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레랑스 전도사 홍세화·현대사 탐험가 한홍구, <대한민국史> 안팎의 우리 시대를 논하다
홍세화(<한겨레> 편집위원), 한홍구(성공회대 교수). 냄비처럼 들끓으며 표출되는 우리 사회의 모순을 들추는 글쓰기를 계속해온 우리 시대의 지식인이다. 한 사람은 서양의 ‘톨레랑스’의 정신을 역설하며, 또 한 사람은 우리가 거쳐온 역사의 거울을 통해. 한홍구 교수의 <대한민국史> 출간을 맞아 두 사람이 만났다. 알고 보니 12살 차이나는 돼지띠 동갑. 한자리에 앉은 이들을 뜯어보니 평소 ‘급진적 발언을 일삼는 과격한 인물’답지 않게 인상이 참 부드럽다(홍 위원은 입가에 늘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으며, 한 교수는 말할 때 서글서글한 눈웃음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막상 이야기가 본궤도에 오르자 말수 적은 홍 위원보다 한 교수는 폭포수처럼 열변을 쏟아냈다.
궁둥이힘 약한 학자의 소중한 결실
홍) 이번에 내신 <대한민국史>는 <한겨레21>에 연재되던 걸 묶은 것이지요. 연재는 중단하셨다고요 (한 교수가 ‘네’ 하고 짧게 대답하자 이내 홍 위원은 사전에 <한겨레21>의 사주를 받은 것처럼 연재 재개를 촉구하기 시작했다.) 한) <한겨레21>과 인연을 맺은 것은 베트남과 관련한 글을 한두번 쓰다가 고경태 기자로부터 연재를 제의받으면서부터였죠. 제가 다른 ‘궁둥이힘 질긴’ 역사학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다른 연구자들은 밤 9~10시 연구실에 전화 걸어보면 대부분 다 남아 있습니다) 현장과 교실을 오간다는 점입니다.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베트남전,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일 등을 하는데 사실 연구와 글에 대한 아이디어는 동료 활동가들로부터 많이 얻어요. 특히 베트남전진실위원회는 앞으로 평화역사기념관도 지어야 하고 일이 많은데, 연재를 하다 보면 아무래도 전념을 못할 것 같아 당분간 글을 쉬기로 결정했어요. 홍) 그래도 연재를 중단한 건 학자로서 ‘직무유기’ 아닌가요 우리 사회에서 한국현대사에 대한 무지는 보통 심각한 수준이 아니거든요. 지난해 한 대학 새터(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강연할 기회가 있었는데,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이 누군지 아느냐고 물었더니 단 3명만 손을 들더군요. 한) 너무 어려운 거 물어본 거 아니세요(웃음) 신문사에 일하는 친구들 말 들어보면, 요새 신입 기자들도 보도지침이라는 거 모른대요. 세상이 좋아져서 그런 것일 수 있겠지만, 우리 학교 다닐 때는 의무와 호기심이 혼합이 돼서 역사공부에 갈증을 갖고 공부했지요. 지금까진 사실 제도교육에서 한국현대사, 즉 ‘대한민국사’는 늘 빠져 있었죠. 홍)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사’란 제목은 잘 정한 것 같아요. 한) 네, 제목 정하느라 정말 고심했어요(막판엔 ‘한홍구의 통통사’(통통 튀는 현대사)란 제목도 물망에 올랐다). 이제껏 ‘대한민국사’란 것이 없었으니 제목을 선점한다는 의미도 있고, 월드컵을 거치면서 널리 불리게 된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어떤 내용을 가진 나라인지 젊은이들에게 알린다는 의미로 ‘대한민국사’로 정했죠. 지난번 촛불시위 때 한 고등학생이 마이크를 잡고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 미군이 우리나라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학교에선 안 가르쳐줬다”고 말하는데 굉장히 책임감을 느꼈어요. 현대사 교육의 빈곤, 그 서글픈 현실
홍) 왜 그렇게 학교에선 현대사를 안 가르쳐온 걸까요 정권에 정통성이 없어서 그런 것이겠죠
한) 사실 정권 차원에선 미화하느라고 많이 가르쳤죠. 하지만 ‘묻지 마, 다쳐 식’으로 친일과 민간인 학살, 두 가지 중요한 부분에 대해선 이야기 안 했죠. 학자들도 정권의 앵무새 노릇을 하기엔 양심이 허락하지 않고, 이야기하자니 다치겠고…. 현대사를 안 가르친 건, 역사교육을 방기한 것이지만 한편으론 공범이 되지 않겠다는 소극적 저항이기도 했어요.
