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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큰아이 입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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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3-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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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경연미
추위가 덜 가신 탓에 큰아이 입학식 가는 발걸음이 뜨악해진다.

영광읍에 있는 남자중학교 2개교 가운데 하나는 사립, 또 다른 학교는 공립이다. 6학년 말, 원하는 중학교를 사립으로 써넣은 아이는 공립으로 추첨되었고 친구들 하나 없이 본인만 떨어졌다고 툴툴거렸다.

3개반에 100여명 남짓을 모집하는 2개 중학교 가운데 사립학교로만 지원서가 밀렸고, 결국 뺑뺑이 추첨으로 양쪽 학교 학생을 배정했다. 큰 아이 반에서도 3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립을 지원했다. 물론 우리 아이도 그렇고….

얼마 전 사립학교로 배정된 큰아이 친구가 집에 놀러와 “왜 아이들이 사립학교로만 지원한 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그 학교에는 나쁜 형들이 많아서 그래요”라고 대답한다. 워낙 순둥이에다가 내성적인 큰아이도 그 점이 걱정되는 눈치다. “너희의 편견일 가능성이 많다”는 말로 애써 타일러야 했지만 마음 한켠 걱정이 몰리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학부모들이 사립학교를 선호하는 더 큰 까닭은 대학 진학률이 높은 사립고등학교로의 진학이라는 배수진 때문인 듯하다. 사립고등학교와 같은 울타리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마음 든든함을 얻나 보다.

그래서였을까 큰아이 중학교 교장선생님은 우리 학교가 다른 학교와 다른 ‘중심학교’라며 힘주어 말하고, 캐나다 출신 원어민 선생님을 내세워 학교자랑에 열을 올리신다. 입학식에 참석한 아이들도 새로운 환경에 퍽이나 을씨년스러운 표정들이다. 학부모들 표정도 그렇고….

콩나물 학급만 경험하고 서울에서 자란 나로서도 작은 학교와 학생 수보다 아이들의 밝지 않은 표정이 맘에 걸린다. 이미 자신의 선택에서 밀려난 작은 패배감 어린 얼굴이랄까


인생의 한 획을 긋느라 맘고생·몸고생이 심한 아이에게 저녁마다 귀찮게 물어본다.

“오늘은 친구랑 인사했어” “아니오” “내일은 니가 먼저 인사해봐”.

“선생님은 누가 제일 좋아” “영어 선생님이오.”

“급식실은” “깨끗하고 좋아요.”

“원어민 선생님하고는 이야기 해봤니” “너희 학교 이쁘더라, 운동장도 깔끔하고….”

계속되는 엄마의 수다에 아이도 마음이 풀려가고 굳은 얼굴도 밝아진다.

의무교육인 중학교 입학부터 대학 전초전이라도 치른 듯해 내 마음부터 부끄러워진다.

점점 극심해지는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의 차이는 뭘로 메워질까

농촌학교에 배정된 선생님들의 열정에만 기대어보아도 될는지 얼른 답이 안 나온다.

이태옥 ㅣ 영광 여성의전화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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