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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들리는가, 반전의 메아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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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2-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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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이라크 침공 위협·북핵 위기 속에서 전쟁 반대를 주장하는 두 개의 목소리

지난 2월14일(현지시각) 유엔 이라크무기사찰단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2차 보고에서 대량살상무기의 생산과 보유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사찰단은 이라크가 사찰장소를 미리 알고 증거를 없앴다는 미국 정보기관의 증거자료에 오히려 의혹을 표했다. 이로써 사찰을 통한 이라크 무장해제 방안이 있는데도 굳이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미국의 주장은 더더욱 설득력을 얻지 못하게 됐다. 마침 사찰단이 발표를 하던 시각, 지구 반대편에선 ‘국제반전행동의 날’(2월15일)이 밝아오고 있었다.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전쟁

<전쟁에 반대한다> 하워드 진 지음/ 유강은 옮김/ 이후 펴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위협과 북핵 위기 등과 맞물려 반전을 주장하는 같은 제목의 책 두권이 나란히 나왔다. <전쟁에 반대한다>.


미국의 ‘행동하는 지식인’ 하워드 진이 쓴 <전쟁에 반대한다>(유강은 옮김, 이후 펴냄)는 2차 세계대전부터 리비아, 베트남, 코소보, 유고슬라비아, 그리고 최근의 이라크 전쟁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개입하거나 관련되거나 참전한 갖가지 전쟁에 대한 성찰의 기록이다.

1922년 뉴욕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조선소 노동자로 일했던 진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파시즘을 물리치겠다는 의지에 불타 육군항공대에 입대해 폭격수가 된다. 하지만 직접 전쟁을 경험한 뒤 전쟁에는 정당한 전쟁과 부당한 전쟁이 있다는 정통적인 시각에서 벗어나게 된다. 성전에 동참하고 있다는 신념으로 똘똘 뭉친 진이 처음으로 의식의 균열을 느낀 것은 사회주의노동자당의 당원이었던 한 동료와의 대화에서였다. “그는 이 전쟁이 ‘제국주의전쟁’이며 양 진영 모두 국가적 힘을 위해 싸우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영국과 미국이 파시즘에 반대하는 이유는 단지 파시즘이 자국의 자원과 국민에 대한 자신들의 지배권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뜻밖의 대답에 당혹스러웠던 하워드 진이 “그렇다면 너는 왜 입대했느냐”고 묻자 동료는 간단히 답했다. “너 같은 녀석들에게 말해주려고.” 전쟁의 부당함에 대한 인식은 1945년 4월 보르도 인근 대서양 연안에 있는 프랑스의 아름다운 휴양지 르와양의 합동공습에 참여하면서 극대화된다. 2차 세계대전 중 처음으로 네이팜탄이 투하된 이 공습에서 수백명의 독일군과 200명의 프랑스 지상군 전사자가 발생했다. 전쟁이 끝난 지 21년 뒤인 1966년 르와양에 머물면서 많은 자료를 찾아낸 그는 르와양 공습이 전략상 불필요한 공습이었음을 밝히고 그 책임을 묻는다.

하워드 진이 전쟁의 역사를 돌아보며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은 전쟁을 도저히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현실주의자들이다. 현실주의자들은 전쟁을 인간의 손아귀에 둠으로써 ‘인간화’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1932년 네덜란드 헤이그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선 전쟁 수행방법에 관한 합의가 도출됐다. 하지만 이런 현실주의적 접근은 전쟁을 통제하는 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곧이어 닥친 크고 작은 전쟁들에서 독가스전, 도시폭격, 네이팜탄 사용, 화학전이 되풀이됐으므로. 당시 회의에 참석한 아인슈타인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이렇게 말했다. “교전의 규범을 만든다고 해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전쟁은 인간화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단지 폐기될 수 있을 뿐이죠.”

이 책에서 진이 문제삼고자 하는 것은 보편적인 전쟁이 아닌 ‘미국의 전쟁’이다. 그렇기에 현대 전쟁을 주도하는 미국의 위선에 초점을 맞춘다. 카다피가 테러를 저질렀다는 증거가 없는데도 리비아에 폭격을 가한 레이건, 동티모르인들을 학살하도록 인도네시아에 거대한 양의 무기를 제공한 일, 체첸에 대한 러시아의 맹공을 지지하고 넘어간 클린턴, 코소보 독립의 명분으로 유고에 퍼부은 공중폭격, 이라크 경제봉쇄와 폭격…. “현대의 테크놀로지는 성서를 훨씬 앞지른다. ‘눈에는 눈’은 눈 하나에는 백 개의 눈, 아이 한 명에는 백 명의 아이라는 식으로 바뀌었다. 이를 옹호하는 터프가이 칼럼니스트들과 익명의 논설위원들은 그들의 벌거벗은 도덕을 미국 국기로 감싸려 애썼다. 그러나 한 대학생의 죽음이나 요람에서 잠자고 있던 아이의 죽음을 두고 성조기를 자랑스레 흔들어대는 것은 국기에 대한 모독일 따름이다.”

용서받지 못할 증거 없는 응징

<전쟁에 반대한다> 밀란 레이 지음/ 신현승·정경옥 옮김/ 산해 펴냄
영국의 반전운동 단체 ‘애로우’의 공동 창설자인 밀란 레이가 쓴 <전쟁에 반대한다>(신현승·정경옥 옮김, 산해 펴냄)는 지난 12년에 걸친 미국과 영국의 대이라크 정책을 검토해 이들의 위선을 까발린다. 그는 무엇보다 이라크 전쟁은 ‘증거 없는 응징’이라고 주장한다. 미국과 영국이 주장하고 있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설은 근거가 없으며, 이라크 망명자들의 증언 또한 허점투성이라는 것이다. 또한 9·11테러의 주범으로 지목된 알카에다와 이라크가 연관이 있다는 것 또한 ‘가설’로서 입증되지 않은 것이다. 그는 이라크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미국을 지지하고 있는 쿠르드족의 미래도 미국의 공격이 시작된다면 밝지 않다고 내다본다. 레이는 미국이야말로 유엔 무기사찰단의 해체를 몰고 온 장본인으로 이라크의 무장해제가 미국의 과제가 아니라, 이라크 침공이 목표임을 지적한다. 그는 이에 따라 부시 대통령과 블레어 총리가 수백명이 목숨을 잃은 9·11 테러의 고통을 이라크 전쟁의 명분쌓기로만 이용한 것에 대해 비판한다. 정치인들의 정략적인 행태에 비해 9·11 테러에서 가족을 잃은 한 유족의 용기 있는 말은 감동적인 울림을 지닌다. “적은 마치 느슨하게 연결된 세포 조직처럼 우리들과 어울려 살아가면서 그늘 속에 숨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선전포고를 한 국가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교전의 의도는 공포와 증오를 퍼뜨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조차 모릅니다. …어떤 이들은 진주만 공습과의 유사성을 들먹입니다. 최소한 한 가지만큼은 그들의 주장도 일리가 있습니다. 즉, 진주만 공습의 여파로 수천의 젊은이들의 군대에 자원했던 것처럼 이라크 공습 후 과격한 이슬람 신병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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