홍) 애들을 프랑스에서 공부시키다 보니까 프랑스 역사교육에 대해 관심 있게 지켜봤는데요, 대학입학시험에 역사과목이 포함될뿐더러, 최근 40년간 역사를 고등학교 1, 2, 3학년에 나눠서 비중 있게 가르쳐요. 알제리전쟁을 성토하는 시간도 갖더라고요. 우리나라는 많이 달라져야 할 것 같아요.
한) 전 사실 한국 사회를 보수화시켜온 가장 강력한 힘이 북괴의 남침위협론보다 입시제도였다고 생각해요. 고3 수험생 있으면 가정생활 패턴이 다 바뀌어버리잖아요. 학벌사회와도 연관되는 문제기도 하고요. 신입생 면접할 때도 느끼는 건데, 학생들은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고 생각하는게 아니라 정답을 찾으려고만 해요. 이런 분위기에선 역사·철학 교육 한다 해도 제대로 될까 걱정스러워요. 역사문제란 것도 자기가 관심을 가져야 하거든요.
홍) 역사·철학 교육의 중요성은 이런 식의 입시교육이 허물어지는 걸 가정하고 이야기하는 거겠지요. 중·고등학교에서 어떤 의식을 형성하는가가 역사학자들의 고민일 텐데요. 고등학교 교실에서 <대한민국사>를 놓고 공부할 순 없을까요
한) 글이 청소년 대상으로 쓴 건 아니어도, 역사에 대한 관심을 유발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죠. 중·고등학교에선 구체적 연도나 지명에 지나치게 매달려요. 역사적 사실들은 지금의 5분의 1만 교과서에 집어넣고, 역사적으로 사고하는 방법, 비판정신 키우고 역사적 안목을 기르는 방법만 가르치면 좋겠어요. 예컨대 두발자유화 문제를 놓고 보자면, 단발령에 반대하던 최익현도 거론할 수 있겠죠. 87년 6월항쟁 때 노동자들이 내세운 구호 1번이 뭐였는지 아십니까 ‘두발자유화’였어요. 구호 2번이 ‘복장자유’였고. 즉, 두발자유화를 가지고 ‘신체발부 수지부모사상’, 단발령, 군대·학교·공장의 규율, 탈군사주의, 이런 문제를 연결시켜보면 학생들이 역사를 자기 문제로 생각하겠죠.
톨레랑스의 시각으로 본 대한민국
홍) 시국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죠. 최근 벌어진 촛불시위와 한기총 시위에 대해 역사학자로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 감기나 병에 걸렸을 때 열이 안 나면 오히려 더욱 큰일 아닌가요 두 시위도 비정상이 정상으로 바로잡혀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봅니다. 만족스럽진 않아도 우리 역사가 상당 수준 정상화의 방향으로 흘러왔다고 봐요. 당시엔 좌절된 듯보였지만 6월항쟁도 결국엔 이번 노 정권의 출범으로 마무리됐다고 봅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도 ‘보통국가’로 정상화돼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대한민국’을 한마디로 비유하면 엄청난 출생의 비밀을 안고 태어난 나라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민간인 학살이라는 것이 출생의 비밀 아니겠어요. 이후 피를 나눈 쌍둥이 형제가 갈라져, 적대적 가문에 입양돼 원수로 지내고, 형제라는 것을 잊어버린 채 남은 남대로 북은 북대로 갈라져 지내온 거죠. 그러다 과거를 돌이켜보며 출생의 비밀을 밝히고 인간답게 살아야겠다는 것을 자각해가는 과정인 거죠.
홍) 민간인 학살은 16세기 유럽에서 벌어진 신·구교 갈등과 흡사해보여요. ‘하느님의 자식’이라면서 신·구교로 나뉘어 처참하게 서로 죽였잖아요. 가해자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논리였던 거죠. 우리는 여지껏 남의 탓 상황 탓만 해왔는데, 우리가 갖고 있는 잔인성과 집단적 광기에 대한 성찰이 부족해보입니다.
