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가출 소녀의 삶과 실업계 여학생들의 꿈을 추적한 ‘청소년 리포트 시리즈’ 두권
<가출, 지금 거리에 ‘소녀’는 없다>(3권)/ 민가영 지음/ 우리교육 펴냄
<실업계, 얌순이들의 보고서>(4권)/ 안재희 지음/ 우리교육 펴냄
‘어떤 십대’들의 삶은 어른들에겐 해독 불가능의 난수표다. 하지만 모든 어른들이 이를 읽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삶을 ‘문제’가 아니라 ‘문화’로 바라보는” 어른들은 일방적인 꾸짖음의 시선을 거두고 현실의 맨얼굴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젊은 연구자들이 십대들을 심층 면접한 결과를 토대로 이들의 꿈틀대는 삶의 결을 세세히 기록한 <청소년 리포트> 연작 3·4권이 나왔다. 교육전문 출판사 ‘우리교육’이 기획한 이 시리즈는 요즘 아이들의 일상을 구성하는 6개의 테마, 곧 포르노·인권·공부·매체 등을 정해 아이들의 삶을 가감 없이 전달하고자 기획됐다. 앞서 몇년 전에 출간한 <포르노, All boys do it!>(1권)과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2권)는 포르노에 빠지는 십대 남자아이들과 인권 사각지대인 교육 현장을 정밀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에 나온 <가출, 지금 거리에 ‘소녀’는 없다>(3권)와 <실업계, 얌순이들의 보고서>(4권)는 말 그대로 ‘학교 밖 십대 가출 소녀들의 삶과 학교 안 실업계 여학생들의 꿈에 대한 보고서’다. 학교 밖으로 도피하는 아이들 여성학을 전공하는 민가영씨가 쓴 <가출…>은 집을 나간 경험이 있는 20명의 십대 여성을 인터뷰한 기록이다. 지은이는 가출이 더 이상 소수 불량 소년소녀들만 저지르는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지은이가 주목하는 것은 십대에 만연한 ‘도피적-일시적 가출’이다. “일주일 동안 휴가 가는 셈치고” “(나가서) 그냥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는” 식으로 집을 나가는 것이다. 이런 가출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유는 “아이들로 하여금 가정·학교와 그것이 바깥 사이에 어정쩡하게 양발을 걸치게 하여 계기만 주어지면 쉽게 이동하는 객관적 조건” 때문이다. “무사히 졸업만 하면 되는” “별 생각 없는” 아이들은 등교해서조차 수업을 땡땡이치기 일쑤고, 재미있게 시간을 때울 방법을 찾아 이리저리 떠돌아다닌다. 가출은 평소의 도피적인 생활태도의 ‘24시간 연장’에 다름 아니다. 십대 여성들이 가출을 통해 처음으로 깨닫는 것은 굳이 일하지 않아도 잠자리를 제공할 남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사전 계획 없이 집을 뛰쳐나간 이들은 채팅·헌팅 등을 통해 잠을 재워줄 ‘남성자원’을 구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거리 보호자’로 선호하는 대상은 동갑이나 비슷한 또래보다는 몇살 더 많은 ‘오빠’들일 때가 많다. “동갑은 그냥 덮치는데 오빠들은 지 나이를 알아서 그런지 잘 안 그러기” 때문이다. 곧 “동갑과 관계를 형성할 때는 ‘예쁜 외모’가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되지만, 오빠하고는 ‘어린 나이’가 자원으로 인정된다.” 심지어 어떤 아이들은 가출할 때는 평소에 친하지 않던 예쁜 아이들을 꼬드겨 데리고 나가기도 한다. 예쁜 애가 끼어 있어야 헌팅에 유리한 탓이다. 이는 십대 여성들이 몸을 이용해 남성들로부터 보상받는 것에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정도로 점점 익숙해져감을 의미한다. 물론 아이들은 평소에도 남성자원을 활용하는 법을 꿰고 있다. ‘깔’(애인)과 ‘물주’(깔의 형식을 빌린 돈 대주는 사람), ‘일회적 놀이 상대’ 등으로 세분화해 이에 따른 대접을 한다. 심지어 ‘물주’로부터 지속적인 보상을 얻기 위해 “등쳐먹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능수능란한 연기를 펼친다. “상대가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입증하기 위해 (물주에게) 일기 형식의 편지를 쓴다. 재미있는 것은 하룻밤 사이에 30일치의 일기를 써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장 숙식을 해결할 곳이 없는 가출의 상황에선 달라진다. 깔과 물주, 하루 노는 상대를 구별하는 정교한 전략이 생략되기 일쑤다. 잠잘 곳을 준다는 이유만으로 ‘반강제적으로’ 마음에도 없는 상대와 성관계를 맺는다. 