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계에 파격과 웃음을 몰고 다니는 연출가 이상우씨… “예술가는 포기하는 게 많아야 한다”
그가 쓰고 연출하는 작품들은 대부분이 평화와 통일을 얘기하고 반전과 민주주의를 얘기한다. 하지만 공연장 안에선 그런 단어와 어울릴 만한 어떤 엄숙한 분위기는 보이지 않는다. 엄숙하기는커녕 시종일관 키득거리고 깔깔대다가 나오는 공연들이 대부분이다. 우느라 손수건이 두개쯤은 필요한 ‘봉숭아 꽃물’이나 무거운 정치극 같은 걸 안한 건 아니지만, 역시 그의 재기가 빛이 나는 건 코미디다.
대학로 삐끼 근절 운동에 대한 생각
연우무대 창단멤버 가운데 하나인 그는 객원연출을 자주 하다 보니 뜻하지 않게 ‘이상우 사단’ 같은 분위기가 형성돼 자연스럽게 자신의 극단을 만들었다. 이름하여 ‘차이무’. ‘차원이동무대선(船)’의 준 말이다. 관객은 이 배를 타고 새로운 차원을 이동하며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세상을 보게 되면서 마치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듯 자신이 사는 세상을 발견한다는 ‘깊은’ 뜻이 담긴 극단이름이다. 이 극단을 거쳐갔거나 물밑활동을 하는 단원들 가운데 들어서 알 만한 사람 중엔 문성근·명계남·송강호·유오성·박광정 등이 있다. 나 역시 한때 신나고 재미난 이 배에 동승해서 몇편의 연극을 했고 지금은 ‘비밀단원’으로 활약() 중이다.
그는 지금 배우들의 조화로운 연기가 환상적인 <거기>라는 작품을 끝내자마자 극단의 레퍼토리 가운데 하나인 <늘근 도둑 이야기>를 공연 중이다. 명계남의 대학로 컴백()기념 공연인 이 작품 역시 냉소적인 웃음 안에 따뜻한 사람 얘길 하고 있는 코미디극이다. 시작과 동시에 보름치가 이미 매진이 됐다던데 그건 명계남의 스타성 때문만은 아닌 거 같다. 알게 모르게 차이무의 고정팬들이 무척 많기 때문이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일요일 오후, 그의 삐딱하면서도 소박한 웃음도 보고 작품도 오랜만에 다시 볼 겸해서 극장을 찾았다. 그는 요새 너무 바쁘다. 작품이 연달아 올라가 쉴 틈도 없는데다가 연극원 교수 노릇까지 하기 때문이다. 교수 노릇이란 것 역시 모두 공연실습이기 때문에 요즘 그의 머릿속엔 여러 개의 작품이 동시에 동작선을 긋고 있는 중이다. 이런 중에도 그는 행정자치부가 주관하는 노 대통령 취임식준비회의에도 노문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문화예술인모임)의 회원 자격으로 참가해 여러 가지 아이디어와 의견을 제출했다. 새 대통령을 맞는 소감을 물으니 기분이 좋다면서 다소 엉한 이유도 들었다. 젊은 대통령이라 걸음이 빨라 일 진행이 빨리 된다는 논리다. 모두 노 대통령의 ‘이미지’에 집중하고 있을 때 그는 연극 연출가답게 그의 ‘동작선’을 계산했나 보다. 오래전부터 가깝게 지내던 이창동 감독이 문화부 장관이 된 것에 대해서 소감을 물었다. 잘할 거라 믿는다며 어차피 문화부 장관은 관료가 할 수 없는 자리므로 적절한 자리배치였다고 생각한단다. 그러면서 슬쩍 한마디 덧붙인다. 5천년 문화의 나라라면서 문화부가 독립이 안 되고 늘 체육과 관광이 붙어 있는 게 말이 안 된다면서 ‘분리’가 먼저일 것 같단다. 백번 동감이다. 권위주의에 대한 얘길 하다가 연극협회얘길 하게 됐다. 난 요즘 협회에서 하고 있는 대학로 ‘삐끼’ 근절 운동에 대해 답답한 건 알겠지만 방법이 너무 권위적이고 유치하다고 흉을 봤다. (그들은 요즘 트럭에 스피커를 달고 하루종일 대학로를 누비며 ‘호객행위에 관심 갖지 맙시다’, ‘좋은 연극은 하루 두번 이상 공연하지 않습니다’를 외치고 있다.) 