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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이제는 체육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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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0-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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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클럽 중심의 풀뿌리 체육 기반 조성… 생활체육 후진국이라는 오명 벗어야

독일의 쾰른시는 인구 100만명에 불과하지만 체육관 210개, 공공수영장이 150개에 달한다. 독일은 이번 시드니올림픽에서 금메달 순위 5위를 달성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전국 체육관 수는 288개, 공공수영장은 88개에 불과하지만 12위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수치상으로 보면 언뜻 이해가 안 간다.

생활체육의 토대는 학교체육이다. 일본의 학교를 다녀보면 체육관은 필수적이고 수영장까지 보유하고 있는데 우리의 학교체육실정과 비교해 보면 천지차이를 느낀다. 우리는 체육관은커녕 100m 직선 코스를 그릴 수 없는 좁은 운동장에서 1천여명의 학생들이 활동하는 학교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시드니올림픽에서 우리는 일본보다 3개나 많은 금메달을 획득했다.

시드니올림픽 12위는 기적에 가깝다


(사진/한국 스포츠의 성적은 극소수 우수한 선수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태릉선수촌에서 훈련하는 국가대표 선수들)
엘리트체육은 생활체육과 학교체육의 든든한 기반 위에서 꽃피는 것이 정상적이다. 우리의 풀뿌리 체육 기반이 취약함에도 올림픽 성적에서 상위권을 유지한다는 것은 우리의 체육이 비정상적 구조를 띠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정상적 사회구조는 이에 따른 여러 가지 부작용을 초래하므로 국민을 위한 체육으로 올바르게 자리매김하기 위한 체육개혁을 추진할 시점에 다다랐다. 이것이 시드니올림픽이 주는 가장 커다란 교훈이다.

선진국에 비해 월등히 뒤떨어진 우리나라의 생활체육과 학교체육현황을 고려할 때 시드니올림픽 12위라는 성적은 기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러한 기적은 지난 84년 LA올림픽부터 지금까지 연이어 실현되고 있다. 관계당국과 언론에서는 애초 시드니올림픽의 목표였던 10위권 진입 실패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지만 풀뿌리 체육의 기반이 취약한 우리의 체육현실에서 선수들이 달성한 성적은 엘리트체육 육성정책의 성과이자 한계이기도 하다.

시드니올림픽의 성적은 한국체육, 특히 엘리트체육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기에 충분하다. 양궁 3개, 태권도 3개, 펜싱 1개, 레슬링 1개 등 4개 종목 총 8개에 이르는 금메달은 비인기 특정종목 편중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나마 이번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태권도를 뺀다면 5개에 불과하다. 이는 금메달 12개로 세계 4위에 오른 88년 서울올림픽은 물론 금메달 12개로 7위를 기록한 92년 바르셀로나, 금메달 7개로 10위를 유지한 애틀랜타올림픽에 비해서도 상당히 줄어든 숫자다.

유도의 정성숙, 조민선 등 은퇴선수들의 재등장과 금메달 획득 실패, 이봉주의 부진한 성적 등은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퇴조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이들은 엘리트 스포츠 열기가 정점에 오른 88올림픽 때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운동을 시작한 선수들. 이들의 쓸쓸한 퇴장은 ‘국가주의’ 기치 아래 휘몰아치던 한국 엘리트 스포츠가 세대교체에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새로운 재목이 안 보인다”는 정봉섭 국가대표 마라톤 감독의 한탄에는 이런 변화가 놓여 있다.

앞으로도 메달 효자 종목이자 투혼 내지 헝그리 정신으로 상징되었던 유도, 복싱 등의 투기 종목은 국내의 엷은 선수층으로 인해 더이상 국제경쟁력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그동안 국위선양에 기여했던 대부분의 종목에서 선수들은 급속히 고갈되는 추세에 있다. 이제 국내 스포츠인구의 저변 확산없이 극소수 우수한 선수들을 태릉선수촌과 소속팀에서 연간 320일 이상의 합숙을 통해 금메달을 따왔던 전략은 대대적 수정이 불가피하다.

