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세계와 한국의 성생활을 보여주는 업데이트된 <킨제이 보고서> 두 권
1948년 발표된 <킨제이 보고서>는 ‘쇼크’였다. “남자 셋 가운데 하나는 동성애 경험을 고백하고, 유부남 30~45%가 아내 몰래 바람을 피우고….” 선악과를 맛본 뒤 벌거벗음을 부끄러워한 아담과 이브처럼, 적나라한 통계적 사실들 앞에서 20세기 남녀는 낯을 붉혀야 했다. <킨제이 보고서>가 발표된 뒤 반세기가 흐르는 동안 현대인의 성생활은 역동적인 변화를 겪었다. 동성애·양성애가 큰 흐름으로 대두됐고 다양한 피임법들이 개발됐다. 또한 임신중절수술이 법적으로 허용된 나라가 생겼고, 성적 주도권에서 여성의 약진이 돋보였으나, 에이즈도 창궐했다. 성생활의 변화와 더불어 ‘격동의 현장’들을 포착해 <킨제이 보고서>를 업데이트하려는 열망도 계속돼왔다.
‘사랑 없는 섹스’에 대하여
프랑스의 사회학자 자닌 모쉬-라보의 <현대인의 성생활>과 우리나라의 20대 남성인 이성환씨가 쓴 <옐로우 파일> 역시 이런 노력의 연장선에 있다.
<현대인의 성생활>은 프랑스 노동부의 지원을 받아 1999~2001년까지 프랑스에 거주하는 남녀 140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물이다. 여러 직업·인종·계층의 사람들이기에 성이력서 또한 다채롭기 그지없다. 3년 동안 거의 날마다 서너명의 여자랑 관계를 맺었다는 요트 강사(1천명을 확실히 넘겼다)도 있고, 1984년 이후 한번도 섹스를 안 해본 노숙자 출신도 등장한다. 15살 연하랑 연애하는 60살 여교사, 남편을 두고 젊은 마약중독 아가씨와 사랑에 빠진 38살 여기자, 오르가슴을 느끼면 기절하는 25살 여자, 제자와 동거하는 59살 게이 대학교수도 있다. 물론 남편과 만족스러운 성생활을 유지하면서 살고 있는 평범한 간호사도 있다. 지은이는 이처럼 다양한 사람들을 3시간 남짓 인터뷰해 최초로 성에 눈뜬 경험부터 시작해 자위, 풋사랑, 이성·동성 파트너와의 만남과 이별, 오럴·항문 섹스 등 섹스의 여러 방식들, 에이즈·성병·임신에 대한 이야기 등 내밀한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전한다. 섹스를 둘러싸고 남녀 의식 차이에 대한 고전적 주제가 ‘사랑 없는 섹스’ 논쟁일 것이다. 92년 프랑스에서 벌인 설문조사에서 남성들은 63.8%가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섹스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반면 여성은 35.9%에 그쳤다. 하지만 지은이는 인터뷰에 응한 여성들의 의식이 급변하고 있다고 결론내린다. “이제 여자들도 더 이상 쾌락을 위해 ‘위대한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자는 여자를 즐겁게 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을 즐겁게 해주었다고 해서 그 남자들을 다 사랑할 수는 없다.” 이는 여성들이 섹스에서 점차 주도권을 쥐는 것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한 주부는 꼭 여성 상위 체위를 고집하는데, 이는 자신이 남편을 지배한다는 느낌을 가짐으로써 낮에 남편에게 억눌린 스트레스에 대해 ‘복수’하려는 무의식에서다. 물론 이런 추세가 모두 바람직스러운 것은 아니다. 여성이 남성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사랑하는 사람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바람직스러운 일이지만, 섹스가 점점 사랑과 상관없이 건조한 ‘행위’로 변해가는 데 대해서는 불안감을 드러낸다. “강아지를 살 돈이 없어 아이를 낳는 사람들도 있는 시대가 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성전환이 변태라고?
지은이가 140명이 들려준 성의 오디세이를 통해 내린 결론은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구분이 없다”는 것이다. 세 아이의 아빠로 10년 넘게 결혼생활을 하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닫고 수술을 받아 ‘여자’가 된 한 성전환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성전환 욕구에 대해 ‘변태’라는 이들에 대해 일침을 놓는다. “변태라는 말은 상대를 자신이 추구하는 만족을 위해 존재하는 단순한 도구로 여기는 성적 일탈행위다.” 지은이는 성전환자의 변화를 ‘변신’이라고 표현한다.
지은이는 동성애·양성애자들뿐 아니라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종교 인구가 많은 이슬람 여성들에 대한 관심도 촉구한다. 이들은 종교적 금기에 얽매여 이중·삼중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이슬람 여성들의 경우 항문성교를 경험한 횟수가 많은데, 이는 이들이 섹스에 적극적이어서가 아니라 혼전엔 처녀막을 보호해야 한다는 순결주의 때문에 남자들이 대신 항문을 택하기 때문이다. 남편이 막무가내로 요구해도 거부할 수 없고, 심각한 수준의 가정폭력에 노출돼 있다. 소득수준이 낮고 교육기회가 낮아 피임도 소홀히 하는 이 여성들에 대해 더 이상 침묵하지 말자고 주장한다.
