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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나이 들면 성숙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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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3-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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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ㅣ 문화방송 드라마 <맹가네 전성시대>의 탤런트 임현식씨

지난달 막을 내린 문화방송 드라마 <맹가네 전성시대>에 나오는 맹가네 여자들은 다들 드세고 씩씩하다. 성이 다른 두 아이를 데리고 사는 두번 이혼한 큰딸 금자(채시라), 시댁 식구들에게 굽히지 않고 ‘노랑머리’를 고수하는 미용사 둘째딸 은자(최강희), 손 크고 생활력 강한 어머니(나문희). 이 기센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사는 맹대풍(임현식)은 금전적으론 내세울 것 없지만 다정다감한 말 한마디로 식구들의 가슴을 녹일 줄 아는 훈훈한 아버지다. 맹대풍 역을 실감나게 연기한 임현식씨와 드라마 속 아버지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극중에서 맹대풍의 성격이 많이 변했는데.

금자가 어릴 때 맹대풍은 몹시 혈기방장한 모습이었다(젊은 시절 맹대풍은 자기네 집엔 쌀이 떨어져가는데도 친구를 도와주고 나선 아내에게 큰소리 떵떵 치는 가장으로 소개된다. 하지만 20년이 흐르자 맹대풍은 아내의 잔소리에 식은땀을 흘린다). 인간이 나이가 들면서 기도 꺾이고, 생각도 성숙해져서 점점 자식들 실정을 이해하는 부모의 역할로 변해간다.

-아무리 부모가 자식을 믿는다 해도 두번이나 이혼한 딸을 너무 쿨하게 ‘이해’하더라.


사실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드라마 촬영할 때도 별다른 배경설명 없이 그냥 받아들이는 건 설득력이 없지 않은가 이야기하기도 했다. 아버지라면 좀더 적극적인 개입과 감정의 표출이 있을 것 같다. 사위를 불러놓고 소주를 먹이면서 치고받기도 할 것 같고. 딸 앞에서 폭발하지는 않더라도 괜히 술집 가서 때려부수고 말이지….(웃음)

-미용사 은자가 의사 남편한테 시집가서 자꾸 구박받으니까 상당히 과격한 반응을 보였는데.

현실적으로 미용사 딸에 의사 사위 보는 것은 벅찬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딸보다 사위가 잘났더라도 내 딸한테 괴로움을 주고 업신여긴다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이다. 이건 맹대풍도 그렇고, 작가도 그런 심정인 것이고, 드라마 밖의 나(실제로 그는 25살, 24살(쌍둥이) 먹은 딸 셋이 있다)로서도 분통 터지는 일이다. 그런 상황에선 맹대풍처럼 “지금이 이조시대냐 그렇게 구박받으면서 그 집 귀신될 일 있냐”는 게 당연한 반응 아니겠나. 나뿐만 아니고 아마 요즘 50대들은 대부분 그런 정서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드라마에서 아버지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고 느끼나.

사실 우리 드라마에는 아버지의 모습이 밀도 있게 그려지거나 자식과 부모가 드라마를 함께 보면서 머리를 끄덕거릴 만한 장면이 많이 부족하다. 아버지로서 자식에게 건네는 대사를 하면서 작가한테 뭔가 배울 만한 대목이 별로 없었다. 천편일률적인 아버지 모습이기 일쑤다. 내가 ‘순돌이 아빠’로 많이 알려져 있긴 하지만 사실 나는 아버지 역할을 별로 맡지 않았다. 융통성 없는 인물로 재미가 없어서. 고작 아버지 역 해봐야 “밥 먹었냐” 정도 수준이기 때문에 나이 든 자녀의 아버지 역할은 별로 안 해봤다.

-앞으로 연기해보고 싶은 아버지의 역할이 있나.

자식을 못 낳는 불임으로 30대 중·후반에 딸을 입양해서 소중히 사랑하는 아버지 역할.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이 코제트에 대해 느끼는 그런 마음이랄까. 충만된 사랑으로 딸아이 주변을 맴돌면서 은근하게 뒤를 보아주는 아버지가 돼보고 싶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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