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돌담길 정비사업 둘러싼 논란… 서울시는 왜 사전에 의견수렴 과정 거치지 않았나
새로운 논쟁이 생겼다. 서울 도심 한복판의 한 거리 정비 사업에 대한 논쟁이다. 내용은 단순하다. 새로 꾸민 도로 모양새가 돈 들인 만큼 아름답지 않고 예전보다 나을 게 없다는 반론이 나온 것이다. 반면 시공한 쪽에서는 많은 신경을 썼다며 어차피 모든 이가 만족하는 결과물은 없지 않느냐며 이런 불만을 무시하고 있다. 어찌보면 아주 사소한 일일 수 있다. 늘 도로를 파헤치고 새로 덮는 서울 거리에서는 노상 벌어지는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도로 길이는 불과 1.6㎞ 남짓하다.
그렇지만 논쟁을 깊숙히 들여다보면 그 무게는 가볍지 않다. 길 정비사업을 기획한 이는 요즘 우리 사회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이고, 그 건축가의 ‘작품’이 문제있다고 지적하는 쪽은 우리 미술계의 중량급 주요인사들이다. 그리고 또 문제의 길 역시 평범한 길이 아니라 조선 건축문화의 정수인 경복궁의 돌담길이다.
길의 품격을 망치고 있다
가을 하늘이 점점 높아져가던 지난 5일, 서울 사간동의 한 카페에 스무명 남짓한 인사들이 모였다. 카페 창문 밖으로는 경복궁 돌담길이 바라뵈는 곳이었다. 인적이 드물어 늘 호젓하고 고즈넉하던 사간동 경복궁 돌담길은 마침 공사중이었다. 세련되고 깔끔한 화랑들이 줄지어 있는 건너편 화랑 거리에서도 공사는 함께 진행되고 있었다. 도로 곳곳에서 인부들이 널찍한 장대석을 깔고 돌담길 아래에는 화단을 조성하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 광경이 바라보이는 카페에 모인 사람들은 바로 이 공사중인 사간동길을 바라보며 모임을 시작했다. 무임의 주제는 이 공사에 대한 성토였다. 모인 사람들은 미술계에서는 누구나 알아주는 거물급들이었다. 갤러리 국제, 학고재, 금산갤러리, 인화랑 등 국내 화랑을 대표하는 사간동 화랑주들과 함께 이화여대 박물관장인 김홍남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강태희 교수 등 학자들, 그리고 유명 미술가들이 여럿 참석했다. 그리고 공사중인 경복궁 돌담길과 사간동 화랑가 앞길 공사, 곧 ‘역사탐방로’와 ‘북촌길’ 정비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참석자들의 의견은 강경과 온건의 차이가 있긴 했지만 한 가지였다. 경복궁 돌담길 정비사업이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길에 조명등을 달고, 화초를 심고 돌벤치를 놓는 이 공사가 경복궁 돌담길 본래의 장중하고 우아한 이미지와 맞지 않고, 되레 고유의 품격을 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중요한 문화재와 직결되는 문제인데도 다른 전문가 집단과 시민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서울시가 후닥닥 공사를 벌였다는 것이다. 결국 모임 끝에 미술계 인사들은 ‘경복궁 담길 살리기 모임’(가칭)이란 단체를 만들기로 하고 돌담길에 들어서는 돌벤치 구조물과 화단을 치워 원상회복시킬 것을 서울시에 공식 요구하기로 하고 서명까지 했다. 문제의 돌담길, 역사탐방로 사업은 서울시가 중요 유적인 경복궁 옆길을 시민들이 좀더 즐겁게 거닐 수 있도록 40여억원의 예산을 들이고 있는 사업이다. 경복궁 둘레를 빙 돌아가는 돌담길을 역사적 건축물에 걸맞게 100년 이상 보수할 필요없이 오랫동안 견딜 수 있게 길바닥을 돌로 새로 깔고, 돌길과 돌담 사이에는 화초를 심어 화단을 조성하는 한편 조명등을 달아 밤이면 돌담에 불빛을 비추도록 했다. 그리고 산책하는 시민들이 쉴 돌벤치를 설치하기로 했다. 1차적으로 동십자각부터 삼청동 청와대 입구 초소 앞까지 1650m의 길을 새로 정비해 조만간 작업이 끝날 예정이다. 작업이 다 끝나고 봐 달라