한) 제 생각에 유럽인들의 톨레랑스라는 것은,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는 피바다의 시체더미 속에 서서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 속에서 생겨났다고 보여집니다. 우리 경우엔 이런 물음을 던질 여유가 없었죠. 한국전쟁 발발한 뒤엔 빨갱이라면 연좌제 걸어 씨를 말려버리고 아예 ‘박멸’해버렸으니까. 박멸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무슨 톨레랑스를 기대할 수 있겠어요 김대중씨가 대통령 된 때가 견훤 죽고 나서 처음으로 전라도가 정권 잡은 것이었잖아요. 그때 정권을 잃은 사람들은 “구제금융기니까 어쩌다 넘어간 것이다” 뭐 이렇게 생각했으니 한기총 기도회 같은 것도 없었죠. 당시엔 정권을 쥐었어도 사회의 헤게모니까지 쥐진 못했던 거죠. 그에 비해, 이제 노 정권은 분수령은 넘었다고 볼 수 있어요. 완전히 헤게모니를 쥐었다고는 볼 수 없어도. 그리고 분명한 건 그 분수령을 다시 되돌리기는 힘들다는 거죠.
진정한 보수주의 제 목소리 내야
홍) 5년 전만 해도 수구세력들은 ‘5년만 참자’고 했는데, 이제는 기다릴 5년도 없어진 셈이죠. 이제는 보수의 하강곡선을 어떻게 더 빠르게 하느냐가 문제라고 봅니다.
한) 저는 그보다는 소프트랜딩이 더 좋다고 보는데요. 또 주저앉는 사람들을 같이 갈 수 있다고 일으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홍) 노무현 정권이 맞은 새로운 싸움에선, 각오만이라도 보수의 하강국면을 급격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수구 기득권세력의 상실감 같은 것은 상상하기 힘든 것 같아요. 그 표현을 보자면. 지나친 무리수도 나타날 수 있지 않은가 싶어요.
한) 네, 충분히 가능하죠. 그러나 보수세력도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절실하게 가지면 좋겠어요. 이영희 선생 말씀처럼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나는 거니까요’. 왼쪽 날개가 돋아나는 이 시점에 오른쪽 날개도 바로잡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이를 위해선 보수파와 수구세력이 결별해야 합니다. 사실 보수와 수구는 똥과 된장만큼 차이가 나요. 마치 된장독에 똥을 담아놓고 된장이라 우겨온 식이었죠. 그렇다고 독까지 깨버릴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홍) 그렇죠. 수구가 보수를 참칭하고 있습니다. 보수세력이 탄탄하게 서 있지 못하고 다른 것은 무조건 부정하는 것을 되풀이하다 보니, 진보를 말하는 사람들도 모든 관계설정을 나하고 다르면 무조건 부정해버려요. 촛불시위나 한기총시위를 보면 서로 부정하는 모습만 있죠.
한) 이젠 온건합리적인 보수가 제 목소리 낼 때입니다. 온건합리적인 보수와 진보세력 간에 대중들을 향한 경쟁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노 정권의 성패를 가늠한다고 봐요. 데모와 기도회만으로 나라를 이끌어갈 수만은 없잖아요.
홍) 그게 지식인들이 해야 할 역할이죠.
한) 예를 들어 기독교 목사님들도 이젠 나서야 한다는 겁니다. 만약 대형교회의 부자세습이 괜찮은 거라면 김정일 부자세습, 재벌 부자세습도 다 마찬가지로 용인되는 거 아니겠어요
홍) 친미·반미 이런 이분법이 통용되는 것도 역사의 빈곤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사에서 남-북한과 관계된 빠질 수 없는 세력이 미국일 텐데요. 노무현 정부가 남과 북의 관계에서 적극적이긴 하지만, 여전히 미국에 대해 남은 종속적이지요. 주한미군 철수라든가 노 정권의 대미관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제는 객관적 현실을 알려야 한다
한) 노무현이 정권 잡고 미국에게 뻣뻣하게 구니까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시킨다고 나오는 거다, 이렇게 몇몇 언론들이 떠드는데, 역사를 조금만 안다면 이런 소리 쑥 들어갈 겁니다. 주한미군 철수계획은 10년 전부터 있었던 데다가, 미국의 용병이란 소리 들어가며 헌신적 충성을 바치던 70년대에도 2개사단 빼갔죠. 미국은 우리 태도와는 상관없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주한미군 주둔을 결정합니다. 이제 노무현은 큰소리로는 못하더라도 미국에 대해 ‘노’라고 말할 거라는 기대감을 갖게 합니다. 이젠 국민한테도 미국이 어떤 나라라는 걸 거리를 두고 객관화해서 보여줘야 할 때입니다.
