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오 마사유키 감독 두 번째 개봉작 <으랏차차 스모부>… <쉘 위 댄스>의 소박한 감동 이어진다
위성방송을 통해 간간이 중계되는 일본의 스모경기를 보노라면 근육질이라기엔 지나치게 비대한 거구들이 엉덩이를 드러낸 채 서로 밀고 당기는 모습이 그다지 매력적이지는 않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스모문화를 모르는 우리만의 것은 아닌 것 같다. 프랑스의 예술가 장 콕토는 스모선수들을 “예배당 벽화에서 튀어나온 분홍빛 거인 같다”고 칭찬하고 스모를 “균형의 기적”이라고 표현했지만 90년대 일본의 젊은이들 역시 둔중한 스모보다는 날렵한 스킨스쿠버나 미식축구에 줄을 서는 모양이다.
사랑받지 못하는 소재, 착한 이웃들
<쉘 위 댄스>를 만든 수오 마사유키 감독의 두 번째 국내개봉작 <으랏차차 스모부>는 대가 끊긴 한 대학의 스모부가 대학리그전에서 승리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코미디영화다. 졸업반인 슈헤이는 집안의 ‘백’으로 일찌감치 그럴듯한 직장을 잡고 남은 한 학기를 즐기면서 보낼 생각이다. 그러나 지도교수 아나야마에게 출석 미달이 들통나면서 유급의 위기를 맞는데 교수는 교내 스모부에 들어가 대학리그전에 출전하면 졸업을 시켜주겠다는 협상을 제안한다. 이 학교는 아나야마가 재학 시절 학생스모왕이 될 정도로 스모 명문이었지만 지금은 아오키만이 4년 동안 졸업도 미룬 채 스모부를 지키고 있는 처지다. 할 수 없이 스모부에 들어간 슈헤이는 리그전 참가가 가능한 최소인원인 4명을 채우기 위해 아오키와 고군분투하고 가까스로 결성된 스모팀은 첫 시합에서 처참한 패배를 하고 만다. 선배들에게 모욕을 당하자 슈헤이는 교수와 약속도 잊고 다음번에는 꼭 이기겠노라고 호언장담한 뒤 고된(?) 훈련에 들어가 리그전에서 아슬아슬한 승리의 줄타기를 한다.
<쉘 위 댄스>(1996)의 전작으로 92년 제작된 <으랏차차 스모부>는 여러모로 <쉘 위 댄스>와 비슷한 꼴의 영화다. 일단 사교춤과 스모라는 대중에게 그다지 사랑받지 못하는 소재를 끄집어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사소한 취미나 소일거리로 보이는 것이 한 인간의 전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극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쉘 위 댄스>에서 일상에 찌든 40대의 가장 야쿠쇼 고지가 춤을 통해 생의 활력을 찾는 과정이나 뺀질이 대학생 슈헤이가 졸업까지 미루며 스모부를 지키기 위해 남는다는 결론은 작위적인 면도 없지 않지만 관객의 소소한 감동에 흠집을 낼 정도는 아니다. 마지막으로 착한 이웃들이다. <쉘 위 댄스>에서도 같은 이름과 비슷한 캐릭터로 등장했던 아오키와 다나카, 그리고 <쉘 위 댄스>에서는 탐정으로 등장했던 아나야마는 관객에게 몰입과 이완의 즐거움을 적절히 안배한다. 만화적인, 천진난만한 웃음 특히 <쉘 위 댄스>에서 가발을 쓰고 갖가지 느끼한 표정으로 라틴댄스를 추다가 <…스모부>에서 실력은 없지만 열정 하나로 버티는 스모선수로 등장한 아오키 역의 다케나카 나오토는 두 영화에서 보석 같은 존재다. 일반적인 기준에서는 패배자에 가깝지만 천진난만한 열정을 생의 버팀목으로 삼는 아오키는 우리에게 웃음뿐 아니라 가치없어 보이는 삶의 가치에 대해 환기시켜준다. 이 영화가 <쉘 위 댄스>와 다른 점은 웃음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스모라는 운동의 미학과 에너지를 전혀 몰라도 모래판에서 미끄러지고 자빠지는 것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그저 즐거운 영화다. 물론 한번도 이기지 못한 아오키가 결승전에서 설사 때문에 벌떡 일어나다가 상대편을 머리로 받아 쓰러뜨린다든가, “우린 해낼 수 있어” 따위의 닭살대사들, 그리고 오합지졸팀이 갑자기 승승장구하게 된다는 구성 등이 지나치게 만화적이라 세련된 웃음에 숙달된 관객이라면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을 찔러죽이면서 낄낄거리거나 속사포 같은 수다로 상대방에게 발작을 일으키게 하는 ‘모던한’ 코미디 영화보다는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만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김은형 기자dmsgud@hani.co.kr

<쉘 위 댄스>(1996)의 전작으로 92년 제작된 <으랏차차 스모부>는 여러모로 <쉘 위 댄스>와 비슷한 꼴의 영화다. 일단 사교춤과 스모라는 대중에게 그다지 사랑받지 못하는 소재를 끄집어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사소한 취미나 소일거리로 보이는 것이 한 인간의 전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극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쉘 위 댄스>에서 일상에 찌든 40대의 가장 야쿠쇼 고지가 춤을 통해 생의 활력을 찾는 과정이나 뺀질이 대학생 슈헤이가 졸업까지 미루며 스모부를 지키기 위해 남는다는 결론은 작위적인 면도 없지 않지만 관객의 소소한 감동에 흠집을 낼 정도는 아니다. 마지막으로 착한 이웃들이다. <쉘 위 댄스>에서도 같은 이름과 비슷한 캐릭터로 등장했던 아오키와 다나카, 그리고 <쉘 위 댄스>에서는 탐정으로 등장했던 아나야마는 관객에게 몰입과 이완의 즐거움을 적절히 안배한다. 만화적인, 천진난만한 웃음 특히 <쉘 위 댄스>에서 가발을 쓰고 갖가지 느끼한 표정으로 라틴댄스를 추다가 <…스모부>에서 실력은 없지만 열정 하나로 버티는 스모선수로 등장한 아오키 역의 다케나카 나오토는 두 영화에서 보석 같은 존재다. 일반적인 기준에서는 패배자에 가깝지만 천진난만한 열정을 생의 버팀목으로 삼는 아오키는 우리에게 웃음뿐 아니라 가치없어 보이는 삶의 가치에 대해 환기시켜준다. 이 영화가 <쉘 위 댄스>와 다른 점은 웃음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스모라는 운동의 미학과 에너지를 전혀 몰라도 모래판에서 미끄러지고 자빠지는 것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그저 즐거운 영화다. 물론 한번도 이기지 못한 아오키가 결승전에서 설사 때문에 벌떡 일어나다가 상대편을 머리로 받아 쓰러뜨린다든가, “우린 해낼 수 있어” 따위의 닭살대사들, 그리고 오합지졸팀이 갑자기 승승장구하게 된다는 구성 등이 지나치게 만화적이라 세련된 웃음에 숙달된 관객이라면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을 찔러죽이면서 낄낄거리거나 속사포 같은 수다로 상대방에게 발작을 일으키게 하는 ‘모던한’ 코미디 영화보다는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만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김은형 기자dmsgud@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