한데, 이런… 맞장구를 쳐줄 줄 알았는데 핀잔을 들었다. “너도 연극 하는 사람 아니냐 어떻게 같은 식구를 그렇게 흉을 볼 수 있니 그 사람들 오죽하면 그런 방법을 썼겠나 생각해봐라. 나도 협회의 주장에 다 동의하진 않지만 비판을 할 땐 반드시 ‘대안’이 있어야 해. 대안이 없는 일방적 비판은 그 내용이 아무리 일리 있는 말일지라도 폭력이거든. 연대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서로 지 잘난 줄만 알기 때문에 연극판이 제대로 안 돌아가는 거야. 함부로 흉보지 마.” ‘검사 받는 창작’은 싫다
이렇게 부끄러울 수가…. 흉보다 닮는다고 가부장적 권위주의를 흉보는 내 안에 나도 모르게 숨어 있는 폭력적이고 무책임한 모습을 들킨 터라 부끄러워 죽을 뻔했다. ‘젊은 꼰대’답게 그는 약간 격양돼 말을 이었다. “기자들도 그래. 연극 보고 재미없으면 아무 말 안 하면 돼. 오히려 그게 더 무섭지 않으냐 좋은 것만 얘기했음 좋겠어.” 그러게. 비판은 충분한 애정과 대안이 있을 때만 힘을 갖는다. 그냥 일방적으로 흉보는 건 아주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이며 세상의 평화에 하등 기여하지 못하는 짓이다.
차이무 공연 팸플릿에 실린 글들은 공연 못지않게 신선하고 재미있다. 글도 글이지만 배우와 배후(스태프)들의 이력을 쓰는 난이 참으로 그렇다. 출신학교들을 다 초등학교만 쓰는 거다. 제작에 돈을 댄 기업의 대표도 나이 지긋한 평론가들도 차이무 공연 팸플릿에는 최종학력 대신 출신 초등학교 이름만 달랑 나온다. 초등학교 이름만 봐서는 배우들의 연기에 선입견을 가지려야 가질 수 없으니 얼마나 신선하고 즐거운 짓인가. 물론 이 아이디어 역시 그의 가슴속에서 나온 거다. 그만큼 그는 권위와 폭력과 선입견, 특히 편견을 싫어한다.
50이 넘은 나이에도 늘 캐주얼 차림에 빡빡 깍은 머릴 하고 있는 그에게 양복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그에게도 회사원 시절이 있었다. 서울대 미학과를 나와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 일을 했다. 그러다 연극을 선택한 건 광고도 창작은 창작이지만 검사를 받는 창작이었기 때문에 검사받지 않는 창작을 하고 싶어서였다. 1980년대 연우무대 시절에 정치적 린치를 받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대본심의가 있었지만, 연극은 대중적 선전효과가 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크게 간섭은 하지 않았단다. 오히려 공연심사를 하러 나온 관료들이 굳은 얼굴로 들어갔다가 연극이 하도 웃기니까 같이 깔깔대고 나오더라며 킥킥 웃는 그의 얼굴은 영락없는 개구쟁이다.
“우린 편안하면 불편해, 그치”
예술가에게 꼭 필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냐고 물었다. 포기하는 게 많아야 한단다. 가정·돈·안락함 같은 거 말이다. 조금 불편한 것이 예술의 운동력이라는 거다. 몇해 전에 문성근과 이창동과 셋이 술을 먹다가 “우린 편안하면 불편해. 그치” 그러면서 킬킬대고 웃었단다. 이런 얘길 들을 때마다 난 가슴 저 밑바닥에 큰 애벌레 한 마리가 꼬불꼬불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연극을 안 하기도 하고 못 하기도 한 게 어느덧 5년이 됐다. 그동안 관객을 만나지 못한 갑갑증 때문에 (명계남의 표현을 빌리자면 ‘연극이 마려워서’) 계속 마음 한구석이 불안했다. 이제 보니 그건 그동안 내가 너무 편안해서였기 때문인 것 같다. 다시 관객을 만나기 위해서 난 무엇을 포기해야 하나 생각해본다.
