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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언니, 나 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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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3-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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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조 여성그룹 ‘빅 마마’의 색다른 정면승부… 탁월한 가창력으로 가요시장에 돌풍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였고 지금은 ‘YG 패밀리’를 이끌고 있는 양현석씨가 들려주는 ‘빅 마마’의 탄생기다.

“2년 전 어느 텔레비전쇼에 나오는 예쁜 여자그룹을 보며 지금 휘성의 제작자인 m-boat의 박경진 사장과 이런 대화를 나눴어요. 우리나라에서 노래 제일루 잘하는 여자 4명을 뽑아서 여성그룹을 만들면 어떨까 아직까지 그런 팀이 없었잖아. 야, 그러면 진짜 죽일 텐데…. 만약 예뻐지려고 성형수술하면 계약위반으로 고소해야 돼. 얼굴 하나 믿고 가수한다고 쏟아져나오는 저런 애들 때문에 가수들이 우습게 보이는 거라고.”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던 그들


사진/ 한영애, 이소라, 이상은씨 등은 ‘오빠 부대’가 아닌 ‘언니 부대’를 이끄는 가수들이다. 이들의 계보를 이을 만한 빅 마마는 ‘쭉쭉빵빵 언니들이 지배하는 가요시장’의 립싱크와 외모지상주의에 정면도전한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빅 마마의 뮤직비디오 <브레이크 어웨이>의 윤곽도 그때 그려졌다. “만약 뮤직비디오를 찍으면 얼굴만 예쁜 애들을 앞에 세워 립싱크하게 만들어놓고 실력 있는 사람들은 늘 뒤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줘야 돼. 우와! 생각하니까 진짜 열받는다.”

지난 2월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4인조 여성그룹 ‘빅 마마’는 ‘쭉쭉빵빵 언니들이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쭉쭉빵빵 언니들을 앞세워 돈벌이를 장악해온 가요시장’에 대한 정면도전이었다. 뮤직비디오는 사뭇 ‘선정적’이다. 늘씬하고 예쁜 바비인형 같은 4명의 여성이 노래를 부른다. 그 앞에 진을 친 남성들의 눈길은 끈적끈적하다. 곡이 끝나갈 무렵 갑자기 무대 뒤가 공개된다. 실제로 노래를 부르는 이들은 무대 앞의 바비인형과 딴판인 빅 마마다. 립싱크와 외모 지상주의를 희화화한 뮤직비디오가 빅 마마의 ‘트레이드 마크’는 아니다. 풍부하면서도 탄력 넘치는 리듬앤드블루스(R&B)와 솔풍의 1집 수록곡들이 아주 매력적이다. 프랑스어로 흘러나오는 <쥬느브빠-원치 않아>는 얼핏 외국 인기곡이 갑자기 끼어든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매끄럽고 감미롭다. 빅 마마 인기는 급상승중이다. 최근 열흘 사이 인터넷 팬클럽에 1만3천여명이 등록했고, 3월15일 연 첫 라이브 콘서트 티켓은 발매 일주일이 지나자 동이 났다.

외모 대신 가창력으로 멤버를 모았다는 게 화제가 되는 현상은 상식적이지 않다. 비상식을 상식으로 떠받드는 세상에서 빅 마마 ‘언니’들이 겪어온 상처는 자못 크다. 맏언니 구실을 하는 신연아(30)씨는 1995년 강변가요제에서 은상을 받은 뒤 그림자처럼 살았다. 베이비복스·핑클·보아·SES 등의 코러스로, 각종 드라마 음악과 CF 주제가를 부르며 얼굴 없는 가수로 지냈다. 2년 전 “너처럼 꽉 찬 노래 실력을 가진” 여성들로 그룹을 만들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지만, 그만한 사람들을 모으기 힘들었고 만든다 해도 음반시장 관행을 뚫기 어려워 보여 한쪽 귀로 흘려버렸다. 그러고는 프랑스 재즈학교로 떠났다. 뒤늦게 용기를 내 학교를 휴학하고 돌아와 멤버를 모으기 시작했다.

