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떡이는 민물고기를 잡으며 하루를 보내던 어린시절… ‘두지리 매운탕집’에서 추억을 찾다
잉어·붕어·버들붕어·살치·송사리·왜몰개·불거지·넙치·모래무지·미꾸라지·빠가사리·쏘가리·메기·가물치·뱀장어·보리새우·논새우·우렁·다슬기…. 어린 시절 신갈천에서 정답게 만나던 나의 친구들이다. 이제 우리는 가물가물해지는 옛 추억과 함께 이 친구들을 모두 잃어버렸다. 아름다운 신갈 저수지 벌판. 그곳에서 숨쉬며 헤엄치던 물고기들, 들꽃과 풀들, 벌레들. 그리고 저수지 저 멀리 땅과 맞닿아 있는 파아란 하늘을 모두 잃었다. 지금 우리가 신갈천에서 볼 수 있는 물고기는 없다. 물고기들이 모두 도망갔다. 아니 우리가 쫓아낸 것이다.
긴긴 해 마땅한 놀이가 없을 때 우리들은 신갈천으로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 헤엄도 치고, 개울로 흘러드는 도랑 물길을 막아 보싸움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싫증이 날 때쯤에는 물고기를 잡는다. 보통 고기를 잡는 데는 반두라는 그물이 주로 쓰인다. 대나무나 막대기로 양 끝을 고정시키고 그물 아래 납덩이 추들을 가지런히 달아놓는다. 그물을 훑을 때 추가 땅에 닿아 고기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물이 둥둥 뜨기 일쑤여서 개울 바닥에 엎드려 있는 붕어, 특히 메기나 가물치는 잡기가 수월치 않다. 간혹 운이 좋아 가물치가 잡히는데, 이놈은 성미가 유별나 그물에 들어올 때 벌써 티가 난다. 건져올리면 어찌나 펄떡거리는지 개울가로 던져놓고 몇대 쥐어박아야 잠잠해진다.
메기를 잡을 때는 주로 개울을 막아 물을 완전히 퍼낸다. 바닥이 드러나면 놈들은 진흙뻘에 숨으려 애쓰는데, 이때 손으로 뻘을 휘저으며 잡는다.미끈미끈해서 두 손으로 잡아야 한다. 어지간히 커서 육고기가 귀하던 시절, 녀석은 훌륭한 단백질원이었다. 메기뿐인가. 논배미마다 뱀장어들이 나와 놀다가 사람들의 기척이 있으면 대가리를 논바닥으로 박고 재빠르게 모습을 감춘다. 붕어는 개울이나 논에 흔히 사는 놈들인데, 몸매가 유달리 아름답다. 손바닥만한 붕어가 걸려들 때 그 맛이란 지금 생각해도 짜릿하다. 고기를 잡을 때 좋아하면서도 겁나는 놈이 빠가사리나 쏘가리다. 이놈들은 지느러미 가시가 제법 날카로워 한번 쏘이면 얼얼한 것이 한참 간다. 놈을 만질 때는 꽤나 조심스럽다. 간혹 더듬질을 하다가 녀석에 쏘일 수 있는데, 그것이야 그날의 운수 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반두질을 계속 하다 보면 피라미·송사리·불거지·모래무지·미꾸라지뿐 아니라 우렁까지 걸려든다. 고기가 두어 대접 잡히면 나무 등걸을 모아 불을 지펴 천렵국을 끓인다. 엄마 몰래 집에서 퍼온 고추장·된장, 남의 밭에서 몰래 따온 애호박·풋고추·대파가 양념의 모두지만 새파래진 입술로 후후 불어가며 떠먹는 ‘자연의 맛’은 정말로 꿀맛이었다. 천렵은 고대 수렵사회와 어렵사회의 습속이 오늘까지 남아 풍습화된 것이다. 환경오염으로 삼천리 강산이 몸살을 앓는 요즈음, 경치 좋고 물 맑은 냇가에서 자연과 더불어 자연의 맛을 즐기는 ‘채집경제적 천렵국’은 가당치도 않고, 양식 물고기와 인공 조미료 잔뜩 넣어 끓이는 ‘자본주의적 매운탕’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연초 친구들과 함께 감악산에 등산을 갔다가 임진강가 ‘두지리 매운탕집’(031-959-4508)에 들렀는데, 이 집 매운탕을 맛보는 순간 40여년 전 신갈천 자갈밭에서 끓여먹던 자연의 맛이 느껴졌다. 짜지도 맵지도 비리지도 않으면서 시원하고 달콤한 국물맛에, 입 짧은 서울내기인 탓에 민물매운탕은 생전 한번도 먹지 않았다는 친구 박학선씨 안사람 정희재씨도 거뜬히 밥 한 공기를 비웠다. 주인 이윤상(60)씨는 이곳 토박이로 20여년 전부터 물고기를 직접 잡아 ‘자기식대로’ 매운탕을 끓여왔는데, 그것이 ‘자연의 맛’에 가까운 것 같다. 메기매운탕 1인분에 1만원, 빠가사리 매운탕 1만5천원, 참게 1마리에 5천원이다. 따로따로 시키는 것보다는 순열조합을 잘하면 맛도 좋고 돈도 절약된다. 4명에 3인분이 적당하다.
김학민 ㅣ 학민사 대표·음식칼럼니스트 hakmin8@hanmail.net

사진/ 두지리 매운탕집 주인 이윤상씨는 이곳 토박이로 20여년 전부터 물고기를 직접 잡아 ‘자기식대로’ 매운탕을 끓여왔다.

김학민 ㅣ 학민사 대표·음식칼럼니스트 hakmin8@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