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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엽기 기생생물, 그래도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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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2-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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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물고기의 몸 빨아먹는 꼼장어의 생리… 산 꼼장어로 만든 소금구이를 먹어봤는가

사진/ ‘산 곰장어’집은 살아 있는 곰장어를 충무에서 공수해와 계속 물을 갈아대며 수족관에서 키워 손님들에게 내놓는다. (김학민)
생명체들은 서로 먹고 먹히는 복잡한 먹이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20세기 초 미국의 생태학자 V.E. 셸퍼드가 이러한 관계를 그림으로 나타냈는데, 이것을 먹이사슬이라고 한다. 그런데 먹이사슬은 단순한 한 줄의 연결관계가 아니라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또 가지들끼리 연결돼서 복잡한 그물모양의 관계를 이루고 있으므로 ‘먹이그물’이라고도 한다.

바다 물고기들의 먹이사슬은 비교적 간단하다. 바닷물 속에 녹아 있는 유기물질을 영양소로 흡수하는 식물성·동물성 플랑크톤으로부터 시작해 그 플랑크톤을 먹이로 삼는 작은 물고기들, 그리고 작은 물고기를 집어삼킴으로써 생명을 이어가는 큰 물고기에 이르기까지 힘이 세거나 덩치가 큰 물고기가 약하고 작은 물고기를 먹이로 삼는 ‘정글의 법칙’이 먹이사슬의 줄기를 이룬다.

그런데 먹이사슬의 자연법칙에 변칙이 일어난다. 공생과 기생 형태로 나타나는 생물체들의 생존방식이다. 공생은 전혀 다른 종류의 생물이 한곳에 살면서 서로 이익을 주고받으며 공동의 삶을 누리는 행태인데, 쌍방이 다 이익을 얻고 있는 상리(相利)공생이 있고, 한쪽만이 이익을 얻는 편리(片利)공생이 있다.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 소라게의 껍데기에 착생하고 있는 말미잘의 경우가 그 예들이다.

기생은 한 종류는 공존의 의해 이익을 보나 다른 편에서는 이에 의해 해를 입는 생존형태를 말한다. 이때 공존에 의해 해를 보는 쪽을 숙주라 하고, 이익을 얻는 쪽을 기생생물이라 한다. 그리고 기생물이 숙주의 체내에 있을 때는 내부 기생생물이라 하고, 숙주의 체외에 있을 때는 외부 기생생물이라고 한다. 숙주의 체내에 있건 체외에 있건 기생생물은 자신들이 필요한 양분을 섭취 합성할 능력이 없어 이를 직접 숙주로부터 얻는다.


또 이들은 기생생활의 결과 감각, 운동 및 기타 기관들이 없어졌거나 퇴화되었으나 생명유지, 생식의 잠재력은 매우 발달했다. 곧 숙주에 기생하기에 편리한 빨판, 갈고리 등과 같은 기관들이 튼튼하게 발달된 것이다. 이들 기생생물체는 숙주들이 먹은 먹이를 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적응되었기 때문에 이들에 의하여 숙주가 죽는 경우는 적다.

이러한 생물학적 정의를 적용해 보면 곰장어(먹장어)는 기생생물이라기보다는 ‘엽기생물’에 가깝다. 곰장어는 지구상의 물고기 가운데 가장 진화가 덜 된 어종이다. 눈은 피부 속에 숨어 있어 이른바 안점으로만 희미하게 존재하며, 지느러미는 단지 피부가 두껍게 된 형태를 띤다. 이빨 비슷한 빗 모양의 치설이 나 있지만 턱이 없어 깨물지 못하고, 육질로 잘 발달된 혀가 있다. 곰장어는 이러한 혀의 흡착력으로 다른 물고기의 몸에 붙어 그 살을 빨아먹거나, 몸 속에 파고들어가 내장부터 빨아먹어 결국 살갗과 뼈만을 남겨놓으니 엽기 물고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하등생물’을 ‘고등동물’인 인간이 좋아한다. 먹이사슬의 질서에서 변칙적으로 튀어나와 물고기들의 몸체를 빨아먹는 곰장어도 세치 혀의 쾌락을 앞세운 인간의 먹이그물망엔 꼼짝없이 잡혀 먹이사슬의 종말을 보는 것이다.

곰장어 가죽으로는 고급 지갑·벨트 등을 만들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해마다 많은 양의 냉동 곰장어들을 캐나다·칠레 등지에서 수입한다. 제품용 곰장어들은 가죽만 쓰고 나머지는 폐기되는데, 얼마 전에 매스컴에 보도된 바와 같이 이 폐기물이 시중 포장마차로 흘러나와 몇 사람이 구속되는 등 난리를 폈다. 제품용 수입품은 말할 것도 없지만, 우리나라 남해안에서 잡혀 냉동되어 서울로 반입되는 것들도 짙은 양념으로 냄새를 없애야 하기 때문에 양념구이밖에 쓰지 못한다. 그러므로 얕은 맛을 내는 소금구이를 하려면 산 곰장어를 써야 하는데, 산 곰장어를 쓰는 집은 곰장어구이의 원조격인 부산에도 별로 없다.

옛 강남구청 건너편에 가면 산 곰장어만을 구워 파는 전문점이 있다. 20여년간 가전제품상을 하다가 음식점을 열고 싶어 직접 요리를 배우고 나중에는 요리강의까지 하게 된 김정선(54)씨가 연 ‘산 곰장어’(02-549-9279)집이다. 이 집은 산 곰장어를 충무에서 공수해와 계속 물을 갈아대며 수족관에서 키워 손님들에게 내놓는다. 소금구이·양념구이 모두 가능한데 앞에서 말한 대로 얕은 맛의 소금구이가 이 집이 내세우는 메뉴다(소 2만원, 중 2만9천원, 대 3만8천원).

학민사 대표·음식칼럼니스트 hakmin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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