어떤 아이들은 집단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아이들은 “상대가 하는 중에 그냥 눈을 감고 자는 듯이 있는 식으로 순간을 버티는 노하우를 만들” 정도로 남성들의 폭력에 무감각해진다. 지은이는 가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도피적이고 소모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에 익숙해지고 자신의 몸에 대해 주인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무조건 가출을 막는 데 급급해할 것이 아니라, 가출(家出)을 가출(佳出)로 바꾸는 현실적 대안을 마련하자고 제안한다. 학교 안에서 꿈을 접은 얌순이들 3권이 학교 밖으로 도피하는 십대 여성을 다뤘다면 4권 <실업계, 얌순이들의 보고서>는 학교 안에서 좌절하는 십대 여성을 이야기한다. 고등학교 교육의 목표가 오로지 대학 입시인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실업계 학교의 입시는 항상 뒷전이다. 하지만 실업고에서도 대학의 꿈을 키워나가는 학생들이 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서 ‘꼬리’가 되기보다는 좋은 내신성적을 받을 수 있는 실업고에서 ‘머리’가 되겠다는 아이들이다. 이들은 아무 생각 없이 노는 친구들과는 구분을 지으려 애쓰고, 교사들에게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교육사회학을 공부하는 지은이 안재희씨는 이들을 ‘얌순이’라 지칭한다. 하지만 현실은 얌순이들의 편이 아니다. 인문계에 가지 못한 얌순이들의 열등감은 “수준 미달의 학생들에게 어려운 문제를 이해시키려는 것은 헛수고라고 생각하는” 교사들에 의해 강화된다. 게다가 실업고의 교육과정은 취업 중심으로 짜여져 있다. 이곳에서 인문 과목은 기타 과목일 뿐이다. 이렇게 어려운 조건에서도 얌순이들이 대학에 매달리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상고생에 대한 사회의 차별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서기’ 위해서”다. 지은이는 일단 얌순이 문화가 실업계 학생들에 대한 차별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동시에 얌순이 문화는 학력주의를 보편적 원리로 받아들이는 모순을 보이기도 한다. “이들은 학력 사회를 비판하지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이들이 선택하는 것은 적극적인 ‘획득’이다.” 결국 지은이는 “우리 사회에서 학력주의의 사각지대는 없다”고 고백한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실업계, 얌순이들의 보고서>(4권)/ 안재희 지음/ 우리교육 펴냄

젊은 연구자들이 십대들을 심층 면접한 결과를 토대로 이들의 꿈틀대는 삶의 결을 세세히 기록한 <청소년 리포트> 연작 3·4권이 나왔다. 교육전문 출판사 ‘우리교육’이 기획한 이 시리즈는 요즘 아이들의 일상을 구성하는 6개의 테마, 곧 포르노·인권·공부·매체 등을 정해 아이들의 삶을 가감 없이 전달하고자 기획됐다. 앞서 몇년 전에 출간한 <포르노, All boys do it!>(1권)과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2권)는 포르노에 빠지는 십대 남자아이들과 인권 사각지대인 교육 현장을 정밀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에 나온 <가출, 지금 거리에 ‘소녀’는 없다>(3권)와 <실업계, 얌순이들의 보고서>(4권)는 말 그대로 ‘학교 밖 십대 가출 소녀들의 삶과 학교 안 실업계 여학생들의 꿈에 대한 보고서’다. 학교 밖으로 도피하는 아이들 여성학을 전공하는 민가영씨가 쓴 <가출…>은 집을 나간 경험이 있는 20명의 십대 여성을 인터뷰한 기록이다. 지은이는 가출이 더 이상 소수 불량 소년소녀들만 저지르는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지은이가 주목하는 것은 십대에 만연한 ‘도피적-일시적 가출’이다. “일주일 동안 휴가 가는 셈치고” “(나가서) 그냥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는” 식으로 집을 나가는 것이다. 이런 가출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유는 “아이들로 하여금 가정·학교와 그것이 바깥 사이에 어정쩡하게 양발을 걸치게 하여 계기만 주어지면 쉽게 이동하는 객관적 조건” 때문이다. “무사히 졸업만 하면 되는” “별 생각 없는” 아이들은 등교해서조차 수업을 땡땡이치기 일쑤고, 재미있게 시간을 때울 방법을 찾아 이리저리 떠돌아다닌다. 가출은 평소의 도피적인 생활태도의 ‘24시간 연장’에 다름 아니다. 