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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성의 전복자, 마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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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3-0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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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섹스 심벌로 떠오른 마돈나는 전 미국을 열광시키고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1950년대 금발 미인을 존경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차이점은 마돈나가 긍정적인 데 반해 마릴린 먼로는 약하고 자기 파괴적이어서 결국 파멸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1987년 마돈나가 고 케네디 대통령의 아들과 뉴욕에서 비밀리에 만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이 만남의 상징적 의미는 섬뜩할 정도로 분명해졌다.”

<마돈나 섹슈얼 라이프-울지마, 울지마, 울지마>(앤드루 모튼 지음, 유소영 옮김, 나무와숲 펴냄)가 우리말로 옮겨져 나왔다. 마돈나는 단순한 팝스타가 아니다. 10대 임신, 신성모독, 동성애자 인권 등 예민한 사안을 공격적으로 이슈화한 마돈나를 마릴린 먼로처럼 단순히 섹스의 여신으로만 지칭하기에는 곤란하다. 그는 젠더와 성욕의 모호한 경계, 여성 스스로 자신의 몸과 역할, 인생을 개척하고 지배해나가야 한다는 페미니즘적 주장을 자신의 대중적 성공과 기막히게 이어간 ‘성의 전복자’다. <마돈나 섹슈얼 라이프…>는 ‘불량소녀’ 마돈나의 성적 탐험을 호기심 어리게 좇아가기도 하지만, 그의 성공이 어떻게 가능했고 그가 행해온 수많은 말과 행위가 어떤 맥락에 닿아 있는지에 더 큰 관심을 두고 비교적 냉정하게 기술한다.

마돈나를 어린 시절부터 예비 호색꾼으로 치부하는 일부의 눈길은 처음부터 반박된다. 어린 마돈나는 난잡한 여자에게는 비참한 결말이 기다리게 마련이라는 할머니 엘시 포틴의 교훈에 ‘힘입어’ 성을 역겨운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어쩌다 오빠들의 벗은 몸을 보면 혐오감부터 느꼈을 정도다. 고등학교 시절을 포함해 학창 시절 내내 규율위원 노릇까지 했다. 변화는 십대 중반에 전직 발레 댄서 크리스토퍼 플린을 발레 교사로 만나면서부터 일어났다. 플린은 마돈나의 미적 감각을 길러주기 위해 디트로이트 박물관과 갤러리, 콘서트 등에 열성적으로 데리고 다니며 시와 책, 예술을 논했다. 또 이들은 디트로이트 시내의 게이 클럽에서 수백명의 게이 남자들과 “순수한 즐거움 때문에 추는 춤”을 즐겼다. 마돈나에게 “한 개인으로서, 떠오르는 예술가로서 자각을 갖게 해준” 건 뉴욕의 아방가르드 미술가 장 미셸 바스키아와의 석달간의 연애다. “두 연인은 예술적 용기로 뭉친 관계였다. 이는 마돈나를 평가할 때 종종 간과되는 특성이기도 하다. 둘 다 예술적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좀더 계산적인 건 마돈나였다. 바스키아가 헤로인 과용으로 스물일곱살에 숨을 거둔 것처럼 수많은 동년배가 술과 마약에 빠져 있던 시절, 마돈나는 “단 한순간도 현실을 유보하지 않고 몸과 마음을 맑게 유지”했다. “목적은 단 하나, 유명해지는 것”이었다.

마돈나의 유명한 남성편력은 가수로서의 명성을 확고한 다음부터다. 영화배우 숀 펜, 스타 래퍼 바닐라 아이스, 영화배우 워런 비티, 마이클 잭슨, 영화감독 가이 리치, 농구스타 데니스 로드맨…. 자신의 보디가드와도 깊은 연애에 빠졌던 마돈나지만 더 눈여겨볼 건 여성과의 연애다. 남자와의 관계에서 볼 수 없었던 깊은 우정을 동반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의 활동 초기에 매니저 노릇을 해준 8살 연상의 여인 카밀 바본은 그의 연인이자 “어머니이자 최고의 친구요 가이드”였다.

마돈나는 2001년 영화감독 가이 리치와의 사이에서 아기를 가졌을 때(결혼 전이었다) <왓 잇 필스 라이크 포 어 걸>이란 노래를 통해 강함과 약함이 교차하는 현대여성의 내적인 갈등을 표현했다. 그는 이에 대해 “환상을 실천으로 옮기고, 일반 여성들에게 허락되지 않는 일들을 저지르는 캐릭터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것은 분노의 노래다”라고 말했다. 사랑하는 이를 통해 아기를 가졌을 때 분노를 느끼는 그의 캐릭터를 한마디로 규정짓기는 곤란하다. 그렇지만 가부장적 사회에서 성적 욕망과 여성성을 추구하면서도 자신의 삶에 대해 지배권을 쥘 수 있는 여성임에는 틀림없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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