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자가 특별했던 하루… 드럼통 막창구이집에서 얼근하게 취해 막차 타고 돌아오다
지난 3월9일, 모처럼 일요일이라 점심을 먹고 식곤증에 소파에 누워 막 낮잠을 자려는 참에 아내가 마구 흔들어 깨웠다. 2시부터 검찰의 막내둥이격인 평검사들과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인사 문제를 놓고 TV 생중계하에 공개토론을 벌인다는 것이었다. 어제 토요일 오후 등산 끝에 친구들과 마신 막걸리가 과했는지, 나는 오전까지 잠에 빠져들어 그 희대의 진풍경이 벌어지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전격적인 제안으로 이루어진 이 토론회는, 항상 막다른 골목에 서게 되면 정면 승부를 걸어온 노무현식 담판 정치의 한 단면을 보여준 것이었지만, 우리나라의 최고 엘리트 공무원이자 항시 국가의 안보와 사회의 안녕질서를 담당해왔다고 자부하는 검사들의 인문학적 소양과 세계관의 단면을 드러내기도 한 장면이었다. 토론의 막이 오르자 노 대통령과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검찰개혁을 위해, 그리고 검찰 인사제도 마련의 시간적 제약 때문에 서열 파괴의 이번 인사가 불가피함을 역설했고, 검사들은 막으로 가려진 밀실인사를 비판하면서 검찰총장에게로의 인사권 이양, 또는 현재의 검찰인사위원회에서 인사문제를 처리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검사들은 세계 유례가 없는 검찰총장에의 인사권 이양 외에, 검찰인사위원회에 대한 구체적 대안 제시는 없었고, 막무가내로 자기들의 조직 이기주의적 주장만을 펴고 있으니, 숨을 죽이고 구경하던 국민은 남녀노소 막론하고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자기들의 부서 최고책임자인 법무장관은 막대기로 여겨 말을 막고, 오직 대통령만을 상대로 자기들이 얼마나 일을 많이 하고 있으며, 얼마나 나라를 위해 고생하고 있는가 열변을 토하였지만, 이에 고개를 끄덕거릴 국민이 몇 사람이나 되겠는가. 자기들은 가족도 잊고 밤 12시까지 일을 한다고 하지만, 밤 12시까지 일할 수 있는 직장조차 구하지 못하여 막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실직자, 목숨을 걸고 막장에서 석탄을 캐는 탄광 노동자들, 남대문시장 허드레 막벌이꾼 등의 막살 수밖에 없는 삶을 한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토론이 막바지에 이르자 검사들은 주제의 본질을 제쳐두고 한낱 해프닝에 불과한 이른바 대통령 형의 인사개입 문제를 들고 나와 노무현 대통령이 “이쯤 되면 막 하자는 이야기냐 이제부터는 일문일답으로 가자”고 하기에 이르는 민망스러운 장면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정치권의 SK 수사 압력, 부산 동부지청 전화 문제 등은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막가파식 정치공세를 떠올리게 하여 참으로 보기가 막막했다. 그러나 토론의 막잡이식 말꼬리 잡기가 막판까지 이어지지는 않고 서로 간에 검찰개혁의 필요성과 공정한 인사를 위한 제도 마련에 암묵적으로 합의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니, 검사들이 국민에게 ‘검사스러움’을 넘어 막말을 일삼는 막돼먹은 집단으로 비친다면 우리 사회를 위해 이보다 더 불행한 일이 있겠는가.
토론의 마지막까지 다 보고 나서 저녁에는 막국수나 삶아 새콤한 김장김치에 비벼달라고 할까 생각하다가, 좀 한가한 김에 아내를 꼬셔 며칠 전 독자 김진숙씨가 제보해온 막창구이집을 취재하러 나섰다. 지하철 8호선 문정역에서 내려 좀 헤매다가 바로 그 ‘드럼통 막창구이집’(02-409-2599)을 찾았는데, 빈터에 판자로 얼기설기 지은 막건물이었다. 주인 김언순(50)씨는 3년 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때 사업에 실패하고 나서 이 집을 차렸는데, 타고난 눈썰미와 맛감각으로 아무리 먹어도 전혀 물리지 않는 쫄깃쫄깃한 막창구이를 개발해냈다. 내키지 않는 외출, 찾기까지의 헤맴, 어수선한 식당 모습에 구시렁거리던 아내도 막상 막창구이 맛에는 대만족하여 우리 부부는 오랜만에 밤들이 막창구이와 막가는 세상을 안주로 얼근하도록 마시고 마을버스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김학민 ㅣ 학민사 대표·음식칼럼니스트 hakmin8@hanmail.net

사진/ 드럼통 막창구이집은 빈터에 판자로 얼기설기 지은 막건물에 있다. 아무리 먹어도 전혀 물리지 않는 쫄깃쫄깃한 막창구이맛이 특별하다.

김학민 ㅣ 학민사 대표·음식칼럼니스트 hakmin8@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