십대 여성들이 가출을 통해 처음으로 깨닫는 것은 굳이 일하지 않아도 잠자리를 제공할 남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사전 계획 없이 집을 뛰쳐나간 이들은 채팅·헌팅 등을 통해 잠을 재워줄 ‘남성자원’을 구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거리 보호자’로 선호하는 대상은 동갑이나 비슷한 또래보다는 몇살 더 많은 ‘오빠’들일 때가 많다. “동갑은 그냥 덮치는데 오빠들은 지 나이를 알아서 그런지 잘 안 그러기” 때문이다. 곧 “동갑과 관계를 형성할 때는 ‘예쁜 외모’가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되지만, 오빠하고는 ‘어린 나이’가 자원으로 인정된다.” 심지어 어떤 아이들은 가출할 때는 평소에 친하지 않던 예쁜 아이들을 꼬드겨 데리고 나가기도 한다. 예쁜 애가 끼어 있어야 헌팅에 유리한 탓이다. 이는 십대 여성들이 몸을 이용해 남성들로부터 보상받는 것에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정도로 점점 익숙해져감을 의미한다. 물론 아이들은 평소에도 남성자원을 활용하는 법을 꿰고 있다. ‘깔’(애인)과 ‘물주’(깔의 형식을 빌린 돈 대주는 사람), ‘일회적 놀이 상대’ 등으로 세분화해 이에 따른 대접을 한다. 심지어 ‘물주’로부터 지속적인 보상을 얻기 위해 “등쳐먹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능수능란한 연기를 펼친다. “상대가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입증하기 위해 (물주에게) 일기 형식의 편지를 쓴다. 재미있는 것은 하룻밤 사이에 30일치의 일기를 써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장 숙식을 해결할 곳이 없는 가출의 상황에선 달라진다. 깔과 물주, 하루 노는 상대를 구별하는 정교한 전략이 생략되기 일쑤다. 잠잘 곳을 준다는 이유만으로 ‘반강제적으로’ 마음에도 없는 상대와 성관계를 맺는다. 어떤 아이들은 집단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아이들은 “상대가 하는 중에 그냥 눈을 감고 자는 듯이 있는 식으로 순간을 버티는 노하우를 만들” 정도로 남성들의 폭력에 무감각해진다. 지은이는 가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도피적이고 소모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에 익숙해지고 자신의 몸에 대해 주인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무조건 가출을 막는 데 급급해할 것이 아니라, 가출(家出)을 가출(佳出)로 바꾸는 현실적 대안을 마련하자고 제안한다. 학교 안에서 꿈을 접은 얌순이들 3권이 학교 밖으로 도피하는 십대 여성을 다뤘다면 4권 <실업계, 얌순이들의 보고서>는 학교 안에서 좌절하는 십대 여성을 이야기한다. 고등학교 교육의 목표가 오로지 대학 입시인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실업계 학교의 입시는 항상 뒷전이다. 하지만 실업고에서도 대학의 꿈을 키워나가는 학생들이 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서 ‘꼬리’가 되기보다는 좋은 내신성적을 받을 수 있는 실업고에서 ‘머리’가 되겠다는 아이들이다. 이들은 아무 생각 없이 노는 친구들과는 구분을 지으려 애쓰고, 교사들에게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교육사회학을 공부하는 지은이 안재희씨는 이들을 ‘얌순이’라 지칭한다. 하지만 현실은 얌순이들의 편이 아니다. 인문계에 가지 못한 얌순이들의 열등감은 “수준 미달의 학생들에게 어려운 문제를 이해시키려는 것은 헛수고라고 생각하는” 교사들에 의해 강화된다. 게다가 실업고의 교육과정은 취업 중심으로 짜여져 있다. 이곳에서 인문 과목은 기타 과목일 뿐이다. 이렇게 어려운 조건에서도 얌순이들이 대학에 매달리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상고생에 대한 사회의 차별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서기’ 위해서”다. 지은이는 일단 얌순이 문화가 실업계 학생들에 대한 차별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동시에 얌순이 문화는 학력주의를 보편적 원리로 받아들이는 모순을 보이기도 한다. “이들은 학력 사회를 비판하지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이들이 선택하는 것은 적극적인 ‘획득’이다.” 결국 지은이는 “우리 사회에서 학력주의의 사각지대는 없다”고 고백한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