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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목마른 일상, 인간적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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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3-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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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운동권 사람들의 자아 찾기 보고서… 좌·우의 경계 벗어나 새로운 세상 만들기

<서울대 동문들의 삶과 수행 이야기>송호봉 외 지음, 홍익미디어플러스 펴냄, 9500원
청와대를 점령한 운동권 누군가의 눈에는 운동권의 권토중래처럼 보이는가 보다. ‘운동권 대해부’를 시도한 대형 연재 기사도 눈에 띈다. 이런 ‘그들’의 시야 밖에 존재하는 또 다른 운동권이 있다. 먼저, 도시를 탈출한 이들이다. 귀농을 하고, 생태공동체를 꾸리면서 생명에 대한 가치를 온몸으로 느끼며 생명운동·환경운동 등으로 전선을 조정한 이들이다. 또 근거지는 여전히 도시이되 수행과 명상 등을 통해 자기 자신을 조용히 되돌아보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자기 자신의 변화에서 희망의 근거를 찾는다. 세계관이, 가치관이, 삶의 의미가 달라졌다. 그렇다고 그들이 세상에 대한 대의를 버린 건 아니다. 그래서 혹자는 사회변혁의 패러다임을 바꾼 것뿐이라고 적극적으로 해석한다.

변혁의 전선은 자신의 마음에 있었다

사진/ <서울대 동문들의…>는 스스로의 변화에서 희망의 근거를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한 수행자가 수련을 하고 있다.

김성일. 서울대 정치학과 80학번. 3년 전, 그는 마흔네살이 되면 가족을 남겨둔 채 홀로 버마로 갈 참이었다. 그때 삶은 지옥이었다. 그에게는 대학 시절 사진이 없다. 1학년 때부터 이념 서클의 모임방에서 자취를 했던 그는 스스로 사적인 어떤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고등학교와 재수 시절에 쓰던 일기조차 불태워버릴 만큼 필요 이상의 기록은 남겨두지 않았다. 82년 온통 붉은색뿐인 방에서 취조를 받고 실형을 살았다. 감옥에서 나와서는 인천과 부천의 노동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때 같이 활동하던 동료와 나누었던 대화다. 혁명이 성공하면 무얼 하고 싶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시 쓰는 구멍가게 할아버지였다. 아이들과 무람없이 지내는. 내 동료는 꿈이 만화가게 주인이었다. 둘이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꿈은 야심찬 게 아니었으나 현실은 완고했고 이념은 너무 빨리 낡아버렸다. 89년부터 길고 긴 수배생활에 들어갔다.


김원재. 서울대 경제학과 80학번. “짧은 민주화의 봄이 광주민주화항쟁을 끝으로 피의 종지부를 찍었을 때,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운동권의 길뿐이었다. …이후 내게 대학 시절은 낭만과 학업이 아니라 그야말로 전쟁 그 자체였다.” 86년, 노동운동에 투신하고자 지금의 아내와 구로동 어딘가에서 자취방을 얻어 생활하고 있었다. 어머니, 아내와 함께 결혼 예물을 고르러 가던 길에 잠복해 있던 형사들에게 붙잡혀 어디론가 끌려갔다.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책임자로 있던 대공분실이었다. 정신적 패배감과 더불어 깊은 고문 후유증이 남았다. 94년 ‘개혁과 연대’라는 뜻의 엠에이(MA) 주식회사를 만들었다.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새로운 그 무엇을 위한 자기 조정 과정(개혁), 그 조정에 의한 이해의 연대, 그리고 그 결과로서의 개혁 등등”을 염두에 둔 회사였다. 한겨레신문사의 증축 공사를 담당하고, 미국식 목구조로 동양 최대의 장애인 복지시설을, 국내 최대 규모의 음식물 쓰레기 퇴비화 플랜트를, 전기 분해를 이용한 LG화학의 폐수처리 시설을 최초로 시도했다. 그러나 회사는 부도를 맞았다. “부도는 이 모든 시도가 꿈이었음을 내게 강요했다.”

<서울대 동문들의 삶과 수행 이야기>는 앞서 분류해본 ‘또 다른 운동권’ 가운데서도 두 번째 경우에 해당하는 이들의 자기 고백서이자 ‘전도서’다. 6명의 지은이들은 70년대 중반에서 80년대 초반 학번의 서울대 출신들로, 대부분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치열하게 벌이다 몇 차례 옥고를 치른 과거가 있다. 세상과 싸운 무기가 됐던 이념을 자기 사업에 적용해 야심찬 실험을 벌이기도 했지만 깊은 좌절만 맛봐야 했다. 숨쉬기조차 버거워 보였다. 그런데 최근 1~2년 사이에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상상조차 못했던 기쁨과 희망에 부풀어 있다. 강원도 홍천의 한 폐교에서 ‘스승’을 만나 ‘하늘수행’을 하며 “인간이 인간과 더불어 조화롭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단초”를 찾았다. 갑자기 웬 뚱딴지 같은 소리 그러나 이들은 한결같이 그곳에서 추락하는 자신과 허물어지는 가정을 구했다고 단언한다. 하늘수행은 요즘 유행하는 기수련이나 초월명상과는 다르다고 한다.

“수행이 나를 찾아 내면으로 파고들어가는 추구가 아니라, 원래 타고난 스스로의 본성이 안에서 열고 나와 자라도록 허용하고 북돋는 것이며, 또한 내가 누군인지를 깨달음이 목표가 아니라, 참나의 원함이 드러나 일상을 통해 구현되고 성장 진화하도록 돕는 것이다.”

삶의 무게를 떨치는 극적인 변화들

그렇다고 이들이 어떤 종교집단이 된 건 아니다. ‘스승’이란 이는 자신을 숭배하려는 모습이 조금만 보여도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들은 지금도 각자 삶의 터전에서 생활을 꾸리며 더 나은 세상이 도래하기를 꿈꾼다. 이들은 단지 패러다임을 바꿨을 뿐이다. 대표적인 사회과학출판사였던 ‘거름’을 오래도록 이끌었고, 두번의 수감생활을 거친 유대기씨(서울대 철학과 77학번)에게 이 극적인 변화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거듭 물었다.

“내 자신의 경험으로 말하자면, 학생운동을 했든 혁명운동을 했든 사회가 더 좋아지기를 바랐던 건데 궁극적으로 인간의 문제에 부딪혔다. 인간이 변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사회체제나 제도를 만들어도 사회가 나아지지 않으리라는 수많은 실증과 마주해야 했다. 그렇다면 인간이 어떻게 하면 변화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추구할 수밖에 없다. 이들이 뭔가를 찾았다고 하는 건 인간이 바뀔 수 있고, 그럼으로써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찾았다는 것이다. 사회학적 수치나 통계 수치는 없으나 스스로 체험한 것이다. 내가 바뀌고 자기 주변의 사람이 바뀌는 걸 직접 봤으니까. 세상을 바꿔낼 가능성을 찾았다.”

이들의 확신을 터무니없는 것으로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서울대를 나와도 채워지지 않는 삶의 간절한 갈증과 서울대에서도 배울 수 없는 삶의 근원적인 진실”에 대한 보고서라는 카피를 선정적이라고 치부하기엔 곤란한 구석이 이들의 삶에는, 이들의 고백에는 있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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