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낙서 통해 창작욕구 불태우는 그래피티 그룹 바프… 연대와 나눔의 문화운동을 위해
요절한 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바스키아>에서 바스키아는 길거리에서 살아가는 이른바 노숙자다. 그는 때때로 스프레이로 거리의 벽에 이상한 낙서를 하고 ‘세이모’라는 그의 별명을 남긴다. 그의 낙서는 우연히 미술평론가들의 눈에 띄어 ‘작품’으로 인정받고 그는 부랑자에서 탐욕스런 뉴욕 화상들의 총애를 받는 ‘작가’로 등극한다. 선과 색채, 구성 등 기존의 예술적 요소들이 무시되는 거리의 낙서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방하고 전복적인 기운이 고갈된 미술계의 상상력에 새로운 땔감이 된 것이다. 물론 낙서하는 모든 사람이 바스키아처럼 작가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 거리의 낙서는 세계 미술의 심장부에서 어엿한 예술로 인정받고 있다.
‘치고 빠지는’ 일에 이골나기 까지
건물이나 지하철 벽 등 ‘허락되지 않은 캔버스’에 휘갈겨진 그림이나 문자를 가리키는 그래피티(graffiti)는 불과 한두해 전만 해도 영화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이국적 풍경이었다. 60년대 미국 흑인들의 뒷골목에서 만들어진 힙합문화의 하나인 그래피티가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등 대도시의 벽을 온통 스프레이로 뒤덮는 동안 우리에게 유일한 그래피티는 ‘소변금지’와 가위그림뿐이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한국의 벽들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서울 압구정동 골목이나 주차장, 카페와 한강 둔치 곳곳에는 어느새 색색깔의 스프레이로 그려진 그래피티 작품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요즘 젊은이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음악인 힙합공연이 있는 장소에는 언제나 그래피티가 무대와 벽을 장식한다.
도심 한가운데 활기넘치는 벽화가 탄생하게 된 데는 바프(V.A.F.: Vandal’s Art Factory)라는 집단의 업적 혹은 ‘범죄’를 빼놓을 수 없다. 반달, 코마, 제이, 지누, 메녹, 배모 등의 태그(그래피티에 남기는 작가의 서명)로 활동하는 여섯명의 젊은이가 지난해 여름 결성한 바프는 국내 최초의 그래피티 아티스트 모임이다. “외국인들이 많은 이태원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길거리 낙서에는 익숙한 편이었지요. 3년 전 친구한테 그래피티라는 말을 듣고 인터넷에 들어가보니 충격 그 자체였어요. 그날로 당장 스프레이를 몇개 사가지고 와서 그리기 시작했는데 스프레이를 뿌리는 행위도 짜릿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리고 도망치는 일의 반복이었지요.”(반달) 바프의 멤버들은 ‘치고 빠지는’ 일에 이골이 난 사람들이다. 혼자서 그래피티를 시작할 무렵 변변히 그릴 벽이 없으니 누가 없을 때 슬쩍 동네 벽에 그려놓고 도망가다가 붙잡혀 경찰서에도 자주 들락날락거렸다. 나중에는 야단치는 경찰 옆에서 장난스레 사진을 찍을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최근에는 공연장이나 문화행사 등 자연스럽게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났지만 요즘도 가끔씩 끊어오르는 창작욕구를 주체하지 못해 벌금을 내는 결과가 종종 발생한다. “힙합음악은 이제 보편화됐지만 그래피티를 예술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관공서에서 허락을 받고 그림을 그리기란 거의 불가능하죠. 불량청소년들의 범법 행위라고 생각하는데 허락하겠어요? 물론 치고 빠지는 재미도 있지요. 태그를 보면 ‘아무개가 왔다갔구나’ 우리끼리 통하는 커뮤니케이션도 되고.”(제이) 그러나 바프는 소수이기는 하지만 그래피티계에서는 벌써 명사이자 스타군단으로 자리잡았다. 지난해와 올해 넘쳐난 청소년 페스티벌과 힙합공연장의 무대가 대부분 이들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가깝게는 서태지의 컴백공연 무대도 이들의 작품이었다. 이들의 작품은 매우 다양하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부호나 문양이 반복되는가 하면 캐릭터가 등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회화적인 양식이 시도되다가 그래픽적인 특징이 강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스타일만 보고서도 경찰들이 작업자를 발견한다는 외국의 경우에 비한다면 아직 자신만의 주제나 스타일을 구축하지 못했다는 것이기도 하다. “30년이 넘는 외국에 비한다면 국내의 그래피티 단계는 걸음마 수준이죠. 멤버들도 자기 스타일보다는 아직 다양한 실험을 하는 단계이고요. 스타일과 주제의식은 좀더 장기적으로 풀어가야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코마) “통일되면 할 일 늘 것”
