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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기름기 빼도 신파는 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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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2-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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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누아르의 액션 공식을 파괴한 <무간도>에 대한 ‘열혈 남아’ 조근식 감독의 추억과 단상

양조위·유덕화 주연의 <무간도>(2월21일 개봉)는 홍콩에서 파란을 일으킨 영화다. 장이모의 <영웅>도,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도 <무간도>의 인기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 일부에선 침체된 홍콩영화를 일으켜줄 홍콩 누아르의 ‘재림’이라고 섣부른 진단을 내리기도 했다. 범죄조직 삼합회에 잠입한 경찰(양조위)과 삼합회의 조직원으로 경찰에 잠입한 조직원(유덕화)이 신분 위장 10년째를 맞아 숨막히는 대결을 벌이는 이야기다. <품행제로>로 데뷔한 조근식(35) 감독은 한때 홍콩 누아르에 열광했던 팬이었고, 그 느낌은 <품행제로>에 은근히 녹아 있었다. 그에게 <무간도>를 보고 홍콩 누아르에 대한 추억을 떠올려 ‘편안한 글’을 써달라고 청했다. 편집자

내가 재수하던 시절이니까 10년도 더 됐다. 누나 형들이 한창 데모하던 때다. 덩달아 친구들도 데모하던 때다. 난 남들 다 간다는 대학엘 못 가는 바람에 남들 다 가는 데를 못 간 ‘우리’들이 모여 있는 재수학원에서 빌빌대고 있었다. 당시 나의 안식처는 재수학원을 중심으로 삼각편대를 형성하고 있는 당구장, 만화방, 그리고 지하 음악다방이었다. 그 세 군데는 본업 이외의 각각의 부업도 성행하고 있었는데 당구장에는 빠찡꼬, 만화방은 포르노 비디오, 그리고 지하 음악다방은 개봉 중이거나 혹은 미개봉된 영화의 ‘삐짜’ 비디오 테이프를 틀고 있었다.

주윤발을 흉내내던 10여년 전의 기억


나는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세 군데 모두에게 골고루 애정을 나눠주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급격히 지하 음악다방쪽으로 편중된 애정을 보이게 되었다. ‘알다마’(네개의 공으로 치는 당구)를 까면서 먹던 당구장의 달콤한 짜장면 맛도, 만화방의 비밀골방에서의 거친 숨소리도 잊게 해준 그것은 지하 음악다방에서 틀어준 주윤발의 총싸움 영화였다. ‘삐짜’ 테이프에다가 도대체 제목도 모르고 그저 ‘영웅본색’ 시리즈라고 불리던 주윤발의 총싸움 영화들은 ‘우리’들 사이에서 폭발적 인기였다. 난 어찌나 환장을 했던지 가끔씩 아버지 바바리를 훔쳐입고 다니며 주윤발인 양 착각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나중에 그걸 홍콩 누아르라고 불렀다.

십몇년이 지난 지금 난 딸랑 영화 한편 만들어 감독이랍시고 똥폼 잡고 거들먹거리며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데 어디선가 전화가 날아왔다. <무간도>라는 영화를 보고 짧게 글을 써달라는 내용이었다. 짧게고 길게고 간에 거들먹거리며 거리를 활보하는 일 외에는 관심이 없는 요즘의 나로선 폼나고 정중하게 거절을 했어야 맞는 건데 ‘홍콩 누아르의 부활을 표방한…’이란 말에 갑자기 마음이 혹해서 “그럼 영화를 먼저 보고 생각해보죠” 한 것이 화근이 되서 바깥에 나가 거들먹대지도 못하고 폼 안 나게 책상에 꾸부정하게 앉아 무간지옥(영화 제목에 있는 ‘무간’(無間)은 무간지옥(無間地獄)을 뜻하는 불교용어다. 무간지옥은 불교에서 말하는 18층 지옥 중 가장 낮은 층의 지옥을 뜻한다)을 생각하게 되었다.

쌍담배에 복수, 비정함도 사라졌건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이 영화를 알다마 까던 시절에 봤다면, 에 이게 무슨 홍콩 누아르야 했을 것이다. 대저, 무릇, 홍콩 누아르라 함은 검은 선글라스 끼고 이쑤시개(성냥개비였나) 입에 물고 바바리 코트 척 걸치고 비오듯 날아오는 1만개의 총알 속을 다른 사람들보다 2만배쯤 천천히 걷다가 갑자기 바지춤에서 쌍권총을 샥 빼들고 화려한 ‘액숀’을 펼치며 3만명쯤 죽이고는 4만개쯤 구멍난 몸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 위로 중국말로 꼬부라진 발라드가 흐르면서 서서히 우리의 주인공이 혼자 바닷가에 쓸쓸히 실루엣으로 서 있다거나 소파에 홀로이 앉아 쌩담배를 태우고 있다거나 하는 장면이 회상으로 겹쳐지면서 ‘싸나이들’의 의와 협, 복수와 비정함 그리고 외로움의 아우라가 뒤범벅된 총제적인 영웅의 모습이 완성되면서 5만볼트의 전류를 느끼듯 몸서리를 치면서 확 감정몰입이 되는 거 아냐 그때 비둘기가 날아야 되는 거 아냐 이게 홍콩 누아르 아냐

