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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권력보다 굴비가 좋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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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2-1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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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겸의 비참한 말로를 달래준 영광굴비… ‘영광굴비백반집’에 서울 미식가들이 몰리는 이유

사진/ ‘영광굴비백반집’(02-3474-9178)은 주인 부부가 모두 법성포 출신으로, 법성포에 사는 형과 지인들에게서 질은 좋지만 값이 눅은 굴비들을 공급받고 있다. (김학민)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보좌관이 써준 원고의 罹災民(이재민)을 ‘나재’'으로 읽은 의원도 의원에 당선되기까지는 ‘논두렁 정기’라도 받았을 것이라고 이야기되는 판에, 그 옛날 어지러운 세상을 평정하고 나라를 세워 왕위에 오른 인간들에 대한 신화만들기가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이 간다.

권력자에 대한 ‘신화만들기’는 오늘날은 봉건시대처럼 허무맹랑한 내용을 담지는 않지만 태어나 자라나면서부터 뭔가 특이한 점이 있었고, 탁월한 지도력과 영명한 능력이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역할도 봉건시대처럼 권력자의 하수인 그룹이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가 맡는다. 신문은 1980년 전두환의 등장 즈음 <조선일보>의 행태에서 보듯 칭송과 미화를 넘어 아예 신문사 소유주와 기자, 군사독재자 서로가 교언으로 육화된 ‘어천가’ 활자기사를 남김으로써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되었지만 방송매체는 좀 달랐다. ‘땡전 뉴스’라고 해 저녁 9시 시보가 ‘땡’하자마자 “전두환 대통령은…”으로 시작해 10여분간 독재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일방적으로 미화하는 뉴스 보도가 날마다 있었지만, 일방성과 치졸함 때문에 국민의 뇌리에 오래 남아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TV매체는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작위적으로 보이는 역사 드라마들이 권력교체기에 등장한다. 전두환이 전면에 등장할 때의 <개국>, 노태우가 전두환으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을 때의 <조선왕조 오백년>, 김영삼 문민정부 시대의 <용의 눈물>, 김대중 정권 출범시의 <태조 왕건> 등이 그런 드라마들이다. 이 드라마들은 대개 어지러운 세상에서 고뇌에 찬 애국애족적 결단을 한 뒤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해 나라를 편안하게 하고 국민을 잘살게 했다는 역사인물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어, 새로 등장한 권력자의 이미지를 조작하는 데 일조했던 것이다. 2월25일, 노무현 당선자가 정식으로 대통령에 취임한다. 옛일이 생각나 혹시 ‘어천가’적 대하역사물이라도 없나 하고 TV프로그램난을 뒤져보니 고려 중기 무신정권을 소재로 한 KBS의 <무인시대>만이 눈에 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武)자 이외에는 노무현 정권과 <무인시대>의 ‘어천가’적 연계성이 떠오르지 않으니, 이제 방송도 드라마 부분에서만은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것 같다.

1170년 무신의 난이 일어나기 직전의 사람으로 이자겸이라는 자가 있다. 고려는 후삼국통일 이후 각 지방 호족의 딸들을 왕비·후궁으로 맞아들임으로써 정권의 안정을 꾀하고자 했는데, 점차 인주지방의 호족 경원이씨 집안이 이를 독점함으로써 외척이 왕권을 능가할 정도로 세도를 부리게 되었다. 이자겸도 경원이씨로, 그의 누이 장경공주는 고려 12대왕 순종의 비며, 둘째딸은 16대왕 예종의 비다. 예종이 재위 17년 만에 죽자 그의 아들이자 이자겸의 외손자인 인종이 어린 나이에 즉위했는데, 이로써 이자겸의 권세는 하늘을 찔렀다. 이자겸은 다른 성씨에서 왕비가 나오는 것을 막으려 셋째딸, 넷째딸을 연이어 인종의 비로 납비하니 이 집의 촌수 계산하기가 어지럽다.

그러나 욕심이 과하면 죄를 낳고, 죄가 과하면 죽음을 낳느니, 이자겸은 하늘을 찌를 듯한 권세도 모자라 주군이자, 외손자이자, 셋째사위이자 넷째사위인 인종을 독살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려다가 발각돼 전라도 영광땅 법성포로 유배돼 비참하게 생을 마치게 된다. 이자겸은 개경에서 “남의 토전을 강탈하고, 복예들을 풀어놓아 마차와 말을 약탈해 자기의 물건을 날랐으며”(<고려사> 이자겸전), 그의 집에는 “썩어가는 고기가 항상 수만근이나 되었을”(고려사) 정도로 부귀와 영화를 누렸지만, 유배시절 법성포에서 굴비를 처음 맛보고는 개경생활을 크게 후회했다고 한다. 그가 법성포의 소금에 절인 조기를 인종에게 진상하면서, 왕에 대한 충정과 자신의 옳은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뜻에서 이름을 ‘굴비’(屈非)라고 했다는데 그리 근거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법원 앞에 가면 아주 믿을 수 있는 ‘영광굴비백반집’(02-3474-9178)이 있다. 김양태(55세), 장금자(53세)씨 부부 모두가 법성포 출신으로, 법성포에 사는 형과 지인들로부터 질은 좋지만 값이 눅은 굴비들을 공급받고 있어, 서울시내 미식가들 사이에서는 소리 소문 없이 알려진 집이다. 굴비백반(8천원), 정식(1만5천원)에 딸려나오는 짭짤한 전라도식 반찬들을 못 잊어 다시 찾는 단골들이 많다.

김학민 ㅣ 학민사 대표·음식칼럼니스트 hakmin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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