(사진/작업실에 모인 V.A.F멤버들.앉아있는 이부터 시계방향으로 반달,싼타,강태우,코마,재이(맨위). 아래는 V.A.F의 그래피티 작업모습)억압받는 흑인들의 저항의 몸짓이라는 힙합문화의 태생으로 인해 국내 힙합문화를 비판할 때 자주 나오는 정치성의 부재도 심심치 않게 이들의 뒷덜미를 잡는다. 그러나 바프의 살림꾼인 강태우 실장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직전 벽에 그려졌던 한 작품을 예를 들면서 이런 비판에 반격한다. “벽에 마치 구멍이 뚫린 듯 작은 한면에 구멍 넘어로 보이는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 작품은 어떤 구호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는 염원과 주장을 담고 있었습니다. 직설적인 주장이나 표현보다 스타일 자체로 우리의 주장과 욕구를 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들은 그래피티가 신념의 플래카드가 되기보다는 연대와 나눔의 문화운동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피티는 혼자만의 작품이 될 수 없습니다. 일단 방대한 스케일 때문에 여럿이 작업하기 좋구요, 하나의 그래피티 위에 새로운 그림이 추가되기도 하고 덧입혀지기도 하면서 하나의 벽화가 되가는 거지요. 여러 사람이 함께 즐기며 작업하면서 지나가는 사람은 시각적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훌륭한 공공미술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 그룹의 최고참인 반달씨에게는 꿈이 있다. 그 꿈은 다른 멤버들의 것이기도 하다. 통일이 되면 휴전선을 비롯한 필요없는 벽들에 그래피티를 해보는 것이다.
“통일이 되면 무너뜨려야 할 벽이 얼마나 많겠어요. 굳이 돈들여 무너뜨리지 말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놓는다면 거리의 표정도 바뀌고 사람들의 표정도 환하게 바뀔 수 있지 않을까요?”
김은형 기자dmsgud@hani.co.kr


(사진/그래피티가 탄생한 뉴욕의 거리풍경)
도심 한가운데 활기넘치는 벽화가 탄생하게 된 데는 바프(V.A.F.: Vandal’s Art Factory)라는 집단의 업적 혹은 ‘범죄’를 빼놓을 수 없다. 반달, 코마, 제이, 지누, 메녹, 배모 등의 태그(그래피티에 남기는 작가의 서명)로 활동하는 여섯명의 젊은이가 지난해 여름 결성한 바프는 국내 최초의 그래피티 아티스트 모임이다. “외국인들이 많은 이태원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길거리 낙서에는 익숙한 편이었지요. 3년 전 친구한테 그래피티라는 말을 듣고 인터넷에 들어가보니 충격 그 자체였어요. 그날로 당장 스프레이를 몇개 사가지고 와서 그리기 시작했는데 스프레이를 뿌리는 행위도 짜릿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리고 도망치는 일의 반복이었지요.”(반달) 바프의 멤버들은 ‘치고 빠지는’ 일에 이골이 난 사람들이다. 혼자서 그래피티를 시작할 무렵 변변히 그릴 벽이 없으니 누가 없을 때 슬쩍 동네 벽에 그려놓고 도망가다가 붙잡혀 경찰서에도 자주 들락날락거렸다. 나중에는 야단치는 경찰 옆에서 장난스레 사진을 찍을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최근에는 공연장이나 문화행사 등 자연스럽게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났지만 요즘도 가끔씩 끊어오르는 창작욕구를 주체하지 못해 벌금을 내는 결과가 종종 발생한다. “힙합음악은 이제 보편화됐지만 그래피티를 예술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관공서에서 허락을 받고 그림을 그리기란 거의 불가능하죠. 불량청소년들의 범법 행위라고 생각하는데 허락하겠어요? 물론 치고 빠지는 재미도 있지요. 태그를 보면 ‘아무개가 왔다갔구나’ 우리끼리 통하는 커뮤니케이션도 되고.”(제이) 그러나 바프는 소수이기는 하지만 그래피티계에서는 벌써 명사이자 스타군단으로 자리잡았다. 지난해와 올해 넘쳐난 청소년 페스티벌과 힙합공연장의 무대가 대부분 이들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가깝게는 서태지의 컴백공연 무대도 이들의 작품이었다. 이들의 작품은 매우 다양하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부호나 문양이 반복되는가 하면 캐릭터가 등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회화적인 양식이 시도되다가 그래픽적인 특징이 강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스타일만 보고서도 경찰들이 작업자를 발견한다는 외국의 경우에 비한다면 아직 자신만의 주제나 스타일을 구축하지 못했다는 것이기도 하다. “30년이 넘는 외국에 비한다면 국내의 그래피티 단계는 걸음마 수준이죠. 멤버들도 자기 스타일보다는 아직 다양한 실험을 하는 단계이고요. 스타일과 주제의식은 좀더 장기적으로 풀어가야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코마) “통일되면 할 일 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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