이 역사탐방로 사업은 사간동과 인사동 두곳에서 함께 공사중이다. 공사는 모두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차세대 리더로 꼽아 유명해진 건축가 김진애(서울포럼 대표)씨가 맡았다. 서울에서 가장 유서깊은 거리에다 그 자체로 문화재인 이들 거리를 현대적 감각으로 새롭게 꾸미는 작업인 만큼 가장 유명한 건축가가 맡은 모습은 너무나 당연해보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거센 반발을 일으켰다. 이날 모임 참석자들 대부분은 돌담길 구간에 마치 석관 같은 커다란 돌벤치가 너무나 많은 50여개나 놓인데다 길과 수직방향으로 놓여 보행을 방해하고 담의 품격과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또한 담 밑에 조명등을 달고 다시 그 조명등이 안 보이게 돌로 가린 구조물들이 넘쳐나 시각적으로 복잡하다는 점도 이 거리의 미관을 망치는 요인이라고 성토했다.
김홍남 이화여대 교수는 가장 중요한 문제점으로 ‘경복궁의 상징성’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점을 들었다. 조선건축의 백미인 돌담길의 의미를 생각해 사전에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점과, 무엇보다도 역사탐방로 작업의 미적인 수준이 낮다는 것이다. 또한 인사동과는 전혀 이미지가 다른 경복궁길에 인사동 역사탐방로의 컨셉을 그대로 적용한 것부터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 문제는 이른바 ‘거리가구’(스트리트 퍼니처)의 문제인 동시에 문화재의 문제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거리의 가구란 간판 난간 가로등 벤치 안내판 등의 시설물을 가리키는 말로 마치 가정의 가구처럼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하는 시설물이다. 이런 거리가구, 특히 경복궁길처럼 문화재와 관련된 서울의 얼굴격인 거리의 시설이라면 인테리어적 감각을 지닌 해당분야 전문가가 맡아야 하는데 도시설계가 전공인 김진애씨가 맡은 것 자체부터가 잘못이란 것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서울시쪽과 김진애씨는 모두 “디자인에 대해서야 반응이 모두 좋을 수만은 없다”며 “오만 가지 이야기가 있을 수 있어 공사 과정에서 충분히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진애씨는 “작업이 다 끝나고 볼 것”을 주문하면서 “인사동과 경복궁길은 컨셉이 다르며 당연히 거기에 맞춰 차별을 둬 기본적인 포장패턴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또한 사전에 문화재청에 자문을 얻은 뒤 작업에 들어갔으며, 중요한 거리인 만큼 수십번 돌담길을 걸으며 길 건너편에서 보이는 이미지와 길을 걸어가며 보이는 이미지까지 생각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지금 당장이야 수백년된 돌담과 새로 포장한 길이 잘 안 어울려 보일 수도 있지만, 1∼2년만 지나도 새 돌벤치와 돌길의 색깔이 고색창연해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라며 받아넘기고 있다.
막무가내식 공사관행이 부른 예상된 논란
물론 모든 예술작품에 대한 품평이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논란은 여전히 구태를 답습하고 있는 서울시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의 공사관행에서 나온 예상된 논란이란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적어도 사전에 많은 의견 교환과 수렴이 있었다면 공사시작 이후에 반발이 생기는 고질적인 병폐만은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사간동 역사탐방로는 진행과정에 전혀 민원이 없다가 나오니 이상하다”고 되레 의아해했다. 주민이 없는데다 주민의 의견 수렴은 규정이 아니라 원칙 수준의 지침이므로 공청회를 열지 않은 것은 잘못이 아니라는 점만을 강조했다.