(이즈음 100분 남짓 진행된 대담은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때 홍 위원이 다시 한번 <한겨레21>의 이해를 대변하는 발언을 던졌다.)
홍)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이제 대담을 끝내면서 다시 이런 생각이 드네요. 한달만 쉬시고 다시 글을 쓰시죠 하루빨리 ‘역사이야기’ 2부를 보고 싶습니다.
정리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사진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사진/ 홍세화 <한겨레>편집위원 “보수세력이 다른 것은 무조건 부정하는 것을 되풀이하다 보니 진보를 말하는 사람들도 모든 관계설정을 나하고 다르면 무조건 부정해 버렸어요.”
홍) 이번에 내신 <대한민국史>는 <한겨레21>에 연재되던 걸 묶은 것이지요. 연재는 중단하셨다고요 (한 교수가 ‘네’ 하고 짧게 대답하자 이내 홍 위원은 사전에 <한겨레21>의 사주를 받은 것처럼 연재 재개를 촉구하기 시작했다.) 한) <한겨레21>과 인연을 맺은 것은 베트남과 관련한 글을 한두번 쓰다가 고경태 기자로부터 연재를 제의받으면서부터였죠. 제가 다른 ‘궁둥이힘 질긴’ 역사학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다른 연구자들은 밤 9~10시 연구실에 전화 걸어보면 대부분 다 남아 있습니다) 현장과 교실을 오간다는 점입니다.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베트남전,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일 등을 하는데 사실 연구와 글에 대한 아이디어는 동료 활동가들로부터 많이 얻어요. 특히 베트남전진실위원회는 앞으로 평화역사기념관도 지어야 하고 일이 많은데, 연재를 하다 보면 아무래도 전념을 못할 것 같아 당분간 글을 쉬기로 결정했어요. 홍) 그래도 연재를 중단한 건 학자로서 ‘직무유기’ 아닌가요 우리 사회에서 한국현대사에 대한 무지는 보통 심각한 수준이 아니거든요. 지난해 한 대학 새터(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강연할 기회가 있었는데,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이 누군지 아느냐고 물었더니 단 3명만 손을 들더군요. 한) 너무 어려운 거 물어본 거 아니세요(웃음) 신문사에 일하는 친구들 말 들어보면, 요새 신입 기자들도 보도지침이라는 거 모른대요. 세상이 좋아져서 그런 것일 수 있겠지만, 우리 학교 다닐 때는 의무와 호기심이 혼합이 돼서 역사공부에 갈증을 갖고 공부했지요. 지금까진 사실 제도교육에서 한국현대사, 즉 ‘대한민국사’는 늘 빠져 있었죠. 홍)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사’란 제목은 잘 정한 것 같아요. 한) 네, 제목 정하느라 정말 고심했어요(막판엔 ‘한홍구의 통통사’(통통 튀는 현대사)란 제목도 물망에 올랐다). 이제껏 ‘대한민국사’란 것이 없었으니 제목을 선점한다는 의미도 있고, 월드컵을 거치면서 널리 불리게 된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어떤 내용을 가진 나라인지 젊은이들에게 알린다는 의미로 ‘대한민국사’로 정했죠. 지난번 촛불시위 때 한 고등학생이 마이크를 잡고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 미군이 우리나라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학교에선 안 가르쳐줬다”고 말하는데 굉장히 책임감을 느꼈어요. 현대사 교육의 빈곤, 그 서글픈 현실

사진/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한국 사회를 보수화시켜온 가장 강력한 힘이 북괴의 남침위협론보다 입시제도였어요. 이런 분위기에서 역사나 철학에 관심을 가질 수 없었죠.”

사진/ 한국사회의 모순을 들추는 글쓰기로 주목받는 홍세화 위원과 한홍구 교수. 두 사람이 현대사회와 최근의 현안을 놓고 대담을 나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