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약먹고 죽제…
등록 : 2003-02-26 00:00 수정 :
“우리 동네 줄초상 날 뻔했당게.” 법성에서 양계장하는 회원이 근심스런 표정으로 입을 뗀다.
“노인들 아프면 콱 약먹고 죽는다는 말이 예사말”이 됐다며 동네 줄초상의 전말을 전한다.
같은 동네에 사는 할아버지는 전립선 암에 걸려 몇번에 걸친 수술과 치료로 병원을 들락이다가 할머니가 없는 틈을 타 집에 있던 농약 그라목손(제초제)을 먹고 자살했다. “약먹고 죽어야제”라는 말을 자주 해온지라 할머니가 농약이란 농약은 죄다 숨겨놓았는데 할아버지는 이미 농약을 빼돌려 죽음을 준비했던 터였나 보다.
논이나 밭둑가의 풀에 뿌리면 노랗게 타버리는 농약을 목에 넘겼으니 식도부터 타들어가면서 고통 속에서 생을 마감하셨을 것이다.
호상이 아닌지라 음울한 가운데 초상을 치른 동네는 이틀도 지나지 않아 또다시 동네 할머니가 신병을 비관해 살충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해 충격에 휩싸였다.
소주에 살충제를 타서 드신 할머니는 뒷집 아이들에게 “나 약먹었다”는 말을 남기고 쓰러졌고 마을회관으로 달려간 아이들의 말을 전해들은 동네사람들이 급히 병원으로 옮겨 겨우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부지런한 성정인 할머니는 평생 고된 농사일로 허리가 망가져도 쉬지 않고 꼼지락거리며 살았다. 최근 부쩍 허리가 아파 움직이기가 괴로워진 할머니는 남편에게 “밥상 좀 차려주라”고 하자 할아버지는 핀잔만 늘어놓고 나가버렸다.
갑자기 설움이 복받친 할머니는 “내가 이렇게 살아서 뭣해야” 하며 며칠 전에 자살하신 다른 할아버지처럼 농약을 찾아 먹었다. 그러나 제초제보다 약한 살충제를 먹은 덕()에 할머니는 살아나고 이제사 우유 정도만 넘길 수 있나 보다.
구들장 지고 드러눕지 않는 한 평생 농사일을 놓지 못하는 시골 노인들에게 질병은 곧 죽음으로 다가온다. 넉넉지 않은 살림, 병원비, 아픔의 고통과 외로움은 죽음으로 쉽게 다가서게 한다. 거기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는 ‘부모 마음’으로 이제 더 살아도 낙이 없는 노인들은 사는 것이 죽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리고 자살용품인 농약은 시골 농가에 지천으로 널려 있다.
마을 가까이 보건진료소라도 있으면 그때그때의 고통을 꺼나갈 수 있겠지만 혜택을 받기엔 진료소가 턱없이 부족하다.
시골 노인들의 건강권은 복지가 아닌 생존권이다.
평생 먹을거리 산업에 투신한 결과가 자살로 이어지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보건진료소를 늘리고 한방보건의를 두는 데 드는 비용 타령만 할 것이 아니다.
이태옥 ㅣ 영광 여성의전화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