불굴의 의지와 끝없는 투혼의 이면에는…

(사진/불굴의 의지와 투혼으로 끝없는 금메달을 향하여….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들한 선수들은 화려한 미래를 보장받는다)
특히 국내 3개팀 40명 선수에 불과한 우리의 하키팀이 1천여개의 하키클럽이 존재하는 네덜란드와 결승에서 아깝게 분패한 것을 두고 외국인들의 눈에 우리의 체육이 어떻게 비쳐질지 궁금하다. 국내 4개팀밖에 없지만 화려한 기량으로 선전한 여자 핸드볼도 마찬가지다. 또 배드민턴 남자복식에서 한국을 이기고 금메달을 따낸 인도네시아는 우리보다 1천배나 많은 등록선수를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선수층이 엷은 결과 우리는 젊은 선수들을 ‘전사’라 칭하며 불굴의 의지와 끝없는 투혼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것만으로 부족하기에 금메달 획득 선수에게 매월 100만원의 연금과 군면제라는 지구상 유례없는 특혜를 부여하고 있다.

시드니올림픽은 엘리트체육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으며, 엘리트체육을 전면 재검토하는 결단을 요구한다. 더불어 풀뿌리 체육, 즉 생활체육과 학교체육에 기반한 엘리트체육발전이라는 새로운 인식전환을 기대한다.

생활체육과 학교체육의 기반을 강화하는 제도적 실천을 체육개혁이라고 한다면 이 화두는 새삼 새로운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올림픽 대회가 끝나면 “이제는 생활체육이다”하면서 변화를 시도해 왔다. 그러나 막상 올림픽이 다가오면 메달순위에 집착해 엘리트체육위주로 돌변하는 악순환을 거듭해 왔다. 제도적 개선없는 변화는 진정한 개혁이 아니며, 지속성을 갖지 못하고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스포츠클럽, 이것은 제도적으로 체육을 개혁할 수 있는 핵심적 틀이며 내용이다. 체육개혁의 출발점은 국민의 욕구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볼 때, 스포츠클럽은 제도적으로 풀뿌리 대중체육을 지향하는 유일하고 바람직한 대안이라고 본다.

스포츠가 생활의 일부인 유럽인들의 경우에도 스포츠클럽이 있기에 가능하고 스포츠클럽을 뺀다면 속 빈 강정일 만큼 중요하다. 영국에는 축구클럽만 4만6150개, 160만명의 회원을 두고 있을 정도이다. 전국적으로 15만개의 스포츠클럽이 있으며, 회원 수가 15백00만명에 육박함으로써 성인 2명 중 1명꼴로 스포츠클럽을 통해 매일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있다. 독일은 총인구의 1/3에 해당하는 국민들이 스포츠클럽에서 운동을 하고 있으며, 덴마크는 장애인을 위한 스포츠클럽만도 350개나 된다. 스위스,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복지국가의 체육은 모두 스포츠클럽에 기초하고 있다. 클럽은 연령별, 성별 등 다양하고 조밀하게 조직되어 있다.

스포츠클럽에서 발굴한 우수선수 수두룩

클럽에서 연령별 리그를 연중 실시하니 학교간 시합이 필요없고 그러다 보니 우리처럼 운동만 하는 학생선수 문제나 특기자 부정입학이 발생할 소지가 없다. 스포츠클럽의 하부조직에 기반을 둔 연맹은 스포츠클럽의 결합체이며 대부분 연맹예산의 절반이 스포츠클럽의 회비로 충당되고 있다. 재벌기업의 거액 투자 없이는 생존하기 어려운 우리의 대한체육회 산하 단체와는 매우 대조적이다. 또 스포츠클럽간의 경쟁을 통해 우수선수를 발굴하고, 우수선수육성은 해당 연맹에서 담당하고 있는 점은 국가아마추어리즘에 입각한 우리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독일 도르트문트 근교 한 작은 마을의 은행원인 프랑크 부제만은 스포츠클럽 활동을 통해 지난 애틀랜타올림픽 철인경기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러한 사례는 이번 시드니올림픽에서도 수없이 등장했다.

물론 유럽의 스포츠클럽은 나폴레옹 전쟁 이후 ‘체력은 국력’이라는 필요성을 인식한 민족국가의 정책적 필요에 의해 100년 이상의 전통을 가졌고, 우리와 사회문화적 토대를 달리하는 유럽형의 스포츠클럽을 이 땅에 접목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험은 한국형 스포츠클럽 발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메이지유신 이후 우리처럼 학교와 기업을 중심으로 스포츠가 발전되었던 일본은 80년대를 기점으로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 스포츠클럽을 조직화하고 있다. 그 결과 다양한 종목에 참가할 수 있는 복합형 클럽에 가입한 인구가 200만명을 상회하고, 단일종목 클럽에는 1천만명이 넘게 참여하고 있으며 날로 증가추세에 있다. 특히 국가대표 축구에서는 우리와 비슷한 수준인 일본이지만 초등학교 축구클럽팀이 무려 8883개나 있어 212개에 불과한 한국 초등학교팀과는 40배의 차이를 내고 있는 것은 스포츠클럽을 성공적으로 육성한 결과이다. 유럽과 다른 환경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이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는 스포츠클럽 체제를 우리라고 못할 리 없다. 단지 우리 실정에 맞는 한국형 스포츠클럽 확립이 필요하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체육단체에 대한 전면 재검토 들어가야