현재 상황에서는 시공자인 서울시가 이미 조성한 역사탐방로 공사를 개보수하거나 원상복구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번 경복궁 돌담길 논쟁은 문화재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되는 도시 시설에 대한 공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든다. 건축가는 전문가들과 상의했다고 하지만 그 전문가들은 경복궁 관리소장과 문화재 관리위원 정도였을 뿐이었다. 서울시 역시 유명 건축가에게 맡기는 것 자체로 모든 것이 괜찮을 것으로 쉽게 생각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결국 거리를 거닐게 될 시민들이 조만간 내려줄 논쟁의 정답을 기다려보는 것말고는 현재 뾰족한 수는 보이지 않는다.
구본준 기자bonbon@hani.co.kr

(사진/마무리 작업이 한창인 경복궁 돌담길)
가을 하늘이 점점 높아져가던 지난 5일, 서울 사간동의 한 카페에 스무명 남짓한 인사들이 모였다. 카페 창문 밖으로는 경복궁 돌담길이 바라뵈는 곳이었다. 인적이 드물어 늘 호젓하고 고즈넉하던 사간동 경복궁 돌담길은 마침 공사중이었다. 세련되고 깔끔한 화랑들이 줄지어 있는 건너편 화랑 거리에서도 공사는 함께 진행되고 있었다. 도로 곳곳에서 인부들이 널찍한 장대석을 깔고 돌담길 아래에는 화단을 조성하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 광경이 바라보이는 카페에 모인 사람들은 바로 이 공사중인 사간동길을 바라보며 모임을 시작했다. 무임의 주제는 이 공사에 대한 성토였다. 모인 사람들은 미술계에서는 누구나 알아주는 거물급들이었다. 갤러리 국제, 학고재, 금산갤러리, 인화랑 등 국내 화랑을 대표하는 사간동 화랑주들과 함께 이화여대 박물관장인 김홍남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강태희 교수 등 학자들, 그리고 유명 미술가들이 여럿 참석했다. 그리고 공사중인 경복궁 돌담길과 사간동 화랑가 앞길 공사, 곧 ‘역사탐방로’와 ‘북촌길’ 정비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참석자들의 의견은 강경과 온건의 차이가 있긴 했지만 한 가지였다. 경복궁 돌담길 정비사업이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길에 조명등을 달고, 화초를 심고 돌벤치를 놓는 이 공사가 경복궁 돌담길 본래의 장중하고 우아한 이미지와 맞지 않고, 되레 고유의 품격을 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중요한 문화재와 직결되는 문제인데도 다른 전문가 집단과 시민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서울시가 후닥닥 공사를 벌였다는 것이다. 결국 모임 끝에 미술계 인사들은 ‘경복궁 담길 살리기 모임’(가칭)이란 단체를 만들기로 하고 돌담길에 들어서는 돌벤치 구조물과 화단을 치워 원상회복시킬 것을 서울시에 공식 요구하기로 하고 서명까지 했다. 문제의 돌담길, 역사탐방로 사업은 서울시가 중요 유적인 경복궁 옆길을 시민들이 좀더 즐겁게 거닐 수 있도록 40여억원의 예산을 들이고 있는 사업이다. 경복궁 둘레를 빙 돌아가는 돌담길을 역사적 건축물에 걸맞게 100년 이상 보수할 필요없이 오랫동안 견딜 수 있게 길바닥을 돌로 새로 깔고, 돌길과 돌담 사이에는 화초를 심어 화단을 조성하는 한편 조명등을 달아 밤이면 돌담에 불빛을 비추도록 했다. 그리고 산책하는 시민들이 쉴 돌벤치를 설치하기로 했다. 1차적으로 동십자각부터 삼청동 청와대 입구 초소 앞까지 1650m의 길을 새로 정비해 조만간 작업이 끝날 예정이다. 작업이 다 끝나고 봐 달라

(사진/미술계 인사들은 돌벤치를 너무 많이 깔아 돌담길의 풍경을 망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