<현대인의 성생활>보다 앞서 출간된 <옐로우 파일>은 우리나라 20대의 섹스 풍속도를 알려주는 책이다. 지은이는 2000년 8월부터 5개월 동안 20대 미혼남녀 1128명(남 587명, 여 541명)에게 설문지를 보내 성경험과 성의식에 대한 답을 얻었다. 남성의 83%, 여성의 53%가 성경험이 있을 만큼 ‘개방화’는 많이 진전됐지만, 피임은 20대 섹스의 가장 허술한 대목 가운데 하나다. 기혼여성은 남성보다 피임에 더 신경쓰는 반면, 미혼여성은 남성에게 피임을 맡겨버리는 경향이 짙다. 남성이 피임하는 경우는 59%인 데 반해 여성은 33%밖에 되지 않는다. 상대방이 피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서로 미루기도 한다. 남성은 18%가 자신이 준비하고, 29%는 상대방이 준비한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여성의 10%가 자신이 준비하고, 23%는 남성이 준비한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낙태가 불법이고 인공유산이 해마다 200만건인 우리나라 현실을 감안할 때 원치 않는 임신의 피해는 당사자인 여성에게 돌아오게 마련이다.
피임에 미숙한 한국의 20대
그럼에도 지은이는 설문조사를 정리하면서 “여성들의 성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다”고 소감을 전한다. 1차설문에 응한 응답자 가운데 60개 항목이 넘는 고난이도의 재설문에 응한 여성 응답자의 비율이 남성보다 높았고, “남성은 단답식 답이 많은 반면, 여성들은 서술형이 많아 통계로 정리하기 어려울 정도였다”는 것이다.
“사랑을 만들 수 있을 때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말은 뜨겁고, 우연하고, 가벼운 오늘날 성풍속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이것이 섹스의 무게감을 더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일로 미룰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즐거움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성은 모든 인생이 걸린 문제”라는 것을 동서양 남녀 모두 알아버린 것이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일러스트레이션/ 방기황

21세기판 킨제이 보고서, <현대인의 성생활> 자닌 모쉬-라보 지음, 정장진 옮김, 이마고 펴냄
<현대인의 성생활>은 프랑스 노동부의 지원을 받아 1999~2001년까지 프랑스에 거주하는 남녀 140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물이다. 여러 직업·인종·계층의 사람들이기에 성이력서 또한 다채롭기 그지없다. 3년 동안 거의 날마다 서너명의 여자랑 관계를 맺었다는 요트 강사(1천명을 확실히 넘겼다)도 있고, 1984년 이후 한번도 섹스를 안 해본 노숙자 출신도 등장한다. 15살 연하랑 연애하는 60살 여교사, 남편을 두고 젊은 마약중독 아가씨와 사랑에 빠진 38살 여기자, 오르가슴을 느끼면 기절하는 25살 여자, 제자와 동거하는 59살 게이 대학교수도 있다. 물론 남편과 만족스러운 성생활을 유지하면서 살고 있는 평범한 간호사도 있다. 지은이는 이처럼 다양한 사람들을 3시간 남짓 인터뷰해 최초로 성에 눈뜬 경험부터 시작해 자위, 풋사랑, 이성·동성 파트너와의 만남과 이별, 오럴·항문 섹스 등 섹스의 여러 방식들, 에이즈·성병·임신에 대한 이야기 등 내밀한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전한다. 섹스를 둘러싸고 남녀 의식 차이에 대한 고전적 주제가 ‘사랑 없는 섹스’ 논쟁일 것이다. 92년 프랑스에서 벌인 설문조사에서 남성들은 63.8%가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섹스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반면 여성은 35.9%에 그쳤다. 하지만 지은이는 인터뷰에 응한 여성들의 의식이 급변하고 있다고 결론내린다. “이제 여자들도 더 이상 쾌락을 위해 ‘위대한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자는 여자를 즐겁게 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을 즐겁게 해주었다고 해서 그 남자들을 다 사랑할 수는 없다.” 이는 여성들이 섹스에서 점차 주도권을 쥐는 것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한 주부는 꼭 여성 상위 체위를 고집하는데, 이는 자신이 남편을 지배한다는 느낌을 가짐으로써 낮에 남편에게 억눌린 스트레스에 대해 ‘복수’하려는 무의식에서다. 물론 이런 추세가 모두 바람직스러운 것은 아니다. 여성이 남성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사랑하는 사람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바람직스러운 일이지만, 섹스가 점점 사랑과 상관없이 건조한 ‘행위’로 변해가는 데 대해서는 불안감을 드러낸다. “강아지를 살 돈이 없어 아이를 낳는 사람들도 있는 시대가 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성전환이 변태라고?

한국판 킨제이 보고서, <옐로우 파일> 이성환 지음, 책읽는사람들 펴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