(사진/스포츠클럽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시설과 조직을 확충해야 한다.우리나라의 공공수영장은 88개에 지나지 않는다)
체육개혁의 요체인 스포츠클럽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측면에서 변화가 수반되어야 하지만 시설과 조직을 구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체육시설이 매우 열악한 우리의 현실에서 시설 확충은 좀더 많은 국민들에게 스포츠 참여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전체 국가예산 대비 체육재정 규모가 선진국 1%에 비해 훨씬 못 미치는 0.2% 수준에 불과한 실정에서 체육시설을 많이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시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체육개혁 차원에서 기존 시설의 활용도를 선진국 수준으로 높일 필요가 있다. 간이운동장을 제외한 전국적으로 1천여개에 달하는 공공체육시설의 개방시간을 최대한 늘리고, 적절한 지도자 배치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으로 부족한 시설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민간위탁을 최대한 실시해 공공체육시설의 효용도를 높일 수 있다. 다음으로 지역사회체육과 학교체육 자원을 효과적으로 연계해야 한다. 선진국 학교체육관의 경우 낮에는 학생들이 이용하고, 방과후 또는 주말에는 지역주민들에게 항시 개방되어 있다. 반면 우리의 학교체육관은 잠겨 있거나 학교운동부 전용으로 사용되는 실정이다.

스포츠클럽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체육단체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불가피하다. 혁명보다 어렵다는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개혁주체가 튼튼히 구축되고 효율적으로 작동돼야 한다. 그러나 체육구조가 비정상적인 만큼이나 체육단체도 기형적이다. 대한체육회는 엘리트체육, 국민생활체육협의회는 생활체육을 담당하고 있는데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 단체가 분리된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엘리트와 생활체육은 동전의 양면으로 유기적 관계이므로 마땅히 통합운영돼야 함에도 분리운영돼 예산낭비와 업무의 비효율성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두 단체의 양립은 과거 정치적 소산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며, 단체 통합은 체육개혁 차원에서 추진돼야 한다. 특히 대한체육회의 경우 본래 고유 업무인 국민생활체육진흥을 망각한 채 엘리트체육육성에만 치중하고 있고, IOC에 의해 독립적 기구로 존재해야 될 한국올림픽위원회(KOC)를 대한체육회의 일부로 두고 있는 것은 난센스이다. 또 체육단체의 최고 수장이라는 사람이 “엘리트체육이 발전하면 생활체육은 저절로 발전한다”라는 시대착오적인 논리를 설파해온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대중을 위한 스포츠클럽을 위한 노력을 기대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거듭 말하지만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협의회의 통합은 왜곡된 한국체육을 바로 세우고, 체육개혁을 향한 스포츠클럽을 확립하기 위해서 당연히 필요하다.

장기적 계획 세워 단계적으로 접근하자

(사진/산책로에 있는 체육시설에서 운동을 하는 모습)
이상에서 제시한 스포츠클럽 확립을 위한 시설과 조직은 정부 관계 당국의 체육개혁에 대한 의지가 확고할 때만이 가능하다. 엘리트체육은 단기간에 성과를 볼 수 있지만, 풀뿌리 체육의 성과는 장기간의 인내를 요구한다. 당장의 메달이나 업적보다는 국민의 입장에서 체육정책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풀뿌리 체육 기반을 다지기 위해 스포츠클럽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독일이 15년간 추진했던 ‘golden plan’과 일본이 월드컵을 유치하면서 ‘축구 100년 구상’이라는 장기정책을 통해 100년 뒤 축구 세계 최강국이 되겠다는 야심을 실천하고 있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론적으로 스포츠클럽을 중심으로 하는 체육개혁이 실현되면 ‘엘리트체육 선진국, 생활체육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벗게 될 것이다. 그래서 미래 올림픽에서는 생활체육 저변이 확대된 종목에서 동메달이라도 딸 수 있다면 진정으로 국민들이 환호하며 감격할 것으로 믿는다. 체육개혁! 해답은 스포츠클럽이다.

안민석/ 중앙대 사회체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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