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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책/ 석유산업의 ‘7공주’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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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0-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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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산유국과 석유자본의 투쟁의 역사… 에너지 생산자의 실체를 바로 보자

산업화 시대에 들어선 이후 “역사는 잉크 대신 석유로 쓰인다”고 할 정도로 석유는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상품으로 변함없는 지위를 누리고 있다. 경기변동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가장 중요한 경제 변수이자 세계가 의존하는 에너지원으로서 석유는 엄청난 부를 창출한다.

오일쇼크는 왜 일어났을까

그러나 이 석유 시장은 이른바 메이저자본인 ‘7공주’(The Seven Sisters)와 석유를 생산하는 나라들의 협의체인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다. 물론 일부 상품 시장을 한두개의 거대기업이 지배하는 경우는 많다. 그리고 이런 경우는 전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드비어스사처럼 식민지시대 강대국들의 착취에서 다져진 사례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석유시장은 서구 열강의 메이저들과 함께 원료생산국인 산유국이 패권과 스스로의 지분을 챙기며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이다. 이들 메이저와 산유국들은 전세계 석유시장을 쥐락펴락하며 전세계 경제를 움직인다. 결국 석유시장을 지배하는 법칙이 세계 경제를 지배하는 법칙인 셈이다.


그렇지만 그 과정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사치품인 다이아몬드와는 다른 생필품인 석유시장이, 세계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산업이 단 7개의 회사들에 의해 장악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산유국들은 왜, 어떻게 이들 ‘7공주’의 지배에 저항해 동등한 힘을 가지는 혁명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들은 어떻게 협조·경쟁하면서 막대한 자본을 구축하고 어떻게 유가를 조절하고 있는 걸까? 분명히 석유의 공급량은 어떤 통제계획에 의해 유지되는 것 같지만 이런 경향이 중앙통제적인 형태로 실제 이뤄진다는 증거는 찾기 어렵다.

영국 <옵서버>의 워싱턴 특파원이었던 앤터니 샘슨이 지은 <석유를 지배하는 자들은 누구인가>(김희정 옮김, 책갈피(02-333-0918) 펴냄, 1만원)는 세계 석유산업을 지배하는 이들 메이저와 OPEC의 체제 구축과정과 유지구조, 이면을 설명하는 책이다. 미국계 회사인 엑손, 걸프, 텍사코, 모빌, 소칼과 함께 영국·이란계인 로얄 더치 쉘, 그리고 영국계인 BP(브리티시 페트롤륨) 등 7대 메이저가 벌였던 1951년 이란 소사데크 정권타도 공작, 이들에 맞서 1973년 이란 팔레비 국왕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야마니 석유장관이 석유가격을 무려 4배나 올려 일어난 오일쇼크 등의 이면을 지은이는 기자답게 꼼꼼하게 파헤친다. 다소 딱딱할 것 같은 주제지만 현재 세계경제를 지배하는 이들의 실체와 석유를 둘러싼 쟁투의 과정이 알기 쉽게 쓰여 읽는 재미는 충분하다. 가령 페르시아만의 기존 산유국들이 아닌 북아프리카의 리비아가 기존 체제와는 다른 방식으로 시장에 등장하자 메이저들이 고립화 전략을 펼쳤고, 리비아는 여기에 맞서 다른 산유국과 연계해 맞서면서 산유국과 메이저의 힘의 균형이 깨지는 과정 등은 지금의 국제 정세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석유를 통해 알려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에너지 절약’만 외쳐서는…

(사진/석유수출국기구회의)
2000년대 들어 세계 최대 기업순위는 컴퓨터와 정보통신 업체들로 채워지고 있지만 아직도 이 석유자본의 힘은 막강하기만 하고, 세계 절대다수의 나라들은 이들에 종속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에너지절약만을 외치며 에너지 생산자들에 대한 연구와 이해는 부족한 우리에게 이 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책은 OPEC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70년대 중반까지를 다루고 있지만, 여전히 그 이후의 진행상황은 큰 그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추가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석유에 대한 생각을 제대로 해보자는 제안을 한다는 점, 그 치유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필요성을 <석유를…>은 제공해준다. 석유자본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우리 사회에 처음으로 석유자본의 실체를 소개하는 책이란 점도 이 책의 매력이다.

구본준 기자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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