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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중년의 위기에 매력 재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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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3-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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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심리 전문가 정혜신씨가 마련한 감성 콘서트… 남성들의 지친 삶 보듬어 ‘보석’으로 연마

사진/ 중년의 위기를 음악·영상 등의 공연으로 풀어주려는 남성심리 전문가 정혜신 씨. (박승화 기자)
40대에 대기업 임원으로 고속 승진한 이아무개씨는 어느 출근길 아침 승용차가 어두운 터널로 접어들었을 때 숨이 턱 막히는 경험을 했다. 심장에 이상이 있는가 싶어 병원을 찾았더니 ‘공황장애’라며 정신과로 가라고 했다. 명문대를 졸업하자마자 대기업에 입사한 그는 일찍이 목표를 세워둔 바 있었다. 30대에는 30평 아파트에서, 40대엔 40평, 50대엔 50평 아파트에서 살겠노라고. 이를 위해 그는 누구보다 회사에 충성하며 기를 쓰고 살았다. 휴가 때 해외여행 가는 계획을 세우고 온 가족이 공항에 나섰다가 갑자기 회사에서 외국 손님들 온다고 호출하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달려갈 정도였다.

하지만 그가 막 인생의 정점에 오르기 시작했다고 생각할 무렵 일과 성공에만 매진해온 데 대해, 그의 무의식과 몸은 이상신호를 일으킨 것이었다. 이후 그는 매사에 무기력감을 느끼고 업무에서도 활력을 잃었으며 어린애같이 부인에게 매달리게 됐다. 아픈 자기를 무심히 대하는 아이들에겐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다. 인생에 회의라곤 눈곱만치도 없던 이씨에게 ‘중년의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내면 변화는 매력남 탄생 밑거름


보험영업을 하는 김아무개씨도 40대에 들어서 변화가 왔다. 철저한 자기관리로 남보다 영업실적이 늘 높았던 김씨였건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허무함이 밀려왔다. “남들은 나보고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듯하다고 하지만 난 실제로 그렇지 않다. 진정한 내 꿈은 화가였다. 딱딱한 집안 분위기에 밀려 할 수 없이 상대에 갔던 것뿐이다.” 그간 걸어온 길이 회의스럽게 느껴진 김씨는 인터넷 미술동호회에 가입해 활동을 시작했다. 동호인과 어울려 지방까지 가서 그림을 그리고 채팅도 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달라진 그를 이상한 눈길로 쳐다봤다. 가벼운 우울증과 함께 업무실적도 자연스럽게 하향곡선을 그렸다.

남성심리 전문가 정혜신 원장(정혜신 정신과의원)은 40대를 전후로 남성들에게 나타나는 이런 변화들에 대해 “겁내지 말고 받아들이자”고 말한다. 40대에 접어들면 사회적 인정에 매달려온 남성들의 관심사는 서서히 자기 내면의 삶으로 이동한다. 그래서 감성이 풍부해지고 마음이 흔들리고 ‘나를 위해 못 살았다’라는 식의 회의가 밀려온다. “이때 대부분 남성들은 텔레비전을 보다 울기라도 하면 ‘내가 늙었구나, 마음이 약해졌구나’ 하며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그저 강하게 보이려고만 합니다.” 정 원장은 그러나 이 시기를 잘 넘기면 부드럽고 융통성 있는 매력적인 남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결국 중년의 위기는 ‘보물’과 같은 거죠.”

정 원장이 의사 가운을 벗고 무대 위에 올라 환자 아닌 관객으로 남성들과 좀더 친근한 형식으로 만나려는 이유도 이런 취지와 맞닿아 있다. 중년에 찾아오는 당혹스런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니 인정하라는 것. 3월21~30일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펼쳐지는 ‘정혜신의 감성 콘서트-남자들’은 음악·영상을 통해 중년남자들의 일·섹스·위기감 등을 조명한다. 정 원장은 100분 남짓한 공연을 혼자 이끌어가며 관객과 대화하고 피아노 연주와 노래도 들려준다.

음악·영상 통해 일·섹스 등 조명

게스트 없이 혼자 진행하는 공연이 단출할 듯 보여도 스태프진은 화려하다. 연출은 마당놀이의 대부인 손진책씨가, 무대는 월드컵 전야제 축하행사의 무대를 담당했던 윤정섭씨가 맡았다. 정 원장은 “이 공연은 포크·모노드라마·퍼포먼스 그 어느 장르에도 속하지 않는다. 굳이 형식을 가르자면 관객에게 정서적인 깨달음을 일으키는 ‘교감극’이길 바란다”고 말했다(문의 02-515-9192, www.hyeshin.co.kr).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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