이 ‘운동권의 구호’라는 세간의 선입견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이 운동의 주체는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기는커녕 전쟁의 후유증과도 거리가 먼 세대다. 그러니 미국이라면 무조건 좋은 나라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는 40대 이상의 세대(의 다수)는 물론, ‘반미’를 정치강령처럼 여겨 무조건적으로 미국을 혐오하는 30대(의 일부)와도 다르다. 전쟁에 대한 반대가 더욱 일상적이고 미시적이라는 점에서 ‘다름’을 본다. 나로서는 다름이 희망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정치적이지 않아서 정치적인 그들의 외침

하긴 전쟁에 반대하는 데 커다란 이유나 명분이 뭐가 필요하겠는가. 우드스톡이란 것도 ‘퍼질러서 방탕하고 게으르게 노는 것이야말로 전쟁을 반대하는 최선의 수단’이라는 선언 아니었는가. 반전운동은 이렇게 정치적이지 않아야 정치적 효과가 큰 것 같다. 전쟁이 정치의 연장인지는 몰라도 반전이 정치의 연장일 필요는 없다. 그건 그냥 삶의 문제고 구체적이고 일상적일 수밖에 없다. 그게 ‘젊은이다운’ 것이다. 기성세대가 되어 이런저런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에 걸리면 전쟁에 대한 생각이 복잡할 수밖에 없다. 정치인이 전쟁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을 보면 잘 알 수 있지 않는가.

신현준/ 문화평론가·http://homey.compuz.com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