차이무 홈페이지에는 ‘아제글판’ 이란 곳이 있다. 그가 가끔 끼적거리는 곳이다. (그는 선생님이란 호칭보다는 ‘상우아재’로 불리는 걸 좋아한다.) 거기 ‘아름다움’이란 제목의 짧은 글이 있는데 그의 예술관을 한마디로 말한 것 같아 옮겨 적는다.
“아름다움에는 한 가지 기준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영화배우 오지혜

사진/ 요즘 대학로에서 <늘근도둑이야기>를 공연중인 이상우씨. 냉소적인 웃음 안에 따뜻한 사람 얘길 하고 있는 코미디극이다. (이용호 기자)
그는 지금 배우들의 조화로운 연기가 환상적인 <거기>라는 작품을 끝내자마자 극단의 레퍼토리 가운데 하나인 <늘근 도둑 이야기>를 공연 중이다. 명계남의 대학로 컴백()기념 공연인 이 작품 역시 냉소적인 웃음 안에 따뜻한 사람 얘길 하고 있는 코미디극이다. 시작과 동시에 보름치가 이미 매진이 됐다던데 그건 명계남의 스타성 때문만은 아닌 거 같다. 알게 모르게 차이무의 고정팬들이 무척 많기 때문이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일요일 오후, 그의 삐딱하면서도 소박한 웃음도 보고 작품도 오랜만에 다시 볼 겸해서 극장을 찾았다. 그는 요새 너무 바쁘다. 작품이 연달아 올라가 쉴 틈도 없는데다가 연극원 교수 노릇까지 하기 때문이다. 교수 노릇이란 것 역시 모두 공연실습이기 때문에 요즘 그의 머릿속엔 여러 개의 작품이 동시에 동작선을 긋고 있는 중이다. 이런 중에도 그는 행정자치부가 주관하는 노 대통령 취임식준비회의에도 노문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문화예술인모임)의 회원 자격으로 참가해 여러 가지 아이디어와 의견을 제출했다. 새 대통령을 맞는 소감을 물으니 기분이 좋다면서 다소 엉한 이유도 들었다. 젊은 대통령이라 걸음이 빨라 일 진행이 빨리 된다는 논리다. 모두 노 대통령의 ‘이미지’에 집중하고 있을 때 그는 연극 연출가답게 그의 ‘동작선’을 계산했나 보다. 오래전부터 가깝게 지내던 이창동 감독이 문화부 장관이 된 것에 대해서 소감을 물었다. 잘할 거라 믿는다며 어차피 문화부 장관은 관료가 할 수 없는 자리므로 적절한 자리배치였다고 생각한단다. 그러면서 슬쩍 한마디 덧붙인다. 5천년 문화의 나라라면서 문화부가 독립이 안 되고 늘 체육과 관광이 붙어 있는 게 말이 안 된다면서 ‘분리’가 먼저일 것 같단다. 백번 동감이다. 권위주의에 대한 얘길 하다가 연극협회얘길 하게 됐다. 난 요즘 협회에서 하고 있는 대학로 ‘삐끼’ 근절 운동에 대해 답답한 건 알겠지만 방법이 너무 권위적이고 유치하다고 흉을 봤다. (그들은 요즘 트럭에 스피커를 달고 하루종일 대학로를 누비며 ‘호객행위에 관심 갖지 맙시다’, ‘좋은 연극은 하루 두번 이상 공연하지 않습니다’를 외치고 있다.) 한데, 이런… 맞장구를 쳐줄 줄 알았는데 핀잔을 들었다. “너도 연극 하는 사람 아니냐 어떻게 같은 식구를 그렇게 흉을 볼 수 있니 그 사람들 오죽하면 그런 방법을 썼겠나 생각해봐라. 나도 협회의 주장에 다 동의하진 않지만 비판을 할 땐 반드시 ‘대안’이 있어야 해. 대안이 없는 일방적 비판은 그 내용이 아무리 일리 있는 말일지라도 폭력이거든. 연대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서로 지 잘난 줄만 알기 때문에 연극판이 제대로 안 돌아가는 거야. 함부로 흉보지 마.” ‘검사 받는 창작’은 싫다

사진/ 연극협회의 삐끼근절 운동에 대해 의견을 내놓았던 오지혜씨는, 맞장구는커녕 핀잔만 듣고 말았다. (이용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