박민혜(21·동덕여대 실용음악과)씨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데뷔할 생각은 애초 염두에 두지 못한 터라 제안을 받고는 안 하겠다고 얘기하러 나갔다가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해보자는 언니 말에 맘을 바꿨어요. 하고 싶은 거 한다는 생각이어서 그런지 대중한테 인기가 있느냐 없느냐는 신경 안 써요.” 2000년 강변가요제 특별상을 받은 이영현(22·동아방송대 영상음악과)씨는 외모 때문에 학교 선배와 선생님들로부터 가요가 아닌 재즈를 해야 한다는 말을 숱하게 들어야 했다. 국내 정상의 연주력을 자랑하는 한상원 밴드의 보컬리스트로 활동한 이지영(24·동덕여대 실용음악과)씨는 오디션에 불신감을 갖고 있었다. “무대에 서고 싶은 맘에 여러 번 오디션에 응시했지만 나를 인간적으로 보기 이전에, 나의 개성을 보기 이전에 겉모습만 보고 판단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도 별 기대 없이 제작자를 만났는데 예전과 달리 외모보다 실력을 중시하기에 합류하게 됐어요.”

팀 운영도 남다르다. 다른 그룹처럼 멤버들에게 고정된 파트를 정해놓지 않았다. 곡의 특성에 잘 어울린다고 합의된 ‘언니’가 솔로로 나서면 다른 ‘언니’들은 뒤에서 화음을 넣어준다. 굳이 4명으로 팀을 짠 건 3명이 화음을 내줄 때 가장 꽉 찬 소리가 나기 때문이란다. 대부분 작곡가와 프로듀서 의지대로 곡의 색깔이 정해지게 마련이지만 이들은 곡을 받아 자기들끼리 화음을 넣고 리드보컬을 정하는 등 ‘언니들 맘대로’했다.

4명의 색깔 유지하며 ‘언니들 맘대로’

사진/ 빅 마마는 ‘언니들 맘대로’운영된다. 곡의 속성에 잘 어울린다고 합의된 ‘언니’가 솔로로 나서면 ‘다른 언니’들은 뒤에서 화음을 넣어준다.

빅 마마라는 이름은 푸근하고 음악적으로 늘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엄마 같은 이미지를 뜻한다. 애초 정해져 있는 이름이 처음에는 못마땅했다. 신연아씨 프랑스인 남자친구 반응이 그때 상황을 대변해준다. “처음에는 무척 기분나빠했어요. 그것도 외모 가지고 장사하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었어요. 예쁘지 않다는 걸 앞세워서. 그러다 뮤직비디오에 대한 구상을 듣고는 좋은 생각이라며 비로소 반가워하더군요.”

빅 마마 언니들을 가리켜 또 다른 상품화 작전이 아니냐고 반박할 수 있다. “철 바뀌면 일제히 싹 달라지는 교복처럼 획일화된 음악시장이 갑갑하다”거나 “여성의 미도, 아름답다는 기준도, 살아가는 방식도 너무 획일적이다. 편안함이나 열정에도 아름다움이 있다”고 말하는 걸 준비된 답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타이틀곡 <브레이크 어웨이>가 아닌 첫 번째 수록곡 <거부>를 가리켜 이영현씨는 “너무너무 통쾌”하다 못해 희열까지 느꼈다.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어떤 흐름 때문에 나라까지 맘에 안 들던” 이씨를 기쁘게 해준 건 신연아 언니가 쓴 가사다. 이 노래는 1집에서 가장 비트가 강하고 신난다. “아직 끝이 아니야 난 널 믿지 않아/ 날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 너나 돌아봐/ 멋대로 뜻대로 내 모습 그대로 내 멋대로 할 거야… 착각하며 살지 마.”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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