근데 무간도는 이게 뭐야 경찰과 범죄 조직으로 대변되는 선악의 극한적 대립이라든가, 그 속에 낑겨 버둥거리는 주인공이라든가, 여자들은 도저히 비비고 들어갈 구석이 없는 ‘싸나이들’만의 비정한 세계라든가 하는 홍콩 누아르라면 기본적으로 깔아줘야 될 것들을 이 영화도 대충 깔아주고 있긴 하다. 근데 총질도 몇번 안 하고 화려한 ‘액숀’도 없고 몇명 죽지도 않고 피도 철철 안 흘리고 선글라스도 안 끼고 바바리도 안 입고 디립다 잔머리만 굴린다. 뭐 주인공 죽을 때 과거 회상장면이 병아리 오줌만큼 나온 것 같긴 하더라만은…. 이게 홍콩 누아르야 이게 재밌어

근데 이 영화 재밌다. 이 영화, 잔머리 굴리는 긴장감이 만만치 않다. 천천히 걷지도 않고 피도 철철 안 흘리고 몇명 죽이지도 않으면서 죽일 놈은 확실히 죽인다. 오히려 마지막 보스 한놈 죽이려고 갖은 폼 다 잡으며 싸우고 또 싸우며 시간 질질 끌지 않고 죽일 놈을 향해 빠르게 다가가서 깔끔하게 죽인다. 거기서 느껴지는 속도의 짜릿함이 있다. 오히려 훨씬 극적이고 정교해서 잘 짜여진 게임을 보는 것 같다.

<무간도>는 이전에 보여졌던 감정적 과잉과 기름기들을 쪽 빼고 훨씬 차갑고 정교하고 속도감 있는 구성들로 이야기를 전개해간다. 덕분에 캐릭터들은 이전에 정도 많고 한도 많았던 주인공들에 비해 훨씬 냉정해 보인다. 마치 오우삼의 <첩혈쌍웅>이나 <페이스 오프>에서 빌어온 것 같은 서로 다른 처지의 일란성 쌍생아 같은 두 주인공은 설정만 그렇지 서로에 대한 연민이나 연대감 같은 감정조차 없어 보인다. 너무 차갑고 비정해서 허무하고 염세적인 느낌마저 든다.

기본적으로 내가 생각하기엔 홍콩 누아르는 남자들의 ‘후까시(폼) 영화다. 거기다가 ‘도꾸다이’(단독)들에 관한 영화다. ‘후까시’와 ‘도꾸다이’에는 (무리에서 떨어져나온 고독한 영웅으로 그려지는) 남자들의 폼과 허세가 들어 있다. 쥐뿔도 없지만 의리에 목숨 걸고 정의에 피 흘린다. 때로는 자신이 죽을 걸 뻔히 알면서도….

냉정한 조직에서 ‘나’로서 살아가기

근데 폼과 허세의 내용이 달라졌다. 영웅의 의협심과 희생정신 대신 생과 사는 자신이 결정하고 자신의 길은 자신이 선택하라며 감정적 나약함을 버리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냉정해진 조직과 나의 생존방식을 이 영화는 처음부터 말해준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후까시’와 ‘도꾸다이’들은 얄밉도록 현명해졌단 말인가

더 현명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얄밉지는 않다. 여기에는 여전히 전체와 조직과 우리에 대적하며 나를 확보하려는 우리의 ‘후까시’와 ‘도꾸다이’들의 절박하고 동물적인 몸부림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여전히 나의 넘쳐나는 신파적 감수성을 자극한다. 그것이 비록 선으로 대표되는 우리-조직-전체에서 의젓한 사내로 살아가려는 발버둥일지라도 말이다.

어쩌면 무간지옥은 그게 선이든 악이든 보다 냉정해지고 강력해진 우리-전체-조직이라는 틀 안에서 사내다운 사내로 인정받으며 살아가는 일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언제쯤 우리의 ‘후까시’와 ‘도꾸다이’들은 우리-조직-전체와 ‘나’의 억압과 불안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하기사 ‘후까시’와 ‘도꾸다이’도 아닌 것이 늘 변변찮은 ‘우리’ 속에 숨어서 빌빌대거나 거들먹거리는 나 같은 사내가 뭘 알까마는….

조근식/ 영화감독·<품행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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