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보잘것없던 <시와 경제> 동인들의 안주… ‘장터곱창’에서 그 맛을 떠올리다
오늘도 영등포시장엔 휘황한 불빛과
바닥에 널려진 질척함 그리고
악다구니만 요란해
핏줄 솟구친 사내들이 씨근덕거렸고
국수를 마는 아낙네들 더 거친 숨결
네온사인 아우성 너무 요란한 속에서도
숨가쁘게
아무도 그 날을 잊지 못했다.
(김정환의 시 <영등포>에서)
1980년 5월의 그날을 잊지 못한 젊은 시인 채광석·정규화·홍일선·황지우·김정환·김사인들은 82년 초 <시와 경제> 동인을 결성했다. 광주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피로 제압하고 등장한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이 전 국민을 압제와 공포로 몰아넣던 그 즈음, 이들이 음풍농월의 시 놀음을 집어치우고, 민중의 구체적 삶에 다가가자는 취지에서 동인 이름에 ‘경제’를 넣은 것은 당연히 문단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이들의 문학적 지향과는 달리 동인 각자의 ‘경제’는 참으로 보잘것없었다. 대부분 감옥에서 갓 나와 변변한 직업을 못 가진 백수인 것은 물론, 사는 곳도 대개는 중심부에서 밀려 경기 광명 철산리, 서울 구로 가리봉동, 경기 부천 역곡 부근의 셋집을 전전하는 주변부 인생들이었다. 이 가운데 영등포 시장에서 곱창을 팔던 홍일선 시인의 ‘경제’가 그런 대로 좀 나았으니, 곧 그는 <시와 경제>의 ‘경제’부문을 맡을 수밖에 없었다.
영등포시장 중앙통을 따라 200여m 내려가면 홍 시인의 곱창 전문 백두산 정육점이 나오고, 정육점 뒤에는 나지막한 두칸짜리 그의 살림집이 있었다. 오후 7시, 시장의 악다구니도 조용해지고 시장 사람들이 손을 털며 뒷정리를 할 즈음, ‘경제’가 보잘것없는 <시와 경제> 동인들이 하나둘 나타나고, 잠시 뒤 홍 시인의 살림집에서는 푸짐한 곱창구이와 넉넉한 소주 인심으로 그해 오월 이후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을 잊게 했다.
홍 시인의 집에서 벌어지는 곱창 모임에는 <시와 경제> 동인들 외에도 시인 이시영·김용택·이산하, 소설가 현기영·송영 선생도 가끔 참석했고, <시와 경제> 3집에 시 ‘시다의 꿈’을 발표한 얼굴 없는 시인 박노해도 채광석의 손에 끌려 몇번 왔다. 나도 민족문학·민중문화에의 열정을 토로하는 이 자리에 자주 참석하는 멤버였지만, 식탐·술탐이 많은 탓에 염불보다는 잿밥이라고, 어떻게 생긴 곱창이 맛있고, 또 어떻게 곱창을 구워야 맛있는지 궁리하며 연신 소주잔을 기울이는 데만 바빴다. 그 탓에 결국 박노해처럼 시인은 못 되었지만, 요즈음 <한겨레21> 덕에 이렇게 음식칼럼이라도 긁적이고 있으니 절반은 성공이라고나 할까.
얼마 전 세표 하남거사 문학진 선생을 만나러 경기 하남에 들렀다가 문공의 손에 이끌려 어느 곱창집에 갔는데, 곱창 맛이 20여년 전 홍 시인 집에서 구워먹은 맛 그대로여서 아주 화기애애하게 소주를 여러 병 비웠다. 사실 곱창구이는 특별한 조리법이 필요 없다. 무조건 곱창이 좋아야 한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곱이 꽉 차 있고 밖으로 흘러내리지 않는 신선한 것이어야 곱창 맛이 좋다. 수입 곱창은 오랫동안 언 것을 녹여 구우므로 질기다.
문공과 함께 찾은 하남시청 앞 ‘장터곱창’(031-793-0582)은 여주인 전정숙(50)씨가 서울 가락동·마장동에서 신선한 한우 곱창만을 공급받아 손님들에게 내놓기 때문에 달콤하면서 졸깃한 곱창 맛에 하남 부근에서는 명성이 자자하다. 8년 전 식구와 자양동 어느 곱창 전문집에 갔다가 그 맛에 반해 직접 식당을 차려 지금껏 이어오고 있다(생곱창구이 1인분 1만원, 곱창전골 중 1만5천원, 대 2만원).
김학민 ㅣ 학민사 대표·음식칼럼니스트 hakmin8@hanmail.net
바닥에 널려진 질척함 그리고
악다구니만 요란해
핏줄 솟구친 사내들이 씨근덕거렸고
국수를 마는 아낙네들 더 거친 숨결
네온사인 아우성 너무 요란한 속에서도
숨가쁘게
아무도 그 날을 잊지 못했다.
(김정환의 시 <영등포>에서)

사진/ ‘장터곱창’은 여주인 전정숙씨가 가락동과 마장동에서 신선한 한우 곱창만을 공급받아 손님들에게 내놓기 때문에 달콤하면서 졸깃한 곱창 맛에 명성이 자자하다.
영등포시장 중앙통을 따라 200여m 내려가면 홍 시인의 곱창 전문 백두산 정육점이 나오고, 정육점 뒤에는 나지막한 두칸짜리 그의 살림집이 있었다. 오후 7시, 시장의 악다구니도 조용해지고 시장 사람들이 손을 털며 뒷정리를 할 즈음, ‘경제’가 보잘것없는 <시와 경제> 동인들이 하나둘 나타나고, 잠시 뒤 홍 시인의 살림집에서는 푸짐한 곱창구이와 넉넉한 소주 인심으로 그해 오월 이후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을 잊게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